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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카포연고' 나와야 유리한 투자유치... 혁신보단 학벌

입력
2022.10.26 04:30
수정
2022.10.26 16:4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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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모험하지 않는 모험자본 - 학벌 좇는 투자]
투자 유치 스타트업 대표 52%가 5개 대 출신

편집자주


우아한형제들(배민),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당근마켓 등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유니콘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만의 힘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 뒤에는 '죽음의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적시적기에 자본을 공급해주고 추후 성공의 과실을 나누는 모험자본, 즉 벤처캐피털이 있었습니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은 생태계에서 공생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들은 과연 평평한 운동장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뜨거웠던 스타트업 시장에도 겨울이 찾아온 지금, 한국 모험자본의 현주소를 짚어봤습니다.


서울대 정문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대 정문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스타트업 시장이 좋을 땐 서연고카포(서울대·연세대·고려대·카이스트·포항공대)가 투자받기 좋다고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요. 서울대·카이스트 아니면 투자받기 쉽지 않을걸요?"

4년 차 스타트업 직원

스타트업 업계에서 흔히 듣는 얘기 중 하나가 "학벌이 좋으면 투자받는 게 훨씬 수월하다"는 것이다.

반례도 있다. 화려한 학벌 없이 실력만으로 스타트업을 유니콘(기업가치가 1조 원인 비상장사)으로 키워 낸 입지전적 인물들이다. 서울예대를 졸업한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전문대 출신의 이수진 야놀자 대표 등이다.

학벌이 좋으면 투자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스타트업의 속설, 어디까지 사실일까. 한번 검증해 봤다.

ICT 분야 스타트업 단계별 투자 금액.

ICT 분야 스타트업 단계별 투자 금액.


지방대 출신 대표 7% 불과

한국일보가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벤처캐피털(VC)로부터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한 182개의 스타트업 중 대표의 출신 대학(대학 미표기의 경우 대학원)을 확인할 수 있는 기업 134개를 분석한 결과, 52.2%에 해당하는 70개 기업 대표가 서울대(22개), 카이스트(16개), 연세대(14개), 고려대(13개), 포항공대(5개)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와 카이스트 출신이 대표인 기업은 38개로, 10명 중 3명이 두 대학 출신인 셈이다.

이 밖에도 대표가 하버드대 등 해외 대학을 졸업한 경우도 21개로 서울대 다음으로 많았으며, 의대 출신 창업자가 세운 기업도 3곳이 있었다. 지방대 출신 대표를 둔 스타트업은 134개 중 10개로, 분석 대상의 7%에 그쳤다.

시리즈A 투자 유치한 스타트업 대표의 출신학교.

시리즈A 투자 유치한 스타트업 대표의 출신학교.


이들 기업 중에는 아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창업자가 고학력자임을 홍보하거나, 서울대나 카이스트 출신으로만 C레벨(CEO·CFO 등 주요 임원)을 꾸렸다고 명시한 회사도 있다. 서울대·카이스트뿐만 아니라 '과학고를 졸업했다'는 점을 내세우는 것도 차별화 전략 중 하나다.

물론 SKY나 카이스트, 포항공대에서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자 유치 비중이 높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한국 벤처 1세대로 불리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고(故) 김정주 전 넥슨 대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모두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이들의 성공 신화가 대학 후배들의 귀감이 됐을 가능성도 높다.

창업자와 심사역이 동문인 경우도

그러나 업계에선 스타트업에 돈을 대는 VC가 관행적으로 학벌을 우선해서 본 결과, 벤처 자본이 고학력 창업자에게 쏠리고 있다는 쓴소리가 적지 않다. VC가 직접 발로 뛰어 잠재력 있는 기업을 찾기보다, 학연 등을 이용한 '네트워크 투자'에 의존한다는 지적이다. 창업 구성원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인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VC로부터 시드(종잣돈) 투자를 받는데 서울대 인맥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면서 "투자유치(IR)-투자심의-실사-계약으로 이어지는 투자 절차도 형식적으로만 진행됐다"고 귀띔했다. 연세대 출신의 스타트업 대표도 "업계에서 고학력을 인정해 주는 분위기는 확실하다"며 "대표와 VC 심사역이 같은 학교 동문인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투자 방식은 아이디어의 신선함과 혁신 가능성을 가장 우위에 두어야 할 벤처 투자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는 "아직까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VC의 윤리적 투자가 강조되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여태까지 스타트업 생태계에 세금을 이용한 공적 자금이 투입돼 성장해 온 것을 고려하면, VC들도 이제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투자를 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글 싣는 순서

한국 모험자본의 현주소

(상) 모험하지 않는 모험자본
(하) 꿈의 직업이 된 벤처투자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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