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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퓨처도 상상 못한 미래... 배터리 개발자는 알고 있다

입력
2022.12.16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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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전지 전문가 김해진 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편집자주

영화의 상상력은 시대를 앞서갑니다. 공상과학(SF)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로, 미래는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되지요. 영화는 미래와 현재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하지만, 현실에서 그 상상을 진짜로 만드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입니다. 이미 수십 년 전 영화에서 묘사됐던 미래 기술이 현실화된 사례가 많습니다. 한국일보는 SF영화ㆍ소설에 등장했던 가상 기술이 실제 구현된 사례를 찾아보고,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술의 적용과 미래 발전 가능성을 조명해 봅니다.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분석과학연구본부장이 대전 유성구 과학로 연구동에서 안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대전=홍인기 기자 2022.09.27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분석과학연구본부장이 대전 유성구 과학로 연구동에서 안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대전=홍인기 기자 2022.09.27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백투더퓨처2'(1989년)는 미래로 간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 분)의 이야기다. 마티는 아들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을 막으려고 에밋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 분)와 함께 30년 후 미래(2015년)로 향한다.

그들이 간 '2015년 미래'에는 교통체증을 피해 택시가 하늘을 날고 사람 대신 드론이 강아지를 산책시킨다. 가정마다 있는 전자렌지는 한 뼘도 안 되는 건조 피자를 단 3초만에 패밀리 사이즈의 따뜻한 피자로 만든다.

이 영화가 개봉됐을 당시 톡톡 튀는 미래 제품 가운데 특히 영화팬들을 열광시킨 아이템은 ①자동으로 묶이는 나이키 운동화 ②민첩하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스케이트 보드 ③소매길이가 몸에 맞게 줄어드는 점퍼였다. 당시에 상상은 가능했지만 소형 배터리(전지) 기술이 없어 만들 수 없었던 제품들이다.

1989년 제작된 공상과학영화 '백 투더 퓨처 2'의 한 장면. '2015년 미래'로 간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스스로 발을 조이는 운동화를 신고 날아다니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네이버영화' 캡쳐

1989년 제작된 공상과학영화 '백 투더 퓨처 2'의 한 장면. '2015년 미래'로 간 주인공 마티 맥플라이가 스스로 발을 조이는 운동화를 신고 날아다니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네이버영화' 캡쳐


웨어러블 혁명을 이끄는 배터리 기술

과거 인간의 상상력으로만 그렸던 미래는 기술 혁신 덕분에 꽤나 비슷한 현실로 다가왔다. 특히 배터리 소형화와 비약적 성능 발전은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길을 열었다. 배터리를 작고 얇게 만들면서 거기에 고용량의 전기를 담는다면, 기상천외한 기능을 가진 전자기기를 인간의 상상대로 만들 수 있게 된다.

한국도 고성능 '차세대 전지'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보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가시적 성과도 서서히 나오는 중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은 지난해 '구겨도 잘라도 작동하는 전고체 전지'를 최초로 개발했다. 김해진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자유변형 전고체 전지(배터리의 양극과 음극 사이 전해질이 고체인 2차전지)는 가로X세로 약 6X5㎝ 크기에 1㎜ 이하의 두께지만 3v이상 전압의 500mAh 성능을 자랑한다. 현존하는 동급 전지 중 가장 가볍고, 기존 액체 전해질 전지와 비교해 압도적인 안전성을 지녔다. 세계 10위권(시총 기준) 대기업이 기술 상용화 및 공동 연구개발을 위해 연구팀에 접촉해 왔을 정도로 각광 받는 미래기술이다.

구겨져도 부러져도 작동하는 전고체전지

연구팀을 이끈 김해진 박사를 만나 새로 개발한 전고체 전지의 특징, 그리고 한국 배터리 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박사님, 인간이 전지를 사용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전지는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장치에요. 이 원리를 사용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어요.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서 2,300년 전에 쓰던 유물이 발견됐는데 이게 인류 최초의 전지에요. '바그다드 전지'라고도 부르는데 음식 보관 등에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돼요. 조금 더 현대적 의미의 전지는 1800년 이탈리아 화학자 알렉산드로 볼타가 발명한 볼타 전지가 있어요. 요즘 많이 사용되는 2차전지(충전이 가능한 전지)는 리튬이온 전지로 1970년대 처음 학문적으로 제안됐죠. 2019년 노벨화학상을 탄 존 굿이너프 교수, 스탠리 휘팅엄 교수, 요시노 아키라 박사가 연구를 주도했어요."

