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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SNS에 명품 구입을 자랑하는가?

입력
2022.10.25 04:30
수정
2022.10.25 10:13
14면
0 0

<3> 소비의 사회, 그 신화는 계속되는가?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로 본 세태
유명인, 소비의 영웅으로 대중문화의 아이콘
`플렉스’라는 행위, MZ세대 명품 소비에 일조

편집자주

주로 수치로 묘사되는 경제학은 추상적인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결국 구현되는 것은 경제 현상이라고 다르지 않겠죠. 경제 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들이 문학과 역사학, 철학에 등장하는 경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문학 속 경제’를 3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일상성은 쾌락주의적 행동이자 ‘우울한 즐거움’을 유발하며, 대중매체는 이런 쾌락주의에 대한 죄의식에 전략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일상성은 쾌락주의적 행동이자 ‘우울한 즐거움’을 유발하며, 대중매체는 이런 쾌락주의에 대한 죄의식에 전략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1970년 프랑스어 출간, 1991년 한국어 번역)’는 전후 급격히 발전한 서구사회의 소비현상을 사회철학적으로 분석한 저서다. 장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 중 한 명으로 이후 ‘기호의 정치경제학비판을 위하여’, ‘생산의 거울’ 그리고 대표작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등을 통해 소비, 기호 및 가상(假像)이 서로 어떻게 연관돼 사회구조를 구축하는지 설파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현대성)으로 대표되는 서양합리주의(혹은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懷疑)를 가지고, 이성, 권위, 규칙 등의 합리주의적 체계를 해체하려는 사조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합리성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성주의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서 현대성의 구조에서 약한 고리를 찾아 공격하고 해체함으로써 현대사회를 해석한다. 특히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현대사회의 소비현상을 경제학의 개념보다는 구조주의적 기호학에 기초해 분석한다.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소비의 사회' 표지. 아마존 제공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소비의 사회' 표지. 아마존 제공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소비사회에서 사물들(좁은 의미로는 재화들)은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서 끊임없이 전시됨으로써 윤택함의 이미지, 즉 행복의 기호(記號) 체계를 구성한다. 그는 이것을 모든 것이 과잉된 `축제‘의 이미지라고도 설명한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기호질서인 소비질서가 생산질서와 얽혀 있는 장소가 된다고 한다. 결국 그에게 소비는 대중매체와 연결된 일상성 속에서 행복이라는 기호(記號)를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소비의 일상성은 쾌락주의적 행동이자 ‘우울한 즐거움’을 유발하며, 대중매체는 이런 쾌락주의에 대한 죄의식에 전략적으로 면죄부를 주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개인의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소셜미디어를 보면 그의 지적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개인들은 소비한 사물들의 사진을 끊임없이 올리고, 그 안에서 개인들은 소비된 사물들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하물며 프로필사진조차도 서비스산업에 의해 물화(物化)된 사물로서 소셜미디어에서 소통된다.

보드리야르는 특히 경제학은 공공서비스와 사적 서비스를 전혀 구별하지 않고 모든 종류의 생산물과 서비스의 가치를 합계한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공공지출 등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재분배 정책은 사실상 자본주의 특권층을 보호하는 전술적 요소로서 인식된다. 또 생산성 향상이라는 개념은 노동자들을 경쟁시키고, 고용불안이라는 보편적인 ‘강박관념’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소비는 고용불안에 대한 보상으로 경제성장에서 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항목으로 개념화된다. 그리고 경제성장은 소비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 특권계급, 불균형 등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한다.


10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쇼핑몰에서 시민들이 쇼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 시내 대형쇼핑몰에서 시민들이 쇼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그는 ‘낭비’라는 비합리적 개념에 주목하는데, 개인이나 사회가 진정으로 살고 있다고 자각하는 것은 여분의 재화를 소비할 때라고 주장한다. 결국 그에게 소비는 생산적인 낭비로 정의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주거지가 있음에도 시골별장을 따로 소유하는 것, 그 행위야말로 ‘여분의 어떤 것’에 대한 낭비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낭비의 사회에서는 유명인들은 소비의 영웅으로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된다고 설명한다. ‘낭비’는 탈공업화사회의 지배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힙합신의 `플렉스’라는 행위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반인은 전혀 따라할 수 없는 낭비, 즉 과잉의 ‘플렉스’가 소셜미디어에서 일종의 ‘소비놀이’로 정착되면서, MZ세대의 명품소비 열풍을 유행시키는 데 일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더불어 보드리야르는 소비를 차이(혹은 차별)의 상징적 과정으로 분석한다. 즉 소비행위는 사회적 의미작용 및 의사소통과정에서의 교환체계이며, 언어적 활동과 동일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비된 사물들은 사회적 의미상 차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기호들로서 중층적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앤드리아(앤 해서웨이 분)의 정체성이 그녀가 입는 패션에 따라 해석되는 것과 같다. 물론 영화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자아(최초의 패션)로 다시 돌아가지만, 보드리야르의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들은 오직 소비된 사물들의 차이(기호)로 정체성이 해석될 뿐이다.

