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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휴대폰 요금제'고르듯 에너지 골라... 사람 한 명보다 탄소 적게 배출하는 대학

입력
2022.08.25 12:00
수정
2022.10.0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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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감축도시 한달 살기]
⑥런던정경대의 탄소중립
독점 아닌, 다양한 형태 에너지 상품 공급
유럽은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싸져
직접 구매계약, 재생에너지 투자증가 효과

지난달 방문한 영국 런던의 런던정경대(LSE) 도서관 전경입니다. LSE는 2020년 사실상의 탄소중립을 달성했습니다. 런던=이수연PD

환하게 켜진 불빛 아래 학생들이 공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콘센트에는 노트북과 휴대폰이 충전되고 있습니다. 에어컨 덕에 실내 온도도 적당하고, 1층 로비 카페에서는 커피 기계가 연신 돌아갑니다.

지난달 1일 방문한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모습입니다. 국내 여느 대학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LSE는 건물 31채를 강의실·기숙사·도서관 등으로 이용합니다.

그런데 건물 31채에 전기를 공급하며 배출되는 탄소는 연 7톤뿐입니다. 한국 국민 1명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약 14톤)의 절반 수준입니다. LSE는 2020년 영국 대학 최초로 사실상의 탄소중립을 달성했죠.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영국 런던의 런던정경대(LSE)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런던=김현종 기자



휴대폰 요금제 고르듯 전력 구매

LSE의 연간 전력 소비량은 3만3,955메가와트시(MWh)로 한국인 1명 소비량(11.08MWh)보다 약 3,000배 많습니다. 전기는 3,000배나 더 쓰는데 탄소배출량은 절반 수준인 겁니다.

LSE는 이 전력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만 조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이죠. LSE를 비롯해 영국의 많은 기관들은 성공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고 있습니다. 만일 LSE가 같은 양의 전기를 화석연료가 섞인 일반 영국 전기로 조달하려면 탄소를 3,143톤 더 배출해야 합니다.


LSE의 건물의 베란다에서 한 학생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런던=이수연PD

LSE는 재생에너지 조달을 위해 ‘레이저에너지(LASER energy)’라는 에너지 판매업체를 이용합니다. 레이저에너지는 지방자치단체·학교 등 영국의 공공기관에 에너지(전기·가스)를 판매하는 일종의 공기업입니다.

한국전력이 전기 판매를 독점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는 여러 에너지 판매업체들이 다양한 전기 상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러 정보통신 회사들이 다양한 휴대폰 요금제를 판매하듯이요.

레이저에너지도 다양한 ‘재생에너지 전기 상품’을 갖고 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고정된 가격으로 판매(fixed procurement)하거나, 전기 요금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다른 가격으로 판매(flexible procurement)하기도 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와 직접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PPA)을 체결할 수도 있고, 간접구매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한 시민이 LSE 건물 앞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런던=이수연PD


건물 30채 대학, 재생에너지 '웃돈' 700만 원뿐?

LSE가 선택한 ‘전기 상품’은 ‘재생에너지 사용인증서(Renewable Energy Guarantees of Origin·REGO)’입니다. 영국에서는 발전소가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만들면 MWh당 REGO를 1개씩 발급합니다. 소비자가 이 REGO를 사면 전기 1MWh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해줬다고 제도적으로 인정해줍니다.

LSE는 1년에 전력 약 3만MWh를 사용하니, REGO도 3만 개를 구매해야 합니다. 이를 레이저에너지를 통해 사오지요.


영국의 공공기관 에너지 판매업체 레이저에너지(LASER energy)의 에너지 판매 웹페이지. 유동 가격과 고정 가격으로 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레이저에너지 홈페이지 캡처

영국에 REGO 거래 플랫폼인 이-파워(e-POWER)에 따르면, LSE가 REGO 거래 계약을 맺은 2020년 REGO 1개 가격은 16펜스(약 253원)꼴이었습니다. 3만 개는 약 4,800파운드(759만 원)이죠.

이 비용이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이 됩니다. 건물 30채를 가진 유수 대학의 재생에너지 조달 비용이 700만 원뿐이라면, 상당히 해볼 만한 투자입니다.

다만 지난해 REGO의 가격이 개당 4파운드(6,35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대안이 필요하죠. 최근 LSE는 REGO를 구매하는 대신 PPA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로 돌아가진 않습니다.


LSE가 탄소중립을 위해 건물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 패널입니다. 런던=김현종 기자


PPA, 발전사에서 직접 에너지를 구입한다

PPA 역시 영국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구매 방식입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와 일정 기간 동안 독점 전력 거래를 체결하는 방식인데요. REGO가 인증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재생에너지를 구매한다면, PPA는 소비자와 발전사가 직접 거래를 하는 일종의 ‘직거래’입니다.

