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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 돌려달라" 7년간 백방으로 뛰었지만 돌아온 건 없었다

입력
2022.09.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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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말고 경제@추석 밥상]
2년 뒤에야 전세사기 사실 인지
전세금반환소송 이겨도 피해 회복 못해
빌라 전셋집 구할 땐 정확한 시세 알아봐야

편집자주

정치가 혼란스럽습니다. 추석 명절,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척과의 대화 주제로 여야 갈등과 혼돈을 올리긴 아무래도 불편하겠죠. 생활과 밀접한 경제 문제를 추석 밥상에 올리면 어떨까요. 금융과 예산, 부동산까지 실생활에 유용한 경제 현안을 골라 쉽고 재미있게 풀어봅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 한 신축 빌라 모습.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뉴시스

사진은 서울 강서구 한 신축 빌라 모습.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뉴시스

최근 한국일보가 '파멸의 덫, 전세사기' 시리즈를 연재한 뒤 전국에서 피해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이 중 7년 전 전남 목포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김씨 사례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사 수요가 많은 추석 이후 전세 계약 연장이나 전셋집을 구하려는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듯합니다.

하나같이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었는데, 김씨 사례는 유독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지난 7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끝내 피해를 회복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가 피해자 편에서 볼 때 한참 부족하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3천만 원짜리 빌라, 대놓고 5천에 전세 놓은 집주인

빌라가 몰려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빌라가 몰려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촌. 사진과 기사는 관련 없음. 배우한 기자

대전에 살던 김씨는 건강이 나빠져 요양차 2013년 전남 목포로 내려갔습니다. 부모는 그런 아들을 위해 병원과 가까운 곳에 5,000만 원짜리 빌라 전세를 구해줬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전셋집이 불행의 씨앗이 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김씨는 2년 뒤 이사를 가려고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기존 집주인은 이미 집을 팔았다며 바뀐 집주인 A씨 연락처를 알려줬습니다. 다시 A씨에게 연락하니, 그는 새로 세입자가 들어와야 전세금을 줄 수 있다며 부동산에 5,000만 원에 전세를 내놓으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김씨는 부동산을 찾은 뒤에야 해당 빌라의 매매시세가 3,000만 원 안팎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김씨 부모가 매맷값보다 2,000만 원이나 더 비싸게 전세계약을 한 것이죠. 김씨는 A씨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지만, A씨는 새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돈을 줄 방법이 없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김씨는 이후 전후 사정을 알아본 뒤에야 본인이 전세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전세계약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A씨는 싼 빌라만 매입하는 소위 '꾼'이었습니다. 그는 김씨가 세들어 사는 빌라 집주인에게 빌라를 산다고 한 뒤 중개업자와 짜고 해당 빌라를 매매시세보다 비싼 5,000만 원에 전세를 내놓은 겁니다. 그러고 나서 김씨 부모로부터 받은 전세금으로 빌라 매맷값 3,000만 원을 치르고 나머지 2,000만 원을 챙겨간 겁니다. 세입자 전셋값으로 빌라 대금을 치르는 전형적인 '동시진행'(무자본 갭투자) 수법에 당한 것입니다.

동시진행은 거의 빌라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빌라는 아파트처럼 시세가 명확하지 않아, 세입자로선 해당 매물 전셋값이 적정 가격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노린 것입니다. 김씨 부모 역시 주변 빌라 전세시세가 대부분 5,000만 원이 넘어 오히려 저렴하다는 중개업자 말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7년 노력은 무위로

지난 7월 21일 '신탁 부동산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 외벽에 세입자들의 피해를 호소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7월 21일 '신탁 부동산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던 서울 관악구 신림동 빌라 외벽에 세입자들의 피해를 호소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씨는 집주인 A씨에게 사기를 친 거냐며 따져 물었지만, 오히려 A씨는 법대로 하라며 배짱을 부렸습니다. 그때부터 김씨는 전세금을 찾기 위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 역시도 이 과정이 이렇게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건강이 나쁘고 형편도 좋지 못한 김씨는 가장 먼저 무료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았습니다. 공단을 통해 김씨는 A씨를 상대로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때문에 수차례 법원을 찾은 김씨는 법원 관계자로부터 A씨에 대한 새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미 여러 피해자가 A씨를 상대로 전세금반환소송을 제기해 법원 직원들도 A씨 정체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여 만인 2016년, A씨가 김씨에게 전세금 5,000만 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김씨가 A씨에게 돈을 받을 법적 권리를 법원이 인정해 준 것이지, 국가가 A씨에게 돈을 내라고 강제하는 판결은 아니었습니다.