또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산업체계에서 소비욕구는 재화의 공급을 항상 초과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재화의 생산속도는 경제의 생산성과 연관되나, 소비욕구의 확대는 사회적 차이화의 속도와 관련된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경제적 생산의 증가에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소비욕구의 확대에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음식을 소화하는 능력은 한계가 있지만, 음식에 관한 문화체계(즉 사회적 차이)는 무한하다는 것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무수한 먹방 동영상을 보라! 우리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없지만, 먹는 행위에 대한 관음(觀淫)은 끊임없이 할 수 있다.

니치향수.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니치향수.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그에게 이러한 소비욕구의 초과는 광고와 도시화를 통해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광고를 통한 유행의 사회적 연쇄반응은 도시라는 밀집된 ‘기하학적’ 장소에서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는 도시의 인구집중은 결국 개인을 소외시키고, 성장의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경제성장은 역설적이지만, 구조적 결핍의 재생산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영화 ‘택시드라이버’가 떠올랐다. 1970년대 고속성장하는 뉴욕의 거리를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 분)는 밤마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돌아다닌다. 거리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향락시설이 즐비하다. 트래비스는 아무 생각 없이 포르노를 소비할 뿐 아니라, 첫 데이트의 여인을 아무렇지 않게 포르노극장에 데리고 간다. 거기에는 사유의 실존적 존재보다는 거대한 도시와 화려한 향락과 광고의 체계에 포섭당한 결핍된 자아만 존재할 뿐이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 한 장면. 보드리야르는 "도시의 인구집중은 결국 개인을 소외시키고, 성장의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 한 장면. 보드리야르는 "도시의 인구집중은 결국 개인을 소외시키고, 성장의 사회는 풍요로운 사회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소비의 사회’는 전체 저서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며, 필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그러나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관점에서 텍스트는 이미 필자의 손에 있고 오독은 필자의 권리이니까). 필자는 보드리야르가 날카롭게 분석한 현대 소비사회의 모순들, 예컨대 과잉소비에 대한 병적인 집착,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적 재생산 등은 분명 개선돼야 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이라고 인정한다. 더불어 보드리야르의 사회분석이 영화 등 다양한 예술작품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의 소비이론은 경제학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바탕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히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경제학에서 재화들은 소비자의 선호(選好)체계에 의해 선택되는 사물들이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기호학적 혹은 사회학적 의미들이 직접적으로 고려되지는 않는다. 경제학은 소비되는 사물들을 계량화된 수치로 대상화하지 소비자의 소비되지 못한 욕구를 계량화할 수는 없다(욕구는 소비의 효용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여기서 보드리야르의 이론과 경제학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경제학이 이러한 계량적(수학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이유는 경제현상을 단순히 해석하는 것을 넘어 가장 최선의 해(解)를 찾고, 소비자의 경제적 행동을 예측해 경제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팬데믹의 경제위기를 막기 위한 과도한 유동성 공급 및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정으로 인해 전 세계는 높은 물가를 경험하고 있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고물가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 및 경기가 부진해지는 것을 피하면서도 고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최적의 기준금리 경로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불어 정부는 이러한 긴축통화정책으로 인한 고금리 및 고물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적절한 재정정책을 집행하려고 한다. 이는 엄밀하게 계량화된 경제모형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두 번째, 보드리야르가 지적하는 것처럼 경제통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을 들어가 보면, 국내총생산(GDP)의 세분화된 항목뿐 아니라 기업, 노동, 소득분배 등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표준화된 경제지표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경제 및 기술이 발전할수록 복잡한 경제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지표들은 계속해서 개발되고, 전문가들은 관련 경제지표를 가지고 고령화, 소득양극화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정책을 고민한다.

세 번째, 현대경제학은 매우 세분화돼 경제주체 간 이질성(heterogeneity), 비대칭성, 불평등, 경제적 마찰과 제약 등을 고려한 경제학 분야뿐 아니라 비합리성(제한된 합리성)을 가정하여 인간행동를 분석하는 ‘행동경제학(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도 있다. 그렇다고 비합리성으로서 모든 경제학적 현상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모든 경제적 문제들이 하나의 경제모형으로 설명되지는 않으며,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인 수학도 정합성이 완전하지 않듯, 경제학의 정합성도 완전하지는 않다. 하지만 경제학은 19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신생학문으로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의 도움을 받아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여력이 충분한 학문임은 틀림없다.

마지막은 보드리야르가 비판한 현대자본주의의 대안(代案)이다. ‘소비의 사회’에서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지만, 그는 수렵-채집사회를 예로 들면서 미개사회의 집단적 생활에서는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빈곤과 결핍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사회가 돌아갈 수 없는 향수(鄕愁)일 뿐 지금까지 축적된 문화나 문명 그리고 사회적 자본을 파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이미 팬데믹을 겪으면서 강제로 붕괴된 소비가 어떻게 타인의 경제활동을 파괴할 수 있는지 분명히 보았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소비의 신화는 계속되는가? 아니다. 끊임없는 사물들에 중독된 군중(群衆)에 대한 풍자와 교훈의 우화(寓話)만 계속될 뿐이다.


남창우 KDI 거시ㆍ금융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

남창우 KDI 거시ㆍ금융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

남창우 KDI 거시ㆍ금융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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