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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 대신 '실무' 도전하러 미국 간 50세... "일단 해보세요, 인생 길어요"

입력
2022.07.05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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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히든챔피언]
구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임원→본사 디렉터 변신
"행동으로 시작하면 자신감 따라올 것"

편집자주

세계 최고 테크기업 본사와 연구소가 모인 실리콘밸리. 테슬라 구글 애플이 둥지를 튼 기술 천국이죠. 빅테크의 혁신이 세상을 바꾸지만, 결국 혁신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이서희 특파원이 도전 정신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실리콘밸리 숨은 혁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로이스 김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로이스 김 제공

로이스 김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로이스 김 제공

2019년 구글의 전세계 지역 법인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 수백 명이 한 곳에 모였다. 각 나라의 성공적 홍보 사례를 공유하는 연례행사다.

그 자리에서 구글코리아 소속 로이스 김(한국명 정김경숙) 전무는 본사 총괄 부사장을 향해 제안 하나를 내놓았다. "각 나라 구글 사무소와의 중개 역할을 해 줄 사람이 본사에 필요해요." 구글 각 지역 법인의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다 보니, 본사와 각국 사무소 사이 소통이 느려지고 느슨해졌다는 지적이었다. 다른 나라 동료들도 로이스의 지적에 공감했고, 총괄 부사장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로이스는 총괄 부사장이 전 세계 구글 직원에게 보낸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본사와 지역 법인의 커뮤니케이션을 중개할 인재를 찾는다'는 공고가 있었다. 로이스가 제안한 바로 그 직책이었다.

로이스는 그 직책에 지원서를 넣었고, 구글 본사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 인터내셔널 스토리텔링 디렉터'로 그를 뽑았다. 그는 그렇게 홀로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에서 경력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 은퇴를 걱정하기 시작하는, 나이 50세 때 일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로이스 김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로이스 김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구글 캠퍼스에서 로이스 김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자전거를 타고 있다. 로이스 김 제공

한국에서 그는 소위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 임원' 대접을 받았다. 모토로라코리아와 한국릴리를 거쳐, 구글코리아에서 커뮤니케이션팀 임원으로 12년을 일했다. 그 동안 직원 수 15명에서 500여 명으로 성장한 구글코리아의 역사는 곧 '로이스 김' 개인의 성취이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모든 걸 이룬 그에게, 아무 기반 없는 본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도박이었다. "막상 채용이 확정되니 걱정이 몰려왔어요.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가족 두고 나만 훌쩍 떠나도 되는 걸까, 괜히 30년 경력에 먹칠만 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그는 떠나기를 택했다.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에 비영어권 출신은 그가 처음이다. 지천명에 도전한 실리콘밸리 회사 생활 4년차를 맞은 로이스 김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구글이 개발하는 기술, 서비스와 이면의 이야기를 전 세계 언론과 각국 사무실에 전하는 일을 해요. 디렉터는 한국 회사로 치면 부서장 정도 되려나요. 구글코리아에선 제가 홍보 총괄로 큰 의사결정을 했는데, 여기서는 실무 담당이에요."

-하루 일과가 어떤가요.

"구글은 하나의 회사를 지향해요. 서울이나, 미국이나 근무 방식에 큰 차이는 없어요.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 바뀐게 많죠. 회사는 주3일은 사무실에 나오면 좋겠다고는 하는데, 융통성 있게 하고 있죠. 저는 집도 가깝고, 회사 나오면 밥도 주고 간식도 널려 있으니 자주 나오는 편이에요."

-본사 근무의 장점은 뭔가요.

"본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로바로 볼 수 있다는 것, 현장감이 살아있다는 게 좋아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시잖아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장점은 뭔가요.

"체력. 평범한 문과생 출신인 제가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경쟁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30년 가까이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있어요. 체력도 시간을 투자해야 늘어요. 만약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게 어렵다면 본인이 보기에 쿨한 운동을 해보세요. 저는 14년 째 검도를 해요. 멋있잖아요. '나 검도한다'고 하면 주변 반응도 뜨겁고. 그게 검도를 계속 하게 하는 동력이 돼요."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경력인데, 후회하는 것도 있나요.

"좀 더 어릴 때, 일찍 새로운 일에 도전해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저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어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세요. 일단 해 봐야 내 한계를 알죠. 자신감이 있어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 자신감은 뒤따라 옵니다."

-당신처럼 해외 취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영어, 무조건 열심히 하세요. 10년 전 쯤 영어 화상 발표에서 대형 사고를 낸 적이 있어요. 영어에 자신감이 없을 때라 실수하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원고를 읽었는데, 음소거를 했던 거에요. 무려 7분 동안이나. 그 이후로 영어도 운동만큼 꾸준히, 열심히 했어요. 물론 지금도 매일 공부하고 있고요."

그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을 냈다. 이 책 말미에 취업 준비생인 아들에게 남긴 말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인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취업이 쉽지 않겠지만 조급해 말고 우리 길게 보자. 몇 번을 실패해도 인생은 길어!"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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