김씨로선 A씨의 재산을 찾아내는 게 필요했습니다. 김씨는 법률공단 조언대로 법원에 다시 A씨에 대한 재산조회를 신청했고, 법원의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법원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보니 A씨의 재산목록엔 20여 개의 부동산 리스트가 적혀 있었습니다. 2017년의 일입니다.

김씨는 A씨 재산은 찾아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20여 개의 부동산은 전부 빌라였는데, 이미 해당 빌라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이 선순위 채권자로 등록돼 있고 A씨가 세금 체납자라 강제경매 절차에 들어가도 김씨에게 돌아올 배당금은 없었던 겁니다. 오히려 갑자기 강제경매 절차 서류를 받아든 빌라 세입자들은 김씨를 사기꾼으로 오해해 서로 싸우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A씨를 사기죄로 고소하기 위해 다시 공단을 찾았습니다. 공단은 피해자가 한 명이면 사기죄로 고소해도 승소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피해자가 8명은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그때부터 A씨에 세들어 사는 세입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고소 동의를 받으려 했지만 이 역시 실패했습니다. 혹시라도 A씨에게 밉보였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어쩌느냐는 겁니다.

김씨는 "7년 동안 피해 회복을 위해 뛰느라 건강이 더 나빠졌다"며 "A씨는 여전히 지역에서 임대사업자로 버젓히 활동한다. 명백한 사기꾼인데 왜 처벌을 할 수 없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사실 A씨 사연이 이례적인 건 아닙니다. 최근 본보에 온 제보 메일을 보면 수사기관에 고소를 했는데도 수사가 거의 진행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2019년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빌라 280채' 전세사기 피해자인 윤씨는 본보에 "경찰이 송치해 검찰로 넘어갔지만 매년 담당검사만 바뀌고 3년째 아무런 수사 진척이 없다"며 "대통령이 나서 전세사기를 근절한다고 했지만 전혀 체감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일명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특별단속을 실시하는 등 일벌백계를 공언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사기죄 입증이 어렵다 보니 수사기관에 고소해도 수사 순위에서 밀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세사기 어떻게 피하나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피해 방지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금은 사실상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만큼 전세사기에 걸리면 빠른 회복이 어려운 타격을 받게 됩니다. 정부가 전세사기 근절을 약속한 건 반가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개인 스스로 전세사기에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분명 필요합니다. 그간 취재를 바탕으로 전세사기를 피하는 몇가지 팁을 정리합니다.

빌라 전세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전세사기 수법은 무자본 갭투자입니다. 세입자 전세금으로 매맷값을 치르는 방식으로 매매와 전세를 동시에 한다고 해서 동시진행이라고도 합니다. 사기꾼으로선 매맷값을 치른 나머지를 차익으로 챙기는 구조라 전셋값을 최대한 높이는 게 관건입니다. 세입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보증기관의 전세금반환보증과 전세대출도 내세웁니다. 때문에 전세보증+전세대출을 전면에 내세우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합니다.

세입자로선 빌라 시세를 정확히 아는 게 급선무입니다. 만약 신축빌라라면 빌라 매입자인 척 가장하고 분양가를 물어보세요. 분양업자는 매매든 전세든 뭐든 성사만 하면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매매 상담도 해줍니다. 그런 뒤 분양가와 전셋값을 비교해 보세요. 만약 같다면 무자본 갭투자 사업장입니다. 전세입자에겐 전세보증+전세대출을 내세워 안심시키는데,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구축 빌라 시세는 더 알기 어렵죠. 최근 정부도 빌라 시세를 검색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는 공간데이터 전문기업 빅밸류가 빅데이터와 각종 인공지능(AI) 툴을 이용해 전국의 빌라시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빅밸류 사이트(https://www.villasise.com)에 가면 하루 3건까진 무료로 빌라 시세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빌라 전세가 있다면 이 사이트에서 정확한 매매시세를 알아보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빌라 매물도 주의해야 합니다. 빌라를 담보로 받은 융자가 없다거나 전세보증가입 등을 내세우는데, 동시진행 업자들이 주로 이런 조건을 앞세워 전세입자를 꼬드깁니다. 이 역시 빌라 시세를 정확히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울 강서구 빌라인데, 해당 빌라 중개인이 인천, 경기에 있다면 이 역시 의심해야 합니다. 중개업자 자격을 갖춘 분양업자가 동시진행 전세입자를 구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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