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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토크라시' 본격화...초고령화와 동반할 신질서로 재편 필요

입력
2022.10.18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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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만 베이비부머, 고령화된 거대 인구
2035년 70세 이상 인구, 전체의 20.9% 차지
인구가 늙으면 정치도 늙어 고령 정책 우위
갈등축소, 세대상생의 대응이 시급한 시점
미래와 청년 배려하는 어른정치가 '시대화두'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 단위로 화요일 연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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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올드보이 지배사회 ‘달라진 세대상생 모델 급구’

초고령화는 거대인구의 출현을 뜻한다. 노년기준(65세)을 넘어선 1,700만 베이비부머(1955~75년생)가 그렇다.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는 본격화된다. 노년정치의 개막이다. 인구가 늙으면 정치도 늙는 향(向)고령 정책우위로 돌아선다. 민주주의의 흠결처럼 다수인구가 선호정책을 독과점하는 체제다. 노년전체의 담합행위로 확대해석하면 곤란하다. 노년 내부의 양극화가 심하고 바람직한 어른정치도 많다. 그렇기에 갈등축소·세대상생의 대응이 시급하다. 구심력에 맞설 원심력으로 균형점을 찾자는 의미다. 불가피성을 앞세운 수동자세보다 초고령화와 동반할 신질서 재편의 호기로 삼는 게 좋다.

초고령사회와 노년권력 ‘제론토크라시 개막’

유례없는 초저출산이 초고령화를 한층 앞당겼다. 현상을 직시해 불상사가 적도록 선제대응이 시급하다. 노년정치는 확인됐고 갈등현실은 시작됐다. 갈수록 한국사회는 올드보이 지배사회로 재편될 전망이다. 정책실행의 주체·객체 모두 노년화를 향한다. 머릿수가 중요한 정치공학은 벌써 노년심중에 사활을 건다. ‘득표율=머릿수’인 탓에 거대그룹에 맞춰 러브콜을 날린다. 자원배분의 무게추가 쏠린다는 얘기다. 신노년 연령기준으로 유력한 70세 이상만 봐도 점유율은 증가세다. 70세 이상은 2035년 총인구의 20.9%로 커진다. 2015년(9.0%) 대비 2배를 웃돈다. 2050년이면 30.5%까지 확장된다. 뒤이어 ‘중년→노년’을 향하는 4070세대도 1990년 24.1%에서 2035년 43.8%로 급증한다. 결국 2035년 40대 이상만 64.7%의 압도적 절대비중을 점한다. 반대로 40대까지는 정치변방 신세로 위축된 발언·참여권에 좌절한다. 늙은 리더십이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초고령화의 단면이다. 세대교체 없는 서열고착인 셈이다. 정년연장·연금개혁 등 고령화두가 부각될수록 제론토크라시는 심화된다.

8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8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수단체들의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표류우려→집단행동→의지실현→이익획득’의 순환구조는 득표파워로 실현된다. 지킬 게 많을 때 보수화된다면 후속주자인 중장년도 마냥 반대하기는 어렵다. 회색지대인 4050세대까지 포섭한 실버민주주의(Silver Democracy)의 발휘다. 약화된 호구지책을 둘러싼 생사여탈의 세력화가 펼쳐진다. 다 함께 뭉쳐 집단이익을 확보하고자 정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관전포인트는 베이비부머다. 거대규모를 보건대 유력한 압력단체로 부각된다. 베이비부머를 일컫는 ‘거대한 도마뱀 속의 돼지(Pig in a Python)’란 비유처럼 그들의 집단욕구는 전에 없던 위협요소이자 정책과제일 수밖에 없다. 한 표의 격차문제도 제론토크라시에 힘을 싣는다. 선거구별 유권자의 한 표가 동일가치가 아니란 의미다. 고령지역(≒농촌)은 적은 표로도 당선되나 청년지역(≒도시)은 더 받고도 낙선되는 현실한계다. 선거구 개편논의로 연결되나 고령화에 기댄 정치권의 이해와 부딪힌다. 일본 등 선진국은 2~3배까지 격차가 보고된다. 그래서 청년·양육부모 등은 두 표를 주자는 말까지 떠돈다. 민주주의 절차의 빈틈이지만 다수결로 승부를 본다면 머릿수에서 밀리는 청년정책은 퇴색된다.