발전사가 이 거래 계약을 근거로 사업비를 조달해 발전소를 새로 짓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런던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시티오브런던'의 대표적 건축물인 '거킨(The Gherkin)'입니다. 이 건물을 포함한 시티오브런던의 공공 건축물이 사용하는 전력 절반이 태양광 발전으로 공급됩니다. 이수연PD

실제 런던의 기초지자체 ‘시티오브런던(City of London)’은 2020년 태양광 발전업체 ‘볼탈리아(Voltalia)’와 15년짜리 PPA를 맺었습니다. 15년간 약 4,000만 파운드(한화 약 633억 원)를 볼탈리아에게 주고, 볼탈리아는 시티오브런던 공공 건축물에서 사용하는 전력 절반에 달하는 전기를 공급합니다.

게다가 시티오브런던은 이 거래를 통해 전기 요금 약 300만 파운드(47억5,300만 원)를 줄였다고 하는데요. 이미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화석연료보다 저렴해졌다고 합니다.


'시티오브런던'이 전력구매계약(PPA)을 맺은 볼탈리아의 태양광 단지입니다. 설비규모 39.9MW로, 시티오브런던 건축물의 전력 절반가량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도르셋=김현종 기자

다만 영국의 경우, 지난해 1분기 평균 전력 요금은 MWh당 171.4파운드(27만2,300원)였는데(영국 기업에너지산업부·2022년), 영국 전체 PPA 계약의 전기 가격은 MWh당 173파운드(27만4,900원)로 조금 더 비싸긴 합니다(콘월 인사이트·2022년). 태양광만 치면 165.9파운드(26만9,000원)로 더 싸다고 하네요.

한국은 지난해에야 PPA나 REGO(녹색 프리미엄) 등 재생에너지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지만, 이달까지 PPA가 고작 4건 성사되는 등 갈 길이 멉니다. 반면 영국 에너지업체 콘월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에서 체결된 PPA 규모는 약 1.2GW나 됩니다. 국내 풍력 발전 설비를 다 합해도 1.7GW입니다.

에밀리 스트라토프 LSE 탄소감축 관리자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 등 영향으로 에너지 시장이 불안정해 PPA 검토가 늦어지고 있다”면서도 “전력의 절반만 PPA를 통해 공급하거나, 다른 소비자와 합작해서 PPA 계약을 맺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탄소배출 ‘0’이 될 때까지

에밀리 스트라토프 LSE 탄소감축관리자가 LSE의 건축물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현종 기자

LSE의 완전한 탄소중립은 전력 부문만 해결해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건물에서 난방을 하며 사용하는 도시가스도 줄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오래된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한편, 가스 보일러를 전기 히트펌프로 바꾸는 등 작업이 필요합니다.

LSE는 2015년부터 450만 파운드(71억3,000만 원)를 투자해서 에너지 효율을 개선했습니다. 단열재나 조명을 교체했습니다. 또 너무 좁거나, 구조가 너무 약한 곳을 제외하고는 지붕 전체에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해 연간 115MWh의 전력을 공급받기도 합니다. 2005년 대비 44%를 감축해 현재는 4,246톤을 배출합니다. 이 4,000여 톤은 배출권 구매 등을 통해 상쇄합니다.

흥미로운 건 LSE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각 부문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정리 공개하고, 이를 가능케 할 전문업체들이 부문별로 등장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LSE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로드맵을 검토받았습니다. 메이스(MACE)라는 영국의 환경 컨설팅업체를 통해서입니다. 여기엔 4가지 시나리오가 담겼습니다. 난방의 몇 퍼센트를 가스에서 전기로 바꾸고, 임대 부동산을 얼마나 처분하고, 어떤 건물을 얼마나 종합적으로 리모델링할지 등입니다. 각 시나리오별로 탄소저감 효과와 비용, 위험도 등도 기재돼 있습니다.


LSE가 공개한 2030년 탄소저감 시나리오에 다양한 탄소감축 방법과 효과, 비용, 위험도 등이 기재돼 있습니다. LSE 홈페이지 캡처

LSE는 각 선택지를 검토한 후, 부동산 개조업체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감축하지 못한 탄소는 탄소상쇄 컨설팅업체인 컴펜세이트(Compensate)를 통해 상쇄합니다.

이는 LSE의 탄소중립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한편, 영국 내 탄소중립을 위한 산업 생태계가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스트라토프는 “탄소중립 노력이 위장환경주의(그린워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외부 기관의 검증과 협력, 구체적인 계획이 필수”라고 합니다.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언이 아닌 구체적인 계획이 아닐까요.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런던 김현종 기자
런던 이수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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