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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건강 지킴이, 나무를 다시 보자

입력
2022.04.26 05:30
수정
2022.04.26 10: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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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서울 양재천 인근의 메타세쿼이아 길. 김진유 교수

서울 양재천 인근의 메타세쿼이아 길. 김진유 교수


<36> 나무를 알고 지켜야 포용도시

얼마 전 한 호텔 신축공사장 앞길에 있던 30년 넘은 가로수 수십 그루가 잘려 나가 시민들이 크게 분노한 일이 있었다. 이 가로수는 메타세쿼이아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도로 확장을 위해 하루아침에 잘려 나갔다. 수십 년 동안 시민들에게 휴식과 추억을 만들어줬던 반려자 같은 나무를 가차없이 베어버린 것이다. 지자체 관계자는 도로 확장 후 새로 나무를 심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나무에 대한 무지와 인간의 욕심이 만든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도시에서 나무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나무와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도시 나무의 가치

도시에서 나무의 역할은 나날이 중요해지고 그 가치 또한 높아지고 있다. 서울은 2019년 ‘아낌없이 주는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까지 4년간 총 1,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고 있다. 가로수를 2열로 심어 가로숲길을 조성하고, 자동차전용도로변에 2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미세먼지를 저감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랑스 파리는 2024년 올림픽 개최에 맞춰 개선문에서 콩코르드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에 도시정원(urban garden)을 조성하기로 했다. 기존 8차선 도로를 절반으로 줄여 자동차 통행을 감소시키고 양쪽에 다양한 나무로 나무터널(tunnels of trees)을 만들어 공기질을 개선하고 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할 계획이다.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도 15만 그루의 나무가 있기에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됐다. 이 선형공원은 고가철로를 재생해 만든 것인데 기존의 구조물 위에 토양을 쌓고 야생의 나무와 풀을 심어 도심에서 보기 드문 자연스럽고 귀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뉴욕의 부동산 잡지 ‘맨션글로벌’에 따르면 2009년 이 공원이 개장한 후 인접한 아파트가격은 몇 블럭 떨어진 곳의 아파트보다 10% 이상 빠르게 상승했다. 공원이 인근 주거환경을 크게 개선한 것이다.

하이라인과 비교하면 서울역 고가를 재생한 ‘서울로7017’은 두고두고 아쉽다. 고가라는 구조의 한계와 예산의 제약이 있었겠지만 콘크리트 화분 안에 심은 나무들은 영 부자연스럽고 불편해보인다. 그늘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하이라인처럼 자연스럽게 조성된 토양에 다양한 나무를 같이 심었더라면 나무도 사람도 더 편안했을 것이다.

뉴욕 하이라인파크 모습. 김진유 교수

뉴욕 하이라인파크 모습. 김진유 교수


서울로 모습. 김진유 교수

서울로 모습. 김진유 교수

공공공간뿐 아니라 주거지에서도 나무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때 법적으로 정해진 수량의 나무만 심었다. 그러나 녹지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언제부턴가 주차장은 모두 지하로 들어가고 그 자리에 더 많은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요즘은 법적 수량보다 2, 3배 많은 나무를 심는다. 단지면적 1만 평(약 800가구) 기준으로 키가 큰 교목은 1,000그루 정도, 키가 작은 관목은 약 8만 그루, 초화류(풀과 꽃)도 약 6만 본을 심고 있다. 둘레 50㎝ 정도의 훤칠한 장송은 한 그루당 1,000만 원 이상 되니 나무 값만 하더라도 수십억 원을 훌쩍 넘는다.

도시의 건강지킴이, 가로수

도시의 녹지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뉴욕의 센트럴파크나 서울숲을 떠올린다. 당연히 수만 그루의 나무와 꽃이 있는 큰 공원이니 인상이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늘 우리 곁에서 공해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맑은 공기와 그늘을 제공하는 건 다름아닌 가로수다. 2017년 산림청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로수 그늘은 양지에 비해 평균 2.5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로수가 없다면 도시의 여름은 훨씬 더 더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가로수가 인간들의 무지와 이기심 때문에 자주 수난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초를 많이 겪고 있는 것은 플라타너스다. 이 나무는 한때 제일 사랑받은 가로수였다.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거리 중 하나인 샹젤리제의 가로수도 바로 이 플라타너스다. 공해에 강하고 잎이 넓어 그늘을 많이 만드니 가로수로 사랑받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서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여전히 많은 도시에서 플라타너스는 보행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한 연구에 의하면 가로수 중 플라타너스의 온도저감효과가 2.57도로 소나무(1.35도), 느티나무(1.84도), 은행나무(2.00도)에 비해 월등하다.