거대한 표류집단 ‘초고령화의 슬픈 사건사고’

초고령화는 거대인구의 집단노화를 의미한다. 일부만의 기현상으로 치부했던 일도 빈도·유형이 늘면 간단히 넘겨버릴 수 없다. 당장 은퇴 이후 표류노인의 동시발생이 예상된다. 할 것도, 갈 곳도 없는 극한의 무위공포 속 방황행렬은 불어난다. 일례로 탑골공원의 단골노인도 수천 명에 달한다. 무임승차에 힘입어 소일할 겸 곳곳에서 찾아드는 출ㆍ퇴근형도 상당수다. 환대받는 부자노인은 극소수다. 역할·기대 없는 노년표류는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정년연장 등 유효활약이 논의되나, 당장은 아닐뿐더러 대상도 적다. 절대다수는 일자리 강판 이후 마운드와 결별한다. 환갑 전후부터 셈하면 유병연령이 시작될 ±75세까지 해당된다. 개인불행도 넘어선다. 사회전체에 미칠 만만찮은 갈등·비용을 유발한다. 우울증·자살률 등 노년발 불행지표는 예고됐다. 사실상 장수축복 속 여유로운 노후생활은 시효 없는 각자도생에 좌절된다. 또 노노(老老)격차는 시한폭탄에 가깝다. 선진국도 다수불행·소수행복의 편향된 이중구조는 골칫거리다. 일본은 금전능력별 노년취향이 ‘스가모(巣鴨)=서민지향’과 ‘다이칸야마(代官山)=명품지향’으로 부딪힌다. 표류노인은 전통사회에서 없던 현상이다. 도시·현대화가 부담스런 잉여존재로 전락시킨 결과다. 유병노후가 시작되면 상황은 더 괴롭다. 빈곤·고립·질병의 고독사가 그렇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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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염려는 ‘개별불행→사회갈등’의 연결고리다. 노년방황이 왕왕 집안한계를 넘어 집밖갈등으로 비화돼서다. 즉 개인사를 벗어나 사회악으로 치닫는 경우다. 은퇴 이후 사회부적응이 빚어낸 사건사고가 그렇다. 가벼운 민폐부터 중대한 범죄까지 확대된다. 인구비중이 높으니 관련빈도가 잦은 게 당연하나, 생소한 데다 특유의 잉여낙인까지 찍혀 체감반발을 높인다. 실제 초고령사회 일본의 노년방황은 위험수위를 넘겼다. 벌써 10여 년 전부터 경계대상으로 망주(妄走)·폭주(暴走)노인이란 신조어가 퍼졌다. 괴물처럼 본인가정은 물론 지역·사회곳곳에 사건사고를 일으킨다고 봐서다. 자존·상실감이 외부로 향하면 노년범죄를 낳는다. 노년비중보다 고령범죄의 증가속도도 빠르다. 법령·실무상 기소유예가 많아 감춰진 노년범죄는 더 많다. 실제 일본의 고령죄수는 1989년 2.1%에서 2020년 22.8%로 늘었다. 고령죄수만 따로 수용한 전용시설이 있을 정도다. 간병시설처럼 돌봄직원이 상주하고 밥도 고령·환자식 위주다. 노역은커녕 투약여부와 신체·인지능력 향상이 중요해 감옥보다 병원이란 볼멘소리도 많다. 노년범죄는 연금차별 속 청년반발도 심화한다. 요컨대 ‘노인포비아’다. 단절보다 소통, 잉여보다 활약을 위한 사회전반의 대응체계가 요구되는 배경이다.


