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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둘러싼 '여성 혐오' 논점 총정리

입력
2022.09.23 17:00
수정
2022.09.2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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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성 혐오 범죄' 논쟁이 불편한 30대 남성

편집자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뜻의 밈인 '무물'을 아시나요. 한국일보 허스펙티브가 성평등을 주제로 한 ‘무물 콘텐츠’를 격주 금요일마다 연재합니다.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일상에서 흔하게 겪을 법한 다양한 고민 상황을 통해, 함께 성평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뎌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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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중구 신당역 내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사건 피해자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뉴스1

9일 서울 중구 신당역 내 여자화장실 앞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사건 피해자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들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뉴스1

Q.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2016년에는 20대였고, 현재 30대에 들어선 남성입니다. 먼저 최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대해 저 역시 경악을 금치 못했고, 피해자의 죽음에 대해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부 정신이상자 혹은 범법자의 일탈 행위를 두고 '여성 혐오 범죄'라고 명명하는 언론과 여성들의 관점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오히려 모든 일탈 범죄를 젠더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우리 사회의 성별 갈등을 심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불안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여자라서 죽었다'는 주장은 좀 과한 것 같아요. 남성들은 늘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박철수·32·자영업자)

A. 안녕하세요, 철수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 풍조와 성차별 구조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전개됐습니다. 시민들의 높아진 성평등 의식과 페미니즘의 확산 등이 큰 영향을 미쳤죠. 그래서 더 이상 '여성 혐오' 같은 단어가 낯설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젠더 관련 논의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기본적인 용어부터 정리해 볼게요.

여성 혐오? 젠더 기반 폭력?

① 여성 혐오(misogyny)
여성에 대한 오래되고 심오한 편견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낙인을 찍고 통제하거나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모든 생각을 의미한다. 성차별 사회와 구조를 만들어내는 원천으로 이해되어 왔다. 남성과 남성성을 '정상적·보편적'으로 보는 시각 아래에서 이뤄지는 여성에 대한 배제와 억압, 성적 통제, 여성 내 분리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②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생물학적 성별이나 젠더 정체성, 불평등한 젠더 권력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기본적 자유의 침해. 그 중 여성 대상 폭력은 전통적 젠더 기반 폭력 중 하나로, 남녀 간 불평등한 힘의 관계가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시키고 여성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양상을 보인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이 있다.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스토킹이나 디지털 성폭력 등이 새로운 형태의 젠더 기반 폭력으로 등장해 심화하고 있다.

여성 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 중심적 사회에서 자라고 배우고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남성 중심적 관습이나 문화 등 모든 사회적 맥락을 일컬어요. 궁극적으로는 여성들에 실재하는 피해를 야기하고요.

신당역 살인사건으로 돌아가 볼까요. 왜 피의자 전주환은 여성의 거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괴적인 소유욕과 폭력성을 품게 됐을까요? 왜 피해 여성을 구속하고 억압하기 위해 '불법촬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을까요? 왜 서울교통공사 내에 스토킹 사실이 알려지고도 전씨를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두둔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을까요?

아마 여성을 독립된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왜곡된 인식, 불법촬영으로 여성을 협박하고 억압하는 것이 용인되는 관습, '스토킹'을 열렬한 구애 정도로 취급하는 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한몫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여성 혐오'가 자리한 토양입니다. 케이트 만 코넬대 철학과 부교수는 저서 '남성 특권(오월의봄 펴냄)'에서 여성 혐오에 따라붙는 현상으로 '힘패시(himpathy)'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사회가 과도하게 남성 중심 권력에 감정을 이입한다는 설명인데요.

"힘패시는 잔혹한 범죄를 이해받을 만한 애정으로 인한 범죄, 또는 공감받을 만한 절박한 행동 정도로 기발하게 변모시키며, 강간과 같은 여타의 범죄들을 단순한 오해와 술이 초래한 해프닝 정도로 기발하게 전환시킨다." 어떤가요. 한국 사회의 여러 사건들에서 기시감을 느끼지 않나요.

