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환자들의 알권리, 스테로이드 주사의 득과 실

입력
2022.05.17 05:00
16면
0 0

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스테로이드는 미용 주사나 염증성 질병 치료 목적으로 흔히 사용되지만 체내 호르몬 분비를 교란하는 부작용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스테로이드는 미용 주사나 염증성 질병 치료 목적으로 흔히 사용되지만 체내 호르몬 분비를 교란하는 부작용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주 만에 생리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주기가 불규칙해도 이렇게까지 앞당겨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놀란 마음으로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최근에 얼굴이나 허리에 주사를 맞은 적이 있나요?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주사를 맞았을 때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생각지도 못했지만 발목 부상 때문에 정형외과에서 맞은 주사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스테로이드는 물에 잘 녹지 않는 지질의 일종으로 네 개의 탄소 고리가 결합된 기본 구조를 가진다. 이 고리 구조에 어떤 원자단이 결합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스테로이드의 종류가 다양해진다. 스테로이드의 대표적인 예는 콜레스테롤이며, 콜레스테롤로부터 유도된 고리 구조의 호르몬을 스테로이드 호르몬이라 한다.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 에스트라디올 등의 성호르몬과 당질코르티코이드 등이 사람 몸에서 만들어지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으로 이들은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당질코르티코이드는 단백질, 지방 등의 에너지원으로부터 포도당을 생성하여 혈당량을 증가시키는 호르몬이다. 저혈당, 저혈압, 쇼크 등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데, 근육의 단백질이나 지방까지 분해하기 때문에 탄수화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양 이상의 포도당을 생성한다. 일부 미용 주사에는 합성된 당질코르티코이드가 함유돼 있으며 지방을 분해하는 특성을 이용해 얼굴이 작아지는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게다가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것보다 많은 양의 당질코르티코이드가 몸에 들어갈 경우 면역계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염증 반응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피부가 깨끗해지는 효과까지 보인다. 마찬가지로 무릎이나 발목의 관절염과 같은 염증성 질병의 치료에도 면역계를 억제하는 당질코르티코이드가 종종 사용된다.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분비된 호르몬은 피드백 작용에 의해 조절을 받는다. 많은 호르몬들은 음성 피드백을 통해 상위 단계의 자극을 감소시킨다. 예컨대 스트레스 상황에서 당질코르티코이드가 분비되면 이를 자극하는 상위 단계의 호르몬을 감소시켜 체내의 당질코르티코이드가 과하게 높은 농도로 존재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합성된 스테로이드를 장기적으로 주입할 경우 체내의 호르몬 농도가 높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음성 피드백 작용을 통해 정상적인 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되기도 한다.

성호르몬 역시 비슷한 구조라 스테로이드가 포함된 주사를 맞았을 때 생식 주기를 조절하는 내분비계가 교란되어 부정출혈이 일어나게 된다. 여성의 생식 주기에서 성호르몬의 농도가 주기적으로 변화하는데,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라디올이 높은 농도로 적절하게 조합되면 음성 피드백 작용으로 난포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줄어들고 자궁내막의 동맥이 수축해 자궁벽이 탈락된다. 주사액에 포함된 스테로이드와 체내 성호르몬이 특정한 농도로 조합된다면 정상적인 월경 주기가 아닐 때 자궁벽의 탈락이 유도될 수 있는 것이다.

병원마다 염증 주사나 미용 주사에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의 종류와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기작을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체내 호르몬의 분비를 교란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선택은 환자의 몫이지만 부작용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통해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의사의 중요한 의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