고성장을 경험한 고령 세대는 부가 양극화돼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들 세대 내에서 불평등을 먼저 해소하고 미흡할 경우 세대 간 분담을 하는 게 좋다. 세대 불평등은 유지한 채 빈곤한 노인의 복지를 다른 세대가 분담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고성장을 경험한 고령 세대는 부가 양극화돼 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들 세대 내에서 불평등을 먼저 해소하고 미흡할 경우 세대 간 분담을 하는 게 좋다. 세대 불평등은 유지한 채 빈곤한 노인의 복지를 다른 세대가 분담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신노년의 재구성 ‘배제문제 구해낼 어른정치’

초고령화가 꼭 위험하진 않다. 긍정적인 활용기반도 탄탄하다. 매력은 키우고 흠결은 낮추는 묘책이 관건이다. 이 때문에 노년인구를 통째 힐난·부인해선 곤란하다. 걸림돌이 아닌 도약대가 되도록 세대상생·지속사회의 대타협의 실험에 나설 때다. 먼저 논의무대로 초대할 기반조성이 필요하다. 무턱대고 반감정서는 금물이다. 문제화된 특수사례의 일반화도 경계대상이다. 경험인정과 매력발굴로 잉여가 활용되는 전환환경이 시급하다. 당연히 기성세대의 업적과 살아온 세월에 대한 존경부터 시작된다. 희생이 만들어낸 성과는 탁월했다. 선진국 타이틀을 일궈낸 주역답게 고통의 발걸음이 영광의 금자탑을 세워 올렸다. 갈등조장·전선확대에 의존한 진영대결적 야합정치에 휘둘려선 곤란하다. 이권독점을 좇는 편향된 노년정치에 기만 당할 여유는 없다. 노년심기를 내세워 소수가 전체를 지배하는 독점폐해는 경계할 일이다. 멈춰진 사회의 왜곡된 출구만 집중하면 대안은 막혀버린다. 인구감소 와중의 초고령화를 위험에서 구하자면 특정쏠림을 벗어난 전체참여의 총동원을 통한 활약발휘뿐이다. ‘인구오너스(Demographic Onus)→인재보너스’로 1인당 부가가치를 늘리는 식이다. 이때 상당지분을 지닌 고령인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노년표류는 득 될 게 없다. 활력을 잃으면 담합이 커지듯 불협화음만 키운다. ‘저성장=보수화’란 점에서 혁신실험도 차단한다. 벌써 중산·청년층은 위로의 상승보다 아래로의 하락을 걱정할 정도다. 권력을 필두로 한 자원배분의 노년과대·청년과소는 곤란하다. 적재적소의 고령정책은 몰라도 맹목적인 이익장악은 재앙으로 다가설 외상장부와 같다. 또 형식보다 실체가 중요하다. 정치권의 청년발탁도 흉내내기보다 본질모색이 바람직하다. 시대급변과 과거체계의 충돌을 최소화할 실효적인 역할부여가 좋다. 미래지향을 실현할 유연·신속성을 권위주의·올드보이에 의존할 수는 없다.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을 품어 안는 신패러다임이 요구된다. 기능부전에 빠진 계층상승의 사다리도 복원되는 게 마땅하다. 세습적 고착의 상대적 박탈은 흘러넘친다. 세습자본이 없으면 활약기회조차 차단되는 사회에 미래·청년은 설 땅이 없다. 자본·노동투입을 벗어난 기술기반 혁신성장만 남은 한국사회로선 시급한 논의과제다. 1인당 GDP 3만 달러 시대에 헝그리정신, 즉 미래소득을 위한 현재인내는 멈춰 선다. 결혼·출산의 주술적 강요카드보다 눈앞의 행복·만족이 우선되는 시대다. 결국 미래·청년을 배려하는 긍정·고무적인 어른정치는 시대화두다. ‘기득권=고령층’이면 초점은 기득권에 맞춘 개혁이 옳다. 나이문제·세대갈등으로의 확전은 금물이다. 경륜·지혜를 갖춘 웃어른의 진면목을 발휘할 때다. 의지·능력은 충분하다. 넛지(Nudge)만 있다면 착화는 금방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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