'여성 혐오'에 근거한 '젠더 기반 폭력'은 실제 범죄 통계에서도 그 양상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스토킹처벌법으로 검거된 818명 가운데 남성은 669명(82%)이었습니다. 전체 강력범죄 가해자 2만2,992명 중 남성은 무려 95%(2만1,907명)에 달합니다. 그중 성범죄만 추려보면 △강간 98.6% △유사강간 97.3% △강제추행 95.8%가 남성 가해자였습니다. 반면 살인, 강도, 강간 등 전체 강력범죄 피해자 2만2,476명 중 여성은 1만9,296명으로 85%가 넘습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 '스토킹 피해자 보호 체계 점검을 위한 현안보고' 도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 '스토킹 피해자 보호 체계 점검을 위한 현안보고' 도중 머리를 만지고 있다. 오대근 기자

Q. 이 사건의 기저에 '여성 혐오 정서'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인 거네요. 그런데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신당역을 방문해서는 이번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했잖아요.

A. 스토킹처벌법 개정, 스토킹 피해자 지원 강화, 여성가족부의 역할 및 권한 강화 등 여성 대상 폭력 예방과 대책 마련에도 쏟을 힘이 모자란 지금, 신당역 살인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냐, 아니냐'를 논의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러나 김 장관의 발언으로 인해,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여성 혐오'와 '젠더 기반 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어요. 이에 허스펙티브가 당시 현장 발언을 함께 되짚으며 맥락을 정리해 보려 해요.

16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현장에서

▲ 김현숙 여가부 장관
-일각에선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나.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를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요. 강력한 스토킹 살인 사건의 엄정한 법 집행과 피해자 보호에 대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 장관이 여성 혐오 범죄냐는 질문에 대해 남녀 프레임으로 나눌 수 없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스토킹이나 불법 촬영 배포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의 '젠더 폭력 범죄'인 건 맞습니다. 성차별적 의식이 많이 반영된 범죄고요. 특히 성폭력 범죄 중 상해나 살해로 이어지는 범죄는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지배하려고 하는 잘못된 사회 통념이 작동하는 문제입니다.

김 장관은 "여성 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뜻을 명확히 하면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여성 혐오 범죄'도 '젠더 기반 폭력'도 아니라는 시각으로 풀이됩니다. 김 장관은 지난 7월 인하대 캠퍼스 내 성폭력 살인 사건도 '학생 안전 문제'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고 정정한 적이 있죠.

그러나 제21대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권인숙 의원은 '젠더 폭력 범죄'라는 인식을 분명히 합니다. 다만 '여성 혐오 범죄'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습니다. '혐오(증오) 범죄'는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성적 지향 등 특정 집단이나 사회적 약자에 증오심을 가지고 불특정한 상대에 폭력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 사건을 혐오 범죄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혐오 표현을 연구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19일 페이스북에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라고 단정하고 논의를 풀어가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려우며, 여성 혐오 범죄 찬반 논의로 논점을 협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여성 혐오 범죄와 젠더 기반 폭력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도, 특정 범죄를 여성 혐오 범죄라 부르기 위해서는 엄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말입니다.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의 벽’에 시민들이 추모 글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추모의 벽’에 시민들이 추모 글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Q. 그런데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서 많은 사람이 '여성 혐오 범죄'라고 주장하지 않나요. 당시 경찰이 "심각한 수준의 정신분열증에 의한 범행"이라며 "여성 혐오 살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말이에요. 강남역 사건은 이번 사건과 어떤 점에서 구분되나요.

