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의 깡깡이 소리를 들어봤어야 했다

<25> 부산 영도

편집자주

부부 소설가인 강보라 박세회 작가가 동네에 얽힌 사회 문화적 단편을 감성적 필치로 담아냅니다.

부산 도심과 영도를 잇는 영도대교를 건너 가수 강다니엘의 고향인 영도로 향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도에 갔다가 타박을 받은 적이 있다. 때는 강다니엘에 푹 빠져 있던 2019년이었다. 우리 니엘이(그의 애칭이다)가 나고 자랐다는 영도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보수동, 남포동, 해운대, 송정으로 이어지는 나만의 부산여행 코스를 일회적으로 조금 바꿔 영도를 추가했다. 연륙교가 있는 섬이라는 얘기에 차도 렌트했다. 그러나 곧 지도도 제대로 찾아보지 않은 나를 저주했다. 영도는 차를 렌트해서 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부산역에서 액셀을 밟자마자 거의 곧바로 영도에 다다랐으니 말이다. 사실상 지금의 영도는 원도심권 안에 속해 있었다. 니엘이가 나왔다는 신선중학교에서 니엘이가 바라본 바다를 보고, 태종대에서 오륙도를 감상했다.

그러나 막상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니엘이와는 큰 상관이 없는 절영산책로였다. 영도의 서편 해안가를 따라 거의 바다에 면해 나 있는 산책로는 다른 누리길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하이킹이라 해도 좋을 높낮이의 계단길이 나타나는가 하면, 기암절벽이 시야를 가로막기도 했고 서늘한 터널 속을 지나 푸른 바다가 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절영산책로의 하이라이트는 흰여울문화마을 쪽 산책로의 끝자락 해안에 면한 노천 포장마차였다. 영도의 해녀들이 그날 잡은 해물들을 쓱쓱 썰거나 삶아 갯바위 위에 간단한 안주상을 차려줬다. 그날 나는 차를 가져가는 바람에 그곳에서 술은 마시지 못했다. 그게 한이 되어서 그 뒤로 오랜 시간 지켜 온 내 부산 여행의 코스를 아예 수정해버렸다. 이제 영도는 보수동, 초량동, 남포동, 광안리, 해운대와 함께 내 부산 여행의 정규 라인업으로 편입되었고, 영도의 해안 포차는 보수동 물꽁 식당, 깡통시장 이가네 떡볶이, 광안리 마라도와 함께 시즌에 한 번은 반드시 찍어야 하는 힐링 포인트에 등재되었다.

이제는 부산 여행을 가면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쪽 산책로의 끝자락 해안에 면한 노천 포장마차를 꼭 들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관광지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객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영도의 해안 포차에서 해물을 먹었다고 하니, 부산 친구 하나는 “거를 뭐 하러 갔노”라며 혀를 찼다. 그러나 KTX 푯값과 호텔비를 치르며 영도에 간 사람들에겐 해안에 접한 포차에서 먹는 해삼 한 접시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콘텐츠다. 애초에 맛있는 걸 저렴하게 먹는 게 목적이었다면, 기차푯값을 아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을 것 아닌가. 강다니엘이 바라보던 바다를 보며 해삼을 먹는 게 고급 관광 콘텐츠라는 걸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관광 산업의 핵심이 아닐까? 그 뒤로도 나는 부산을 찾을 때마다 “거는 뭐 하러 가노”라고 타박하는 부산 친구의 의견을 무시하고 절영길의 끝에서 해물 한 접시에 소주 한잔을 마시고 남포까지 걸어갔다.

해산물 포차뿐만은 아니다. ‘영도’라는 섬에 대한 나의 사회적 감각은 부산인의 그것과는 좀 괴리가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영도에 갔을 때 느낀 것은 ‘시가지는 크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제대로 된 소도시’였다. 반면 40대 부산 아저씨인 내 친구에게 영도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말 안 들으면, 영도다리 밑에 갖다 버린다”고 협박할 때 등장하는 무서운 지명이었다. 30대인 후배에게 묻자 “고등학생 때는 영도 출신 친구들이랑은 내기 당구를 치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묻자 “300점은 칠 실력인데, 그 동네 친구들이 다들 당구를 너무 잘치니 200점을 놓는 식이라 이길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김언수가 그린 1993년의 영도는 흡사 시칠리아다. 그의 소설은 읽지 못했으나 그의 소설에 있는 설정들을 거의 그대로 재현했다는 정우 주연의 '뜨거운 피'를 보면, 한국전력 직원이 전기를 끊어버리면 동네 건달인 희수 삼촌(정우 분)이 나서서 해결해주는 동네다. 육지의 무시무시한 거대 조폭들과 맞서도 쉽게 먹히지 않는 강한 사람들의 섬이다. 일곱 살 때까지 영도에 살았고, 그 후로도 지금까지 영도와 인연이 많은 한 후배에게 그곳은 또 “어린 시절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그러나 그 유효기간은 얼마 남지 않은 곳”이다.