-반도체나 통신 기술에 비해 유독 전지의 발전은 느리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쉽게 일상에서 사용하는 게 전지지만, 성능 향상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니(Sony)가 1991년 처음 상용화에 성공한 이후 용량을 두 배로 늘릴 때까지 10년이 걸렸어요. 소재 연구나, 음극재, 양극재, 전해질에 대한 연구가 각각 이뤄지고, 이것을 하나의 전지(풀셀)로 개발해 상용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2000년 후반에 한국의 한 학자가 컴퓨터 코딩을 이용해 수소전지의 저장 효율성을 높이는 획기적 신소재를 제시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화학자들에게 그 소재는 개념으로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만들 수 없는 소재였어요. 결국 아직까지도 개발되지 못했습니다."

-리튬이온 방식의 전지가 한계에 다다른 건 아닐까요?

"그렇게 보진 않아요. 소재 과학의 발전이 전지 발전을 이끌 수 있어요. 요즘은 인공지능(AI) 딥러닝이나 양자컴퓨터 등을 통해 신소재를 발빠르게 찾을 수 있는 길도 열렸죠.

다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안전성, 안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스마트폰,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잖아요. 화재는 현재 사용되는 액체 전해질의 고질적인 문제에요. 액체 전해질은 대부분 유기화합물로 이뤄져요. 이온이 유기화합물과 반응하면 덴드라이트(수지상결정)가 조금씩 형성되는데, 이게 분리막을 찢게 되면 쇼트(스파크)가 일어나고 불이 붙거나 폭파해 버리게 돼요. 리튬이온 전지는 전기차에도 활용되는데, 차는 늘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잖아요. 충돌로 배터리 안에 있는 안정화 회로가 파손되거나, 배터리의 화학물질이 공기 중에 노출되면 폭발하거나 불이 날 수 있어요. 급속 충전도 위험을 높입니다. 급속 충전은 높은 전압으로 에너지를 빠르게 집어넣는 거에요. 그렇게 하면 화학물과의 작용이나 덴드라이트, 변형 등이 쉽게 일어나요.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것과 같아요.

또 문제는 전지가 무거워진다는 거에요. 액체 전해질 전지는 덴드라이트를 막기 위해 여러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어요.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 작은 칩도 들어가요. 안전장치는 전지 무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해요.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무게만 800kg 이상이에요. 결과적으로 액체 전해질 방식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위험성은 전지의 효율성을 막는 주범이죠."

-차세대 전지로 전고체 전지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인가요?

"맞아요. 전고체 전지는 기존 리튬이온 전지의 개념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전해질로 액체 대신 고체를 사용하는 거에요. 모두 고체여서 전고체 전지라고 불러요. 전고체 전지는 덴드라이트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요. 전지에서 분리막(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구분하는 절연 소재의 막)은 일종의 댐이에요. 하지만 댐은 나뭇잎 등 불순물이 쌓여서 물을 막거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잖아요. 그게 전지에선 덴드라이트에요.

그런데 전고체 전지에는 물이 없어요. 대나무같이 텅빈 채널로 양쪽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 속에 흔들어가는 것은 순수한 리튬이온뿐이죠. 결국 전고체 전지는 안전장치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에 같은 부피나 무게로 전지의 용량이 최대 두 배까지 커질 수 있어요. 충전 시간을 줄일 수도 있어요. 액체 전해질을 이용하는 전기차는 폭발 위험 때문에 최대 80%까지만 급속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어요. 하지만 전고체 전지를 사용한다면 100% 급속 충전이 가능합니다. 충전 시간이 10~15분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봐요."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분석과학연구본부장이 대전 유성구 과학로 연구동에서 안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전고체배터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대전=홍인기 기자

김해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분석과학연구본부장이 대전 유성구 과학로 연구동에서 안전성과 안정성을 확보한 전고체배터리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대전=홍인기 기자


-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개발한 전고체 전지는 어떤 윈리인가요?.

