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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메일 보내주신",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답합니다

입력
2022.03.24 13:37
수정
2022.03.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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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일보는 114주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관련 기사: https://www.hankookilbo.com/Collect/7231)라는 기획 보도를 했습니다. 성평등에 가장 뒤쳐진 국가이면서도, 여성혐오로 얼룩진 사회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특히 최근 페미니즘이 사회의 적폐로 통하는 사실에 주목, 페미니즘이 왜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너무 오랜시간 자연스러웠기에 미처 깨닫지 못하는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을 향한 오해도 짚어봤죠.

워낙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뜨거운 주제이기에 기사에는 적지 않은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의 메일함에도 성원, 혹은 비난이 이어졌는데요. 후속 기사로 메일을 통해 주신 질문과 궁금증에 답해보려고 합니다.

한국 페미니즘은 변질됐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외국과 다름을 지적하는 한 독자의 메일.

한국의 페미니즘은 외국과 다름을 지적하는 한 독자의 메일.

한 독자는 한국의 페미니즘은 '뷔페미니즘(뷔페+페미니즘의 합성어)'라면서 뷔페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먹는 모습에 빗대 이득만 취하려고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페미니즘의 '변질'은 많은 비(非) 혹은 반(反) 페미니즘 진영에서 말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회에서 지나친 '여성 우대 정책'을 펼친다는 것인데, 정작 우대 정책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있습니다.

한국일보가 만난 전문가들은 정작 여성 우대 정책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구제된 남성이 여성의 두 배 이상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또 국내 민간 기업에서 여성 할당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권이나 국공립대·공기업 등 일부 분야에서만 고위직에 한정, 유지되고 있죠.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이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한 개정 자본시장법이 오는 8월 시행되지만, 이는 양성 모두에 해당합니다.

페미니즘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해외에도 여성 할당제는 있습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욱 강력한 제도입니다. 노르웨이는 여성이사 40% 할당제를 시행했고, 독일은 기업과 각 부문의 여성 임원 비율을 30% 이상으로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습니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여성 할당제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입니다.


여자는 군대도 안 가면서!

여성경찰을 향한 혐오가 여성혐오라는 사실에 반박하는 한 독자의 메일.

여성경찰을 향한 혐오가 여성혐오라는 사실에 반박하는 한 독자의 메일.

2화 보도("남경 무용론이" "남성BJ 선물공세로"... 이런 기사, 어색한가요?)에서는 여성혐오 기사의 성별을 바꾸는 '미러링'을 시도해봤습니다. 여성 경찰 무용론이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녀라고 명명하는 등 유독 여성의 경우에만 성별을 앞세우는 보도 관행에 대한 반성이었습니다.

또 다른 독자는 이 기사에 여성은 신체적 한계를 이유로 '의무병역'을 하지 않기에 남성 중심의 집단인 군인, 경찰, 소방관 등이 됐을 때 비판을 받는 일은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군대를 남성만의 조직으로 만든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부장제입니다. 여성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일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기에 복무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이 내용은 기획 보도 3화("여자도 군대 가"란 말도 페미니즘입니다)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면 김엘리 성공회대 시민평화대학원 외래교수의 책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을 읽어보시는 일도 추천드립니다.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부른다

본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각각 도착한 악성 메일.

본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각각 도착한 악성 메일.

별 다른 내용 없이 대뜸 욕설을 내뱉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드문 일은 아닙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404명의 기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기자 이름을 부르며 모욕하는 경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신문사(78.4%), 방송사(83.3%), 뉴스통신사(89.2%) 등 기자 대다수에게서 나왔습니다. 특히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쓴다면 '당연히' 이런 욕설이 쏟아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을 정도죠.

특이한 메일은 아니지만, 욕설에 하나같이 '병X'이라는, 장애인 비하가 들어가기에 이를 소개하게 됐습니다. 장애와 질병을 뜻하는 단어는 욕이 될 수 없습니다. 보도를 향한 비판과 문제 제기는 분명히 의미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혐오를 동력삼은 막무가내 공격은 제 아무리 훌륭한 의도더라도 귀담아 듣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번 보도에 보여준 관심 모두가 이런 방향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독자는 "기자님의 글로 인식개선에 1명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저는 정말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또 "이제부터라도 페미니즘을 공부해보려고 한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기사"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진정한 페미니즘을 위하여

'세계 여성의 날' 114주년인 지난 8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날 정신 계승 성평등 운동회에서 민주노총과 산하 여성단체 등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세계 여성의 날' 114주년인 지난 8일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세계 여성의날 정신 계승 성평등 운동회에서 민주노총과 산하 여성단체 등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진정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직 우리는 "이 단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고"(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 상황입니다.

사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의미로 규정짓기 어렵습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페미니즘 자체는 민주주의라는 말과 같아서 수십개 갈래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각기 다른 페미니즘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하나만은 확실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허 입법조사관은 "여성혐오는 결국 과거로 돌아가라는 것"이라면서 "유색인종과 동등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백인이 혐오감을 드러내는 인종혐오와 여성혐오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혐오와 폭력은 우리가 완전히 동등하고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사라진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전혼잎 기자
최나실 기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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