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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재생이 못 품는 '그레이존'... 집수리 활성화는 대안이 될까

입력
2022.12.22 04:30
수정
2022.12.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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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좁은 골목, 낮은 담, 녹슨 철대문. 금 간 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독주택.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던 그 낡은 집들은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 간의 작업을 통해 1970년 전에 지어진 노후 단독주택의 구체적 규모와 세부 입지를 통계화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늙은 집들은 좁은 길과 가파른 언덕에 포위되어 도시 곳곳에 섬처럼 존재하고, 그 안에선 늙은 집을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서울 노후주택 2만 3,000채와 거주자 5만명(추정)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취재는 저희가 정성 들여 제작한 인터랙티브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불도저와 벽화 사이... '갈지자(之)' 오간 ‘낡은 집’ 정책 20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박제된 나의 집 ③: 개발-재생의 이분법을 넘어]

"재개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업성 문제로 인해 다시 지을 수 없는 집이 많다는 게 문제죠."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주거 환경 개선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은 대규모 재개발(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외형 유지에 치우친 도시재생(박원순 전 시장)과 같이 극단적 접근법만으로 서울의 노후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에 수리가 필요한 낡은 집은 15만 채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이 중 수리가 완료되거나 수리 진행 중인 주택은 극소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신축·철거 위주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효과적으로 수리하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이 서울 종로구 연구소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이 서울 종로구 연구소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재생 or 개발, 양극단 접근 벗어나야

주거복지 분야 전문가인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열악한 환경의 노후 단독주택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로 '모 아니면 도' 식의 정책 기조를 꼽았다.

최 소장은 주거 환경 개선 정책이 ‘재생' 아니면 '재개발’ 이라는 극단적 방향성을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개발만으로 개발 구역 바깥에서 소외되는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도시재생만 강조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입지조건이 각각 다르고 그에 따른 개발 사업성이 제각각인 노후주택의 경우, 재생과 재개발이 품을 수 없는 '그레이존'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노후주택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특성(연령·소득·경제활동 상태 등)을 반영하는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추진되는 도시개발 정책은 문제 해결을 위한 ‘큰 칼’과도 같은 것”이라면서 “가장 필요한 제3의 대안으로는 집수리 활성화와 같은 ‘작은 칼’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 노후주택 가구주의 절반(60세 이상 49.6%)을 차지하는 고령층에게, 이런 집수리 방식의 접근법이 어울릴 수 있다. 최 소장은 “낡은 집이라도 고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며 "특히 노인들은 환경 변화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서울 강북구 번동 일대에 조성되는 모아주택 1호 사업지 아파트 배치도. 오세훈 시장이 추진 중인 모아주택 정책의 제1호 사업지다. 서울시 제공

서울 강북구 번동 일대에 조성되는 모아주택 1호 사업지 아파트 배치도. 오세훈 시장이 추진 중인 모아주택 정책의 제1호 사업지다. 서울시 제공


진도가 느린 서울시 집수리 사업

서울시도 노후주택 수리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집수리 사업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사업 속도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현재 시의 집수리 지원 사업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하나는 세입자를 포함하는 저소득 가구(중위 소득 60%이하)에 최대 120만 원(공공주도형)의 예산을 지원하는 ‘희망의 집수리’사업이다. 또 하나는 노후주택 소유주를 대상으로 하는 집수리사업인 ‘가꿈주택사업’이다. 해당 사업의 적용을 받는 집주인은 수리비의 최대 50%를 시에서 지원받을 수 있다.

서울시의 집수리 사업을 전담하는 유관기관인 도시재생지원센터의 박학용 주택사업단장은 “현재 노후도 20년 이상 된 저층 단독 다가구주택 등 16만 채가 서울의 집수리 사업 대상”이라고 말했다. 노후도를 20년 이상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박 단장은 “2000년 이전엔 건축법 상의 주택 성능기준, 관리체계 등이 굉장히 허술해, 2000년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을 관리 대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대상을 선정해 집수리에 나서기는 했으나 그 진행 속도는 빠르지 않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4년 간 약 4,000채의 수리를 완료하는 데 그쳤다. 전체 대상 16만 채 중 진척도가 2.5%에 그치는 수준이다. 늦은 속도에 대해 박 단장은 “재개발 등 정비사업과 집수리 정책이 충돌하면서 집수리 사업 대상구역을 확대하지 못하는 것이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도시정비법 상 재개발 등의 구역으로 지정된 후엔 증축이나 집수리가 지자체 허가 사항으로 바뀐다. 구역에 속한 노후주택 소유주는 단순한 인테리어 정도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당장 지붕이 무너질 위험에 처해도 보수를 하려면 구청 승인이 필요하다. 수리를 받으면 집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고, 이 경우 개발 사업 진행에 따른 보상 또는 감정평가 금액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하고 싶다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집수리가 재개발의 장애물이 된다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 있다. 박 단장은 "집을 고쳐주면 재개발을 안 하려고 할 것 아니냐고 대놓고 말하는 시의원들도 있다"며 “그나마 협의를 거쳐 정비예정구역까지는 집수리 사업이 가능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수리, 안전점검과 연계해 ‘품질’ 높여야”

박 단장은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집수리 사업을 서울시의 노후주택 안전점검 결과와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점검 결과 위험하다고 판단된 노후주택은 경미한 수준의 집수리가 아닌 대수선 대상으로 삼는 식이다. 대수선은 건축물의 기둥·보·내력벽·주계단 등의 구조나 외부 형태를 수선·변경하거나 증설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노후주택의 안전도에 따라 수리의 규모를 달리 하는 방식은 서울시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다. 논의가 답보 상태라는 지적에 대해 유창수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내년부터 지역건축안전센터의 구조보강지원사업과 주거환경개선과의 가꿈주택사업(집수리 사업)을 연계하겠다"며 "(그 결과에 따라) 보수·보강이 필요한 노후건축물의 집수리 비용을 확대 지원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일보 인터랙티브 '박제된 나의 집' (링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아래 URL을 복사해서 이용해주세요) :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old_house/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몰아보기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①서울 '초노후주택' 2.3만 채... 그중 56%는 차도 못 가는 골목에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316290003977

②서울 ‘초 노후주택’ 2.3만채 통계화 어떻게 했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814340000766

③수리도, 재개발도, 이사도 안돼요... 늙은 집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121190000960

④[단독] 쩍쩍 갈라지고 파여도...노후주택 75% 점검조차 없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2110004952

⑤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이 60대 이상... 집과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4270003639

⑥서울서 연탄 쓰는 노후주택 여전히 600가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17240000973

⑦불도저와 벽화 사이... '갈지자(之)' 오간 ‘낡은 집’ 정책 20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515290004143

⑧개발-재생이 못 품는 '그레이존'... 집수리 활성화는 대안이 될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4380005235

글 싣는 순서

<박제된 나의 집: 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①도시의 섬이 된 늙은 집들
②오래된 집에 갇힌 사람들
③개발-재생의 이분법을 넘어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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