"보통 전고체 전지에선 전해질로 산화물 계열이나 황화물 계열을 사용해요. 우리 연구팀은 고분자 폴리머 계열을 전해질을 사용해 종이 한 장 정도로 얇은 자유변형 풀셀 전지를 만들었어요. 전고체이기 때문에 구부리거나 자르고 구멍을 낸다고 해도 위험하지 않고, 파손된 상태로도 작동해요. 떨어진 부분만큼의 전력 손실이 있을 뿐이죠. 또한 전고체 전지 특성상 안전장치가 필요 없어서, 동급 전지 가운데 가장 가볍습니다. 기존 aa배터리(1.2v)와 비교하면 전압면에서 유리해 기존 전자제품에서 전지가 차지하는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얇고 자유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제품의 디자인 측면에서도 자유를 얻게 됩니다. 기존에는 사각박스 형태를 제품 밑단 등에 넣어야 했다면, 이 전지는 쉽게 말해 스티커를 붙일 공간만 있으면 넣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조끼, 장갑, 신발 등 웨어러블 기기에도 넓게 활용될 수 있다고 봐요. 건강에 직결되는 헬스케어 제품이나 인공심장, 파손의 위험이 있는 군용 방한조끼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전고체 전지를 개발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풀셀 전고체 전지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드는 일이었어요.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불가능 할 것'이라는 조롱을 많이 받았죠. 누구도 해보지 않아서 기초 참고자료(레퍼런스)도 없었어요. 목표 용량에 도달할 수 있는 양극 음극 소재를 만들고 전해질의 성분을 정한 뒤에도, 이들의 밸런싱(균형)을 찾아가는 데만 1년 반이 넘게 걸렸어요. 당시 대부분 실험은 대전에서 이뤄졌지만, 풀셀 조립은 드라이룸이 있는 부산센터에서 진행했어요. 실험실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도 조립 이후 성능이 나오지 않는 일이 반복됐어요. 보통 일 주일에 한 번씩, 어느 때는 2개월 넘게 부산에 머무르기도 했어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동료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끊임없이 토론했던 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 후속 연구는 어떤 것들이 남아 있나요?

"전고체 전지가 액체 전해질 전지 만큼 성능을 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이온전도도에요. 이온전도도는 리튬 이온을 양극에서 음극으로, 음극에서 양극으로 얼마나 빨리 이동시켜주는지를 말해요. 고체는 액체보다 이온전도도가 낮을 수밖에 없죠. 통상 고체 전해질의 이온전도도는 액체 전해질보다 1,000~1만 배정도 느리다고 해요. 현재 전고체 전지 연구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고체 전해질의 이온전도도를 액체 전해질 정도의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이냐는 거죠. 다른 양극소재를 활용해 전압을 늘리는 연구가 진행될 수도 있지만, 우리 연구팀은 결국 이온전도도를 높이는 전해질 연구가 전고체전지 개발의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개발한 전고체 전지만으로도 용량은 1,000~1만mAh까지 늘릴 수 있어요. 여기에 이온전도도 문제를 좀더 개선시킨다면 폴더블폰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전기차에도 전고체 전지가 활용될 수 있다면 자동차의 무게가 절반 정도로 가벼워질 겁니다."

-한국의 배터리 기술 수준은 외국에 비해 어떤가요?

"한국 배터리는 품질이나 생산량, 판매액 쪽에서 앞서가지만 사실 원천기술은 별로 없어요. 전고체 전지를 봐도 전체적으로 뒤쳐 있어요. 일본이 세계 특허의 40% 정도를 소유하며 가장 앞서 있어요. 이미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2차전지의 전해질을 황화물계 고체로 바꿀 수 있다'는 논문을 '네이처'에 실었고 상용화 연구를 본격화했죠. 한국은 지분을 점점 늘리고 있지만 일본에 비하면 여전히 낮아요.

우리는 기업도 마찬가지고 연구기관도 성과 위주의 환경이에요. 최근 2차전지에선 전기차에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지원이 집중돼 있죠. 하지만 전고체 전지부터, 리튬에어((리튬과 산소의 화학반응을 이용),, 원자전지까지 연구의 분야는 매우 다양해요. 기초 소재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이르기까지, 연구자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성과도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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