너무나 감사한 플라타너스이지만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방울 모양의 씨앗들은 멀리 날아가기 위해 솜털이 달려 있는데 이것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적절한 시기에 가지치기를 해줘야 하는데, 너무 많이 자르면 한여름이 될 때까지도 그늘을 충분히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관리를 조금만 게을리하면 나무가 웃자라 가지치기도 어렵고 태풍에 잘 넘어져서 나무와 사람이 모두 위험해진다.

메타세쿼이아는 수형이 아름답고 빨리 자라므로 가로수로 많이 쓰이는데, 뿌리가 옆으로 퍼지는 바람에 보도가 울퉁불퉁해져서 보행자들의 불편을 초래한다. 또한 뿌리가 하수도를 막아 장마철 배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병해충에 강하고 노란 단풍으로 도시를 아름답게 수놓지만 열매의 냄새로 인해 사람들의 불평을 듣기 일쑤다. 세상에 처음부터 가로수로 태어난 나무는 없다. 숲에 있어야 할 나무를 사람이 맘대로 길가에 심어놓고 좋아했다, 미워했다 하니 나무로서는 참 억울할 노릇이다.

나무는 죄가 없다

호주의 도시들은 숲속에 있는 것처럼 보일 만큼 나무가 흔해 나무 관리가 소홀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도시나무전략계획(Urban Tree Strategy)을 수립해서 강력하게 시행한다. 시드니의 한 자치구인 쿰버랜드에서는 ‘나무에 대한 지식과 고마움(knowledge and appreciation of trees)을 확산시키기 위해 도시나무전략을 세운다’고 명시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나무를 자르거나 가지치기를 할 수 없다. 이를테면 나무건강과 구조를 향상시키거나, 나무로 인해 사람이나 건물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때만 가지를 치거나 제거할 수 있다. 나무가 전망을 가리거나 건물에 다소 손상을 초래한다는 이유로는 나무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우리는 어떠한가. 나무의사 우종영의 말처럼 ‘도시에서 생명이 다해가는 수많은 나무들’을 마주치지만 그것을 살리려는 노력보다는 사람의 입장에서 쉽게 손을 댄다. 간판이 안 보인다거나 전깃줄이 끊어질지 모른다고 멀쩡한 나무의 큰 가지들을 마구 잘라서 죽게 만든다. 설령 죽지 않는다 해도 나무로서 최소한의 모양도 갖추지 못하고 목숨만 유지한 채 외면받는 존재가 된다. 도로 확장에 방해가 된다면 아무리 건강한 가로수라도 별 고민 없이 제거된다. 호주 같았으면 무거운 처벌을 면하기 어려운 심각한 범죄다. 심지어 자기 마당의 나무도 제 맘대로 자를 수 없다.

볼품없이 잘려 나간 은행나무. 김진유 교수

볼품없이 잘려 나간 은행나무. 김진유 교수

우리나라도 각 도시별로 가로수와 관련된 조례들이 있지만 그 내용은 치밀하지 못하다. 특히 가로수를 제거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엄격하고 상세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못하다. 아마도 나무에 대한 지식과 감사한 마음이 부족한 탓일 게다. 수십 년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우리 곁을 지켜온 나무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무참하게 죽거나 다치는 나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그냥 버려지는 나무들을 살릴 방법을 찾아보자. 지혜를 모아 ‘나무거래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철거하는 재건축 단지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 나무들을 이 플랫폼에 올려 다른 단지에 이식해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가로수 수종을 결정할 때도 세심하게 배려해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메타세쿼이아는 보도폭이 넓고 도로확장가능성이 없는 곳에 심어서 충분히 뿌리가 뻗을 수 있도록 하자. 가로수로 쓸 은행나무는 유전자 검사를 해서 수나무만 심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암나무는 통행이 적은 곳이나 공원에 심어서 전체적으로는 암수 균형을 맞추면 더 좋을 것이다.

나무는 아무 죄가 없다. 원래 숲속에서 자유롭게 커야 할 나무를 인간들이 제멋대로 길가나 공원에 심어 놓고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항상 고마워해야 하고 그들의 건강을 챙겨야 한다. 처음 심을 때부터 수십 년을 내다보고 신중하게 위치를 정해서 꽃가루와 열매로 인해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가로수 근처에는 충분한 투수층을 만들고 보도도 넉넉하게 확보해야 한다. 지친 도시의 일상에서 푸르고 아름다운 나무를 매순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나무터널을 따라 학교에 가고 아침마다 꽃길로 출근을 하면 사람도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다. 건강한 도시에 살고 싶다면 나무를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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