A. 젠더 기반 폭력이 혐오 범죄냐, 아니냐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 사안이 특정 종류의 범죄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와 그로 인한 범행 동기가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야 경찰은 기존 '묻지마 범죄'라 불렸던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라 명명하고 통계를 내기 시작했을 만큼, 이상동기 범죄나 혐오 범죄에 대한 한국 사회의 준비는 무척 미흡한 수준입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수사 기관이나 사법 당국 등이 최종적으로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과 달리, 진보 정치권이나 학계, 시민사회단체, 다수 여성 시민들은 '정신질환과 여성 혐오의 상관관계'에 주목합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9년에 발간된 책 '누가 여자를 죽이는가'에서 "혐오 범죄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핵심은 '피해자를 선별했는가'에 있다"며 "선별 이유가 피해자가 속한 집단에 근거하느냐가 단순 범죄인지 혐오 범죄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여성이라서', '유대인이라서', '성소수자라서'라는 집단에 대한 편견이 피해자를 선별하는 근거가 된다면 혐오 범죄라 볼 수 있는 거죠.

강남역 살인사건 수사와 재판 결과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가해자 김성민은 '평소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무의식적 피해망상을 가진 것이 드러났고, 또 남녀공용 화장실을 이용한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여성만 살해했습니다. '피해자 선별'과 '특정 집단에 대한 범죄 동기'가 엿보이는 지점입니다.

혐오범죄에서 젠더가 소홀히 다루어지는 이유는 범죄적 행동을 규정하는 권력을 남성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며, 권력 독점은 젠더 권력과 성차별적 젠더 질서를 재강화하는데 기여해 왔다.

'누가 여자를 죽이는가' 中

반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였던 강남역 살인 사건과 달리 신당역 살인사건은 스토킹이라는 명확한 범죄 행위와 그 피해를 당한 특정 대상이 존재합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18일 페이스북에 "신당역 사건은 불법촬영, 스토킹, 살인으로 이어진 젠더 기반 폭력 사건이고 그 기저에 여성 혐오 문화가 당연히 있다"면서도 '여성 대상 묻지마 범죄'였던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 혐오 사건'이라 부르는 게 중요했던 것과 차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성에 대한 증오심을 풀기 위해 어떤 여성이든 상관없이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과 차이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Q. 설명 감사합니다. 하나하나 따져 묻긴 했지만, 저 역시 이번 사건의 참혹성과 피해자가 느꼈을 두려움, 다른 여성들이 느낄 불안에 대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혐오냐, 아니냐'는 논쟁에 우리 사회가 너무 경도돼 있다고 생각해요.

A. 맞습니다. 논쟁의 시작이 된 김 장관 발언에 매몰돼 '여성 혐오 범죄' 유무를 따지는 것에 앞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여성 대상 범죄 예방과 처벌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여성 혐오 범죄' 논쟁을 심화하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페이스북에 "단지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여성 혐오라고 규정하는 것은 현상에 대한 오독"이라면서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계곡 살인 사건' 등을 언급하며 "우리는 이를 '남혐 범죄'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신당역 살인사건을 과거 조카의 교제 살인을 변호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공격하는 데에 끌어 쓰기도 합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모두에 '혐오'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만, 신당역 사건의 핵심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는 맥락이 존재하고 가해자의 성차별 인식 등이 범죄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면서 "남녀 문제로 보면 안 된다는 권 의원 발언은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차별을 가리고,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며, 마땅히 국가가 해결해야 할 일을 방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10일이 지나고도 이어지는 추모 열기.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유가족을 대리하는 민고은 변호사가 20일 발표한 입장문 중 일부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더 이상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길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이용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 사건의 본질은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2년 동안 스토킹 피해를 입었고 결국 살인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 참고 문헌

-이나영 등(2019).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 돌베개

-케이트 만(2021). 하인혜 역. 남성 특권-여성혐오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오월의봄

※ 젠더에 대한 궁금증과 고민이 있으신 분은 1. 고민의 내용 2. 관련해 묻고 싶은 질문 3가지를 작성해 이메일(herstory@hankookilbo.com)로 보내주세요. 선정되신 분의 사연과 고민 내용은 '젠더무물'에 소개됩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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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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