부산 영도구 깡깡이마을은 배의 밑바닥에 붙어 항해를 방해하는 따개비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뗄 때 나는 '깡깡' 소리가 하루 종일 들렸던 동네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는 그에게 대체 왜 영도가 깡깡이마을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후배가 어릴 때도 아니고, 후배 어머님의 어린 시절부터 영도에는 선박과 관련된 업체들이 많았다. 수많은 영도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선박 수리 업체’라 부르던 그 작업장들은 사실 선박의 핵심 부품을 고치는 전문적인 곳이 아니었다. 항해를 나간 배의 밑바닥에는 따개비가 붙고, 홍합이 알을 까고 조류가 낀다. 특히 유생으로 부유하다 배 밑바닥에 찰싹 달라붙는 이 따개비는 번식력이 워낙 좋아서 항해 후 청소를 게을리하면 엄청난 속도로 번식해 배 밑바닥에 바위처럼 거대한 혹 덩어리를 형성한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선박이 발명된 이후 끊임없이 기록되어 온 가장 큰 항해의 골칫덩어리 중 하나라고 한다. 배의 속력이 줄어들고 심한 경우 부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영도에 사는 아주머니들, 할머니들은 독(dock)에 배를 올려두고 스크레이퍼와 망치를 두 손에 들고 이 따개비를 떼어 냈다. 그게 ‘선박 수리 업체’의 본체다. “쇠붙이로 된 막대기를 깡깡이라고 불렀어요. 이걸 망치로 때리면 깡깡 소리가 나는데, 제가 어린 시절에도 영도에선 하루 종일 이 소리가 들렸죠.” 후배가 말했다.

깡깡이마을은 육지에서 영도로 진입하는 초입에 있다. “영도 바로 건너편이 자갈치시장인데 어린 시절 거기 나가면 최신 유행하는 청바지도 있고, 카세트 플레이어도 파는 신세계였거든요. 거기서 실컷 구경하고 해질녘 영도대교를 건너올 때면, 깡깡이 소리가 들렸는데,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후배가 느낀 그 슬픈 정조를 내가 느낄 방법은 없을 것이다.

부산 영도 청학배수지전망대에서는 용두산공원부터 오륙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마지막으로 영도에 다녀온 게 아마도 올해 봄이었을 것이다. 영도의 동쪽 해변으로 달려 태종대로 향했다. 고층 아파트 단지가 해양로를 감싸고 있었으며 한국해양대학교 인근에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영도에서만 20년을 살았다는 택시 기사님은 “저게 다 영도 사람 집이면 말은 안 해요”라며 “부산 사람 서울 사람들이 다 샀지 영도 사람은 사지도 못했어”라고 말했다.

영도만 그런 건 아니다. 낮은 건물들이 있는 곳엔 사람들이 몰린다. 서울에선 익선동이, 문래동이, 성수동이 그랬다. 사람이 몰리면 낮은 건물이 사라지고,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 주인도 사는 사람도 바뀐다. “옛날엔 그냥 사람들 사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여기가 관광단지가 됐으니, 참.” 기사님이 말했다. 부산의 영도가 보이는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이상헌 박사는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영도에 대해 이렇게 썼다. "비현실적일 만큼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던 산에는 허름한 집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가난이 이끼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대한 암초 같았던 그곳."

이제 영도에는 배에 붙은 따개비가 아닌 섬에 붙은 따개비를 깡깡거리며 밀어내는 소리가 한창이다. 변화를 보는 시선은 그 지역과의 감정적 거리에 따라 다르다. 영도 출신 후배는 “이제 영도에도 깔끔하게 정비된 도로와 공원이 생겨나고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어요. 바다를 바라보는 멋진 카페들이 생길 것이고, 젊은이들이 몰려들겠죠”라면서도 “그러나 제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향수의 공간은 사라지겠네요. 영도를 떠난 영도 사람 마음은 좀 복잡합니다”라고 말했다.

애플TV+ 드라마로도 제작된 소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와 그의 부모 모두 영도 출신이다. 드라마에는 일본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선자(왼쪽)가 그의 아들 모자수와 고향으로 돌아와 수산물시장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애플TV+제공

소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부모 훈과 양진은 영도 출신이다. 봉래산의 울창한 숲을 가운데 두고 지름 8㎞ 남짓의 작은 섬에서 만나지 못한 채 각자의 인생을 살아오다 중매로 결혼한다. 아마 훈의 어부 아버지가 아내와 하숙을 치던 곳은 지금의 봉래동 인근이었을 테고, 양진이 살던 곳은 건너편인 동삼동 근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두 사람의 딸 선자가 남들 몰래 사랑을 나누는 남자 한수는 남포동 노천시장의 중매상이다. 지금의 자갈치 시장 자리다. 역사적인 고증을 철저히 한 것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그 당시에도 남포동 노천의 해산물 시장이 한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다고 말한다. 둘은 남포동에서 영도로 가는 연락선을 함께 타고 시선을 나누며 미묘한 감정의 골을 새기기 시작한다. 아직 영도다리 혹은 부산대교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작년에 '파친코'를 처음 읽을 때, 영도와 육지의 거리감이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소설에서 영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을 극화한 애플TV의 시리즈 '파친코' 역시 마찬가지다. 영도는 문명이 채 닿지 못해 자연 속에 인간이 기생하는 형태의 촌락으로 그려진다. 기가 막히게 아름답지만, 현대인이라면 단 일주일도 버텨내기 힘든 곳. 자갈치에 갈 때마다 신세계를 보았던 후배라면, 나보다는 조금 더 양진과 선자가 느끼는 영도의 거리감이 절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선자가 한수에게 느끼는 경외감이, '뜨거운 피'의 희수 삼촌이 철진에게 느끼는 분노와 열등감이 더욱 깊게 다가왔을 것이다. 땅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 역사를 아무리 글로 읽어 알아도 바뀌지 않는다. 깡깡이 소리를 들었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정조가 땅에 묻어 있다.

박세회 (소설가·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