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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무용론이..." "남성BJ 선물공세로"... 이런 기사, 어색한가요?

입력
2022.03.15 04:30
수정
2022.03.15 10: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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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2회>여혐 기사, 미러링 해봤다
여성혐오 확대재생산하는 언론
남성의 문제에는 성별 강조 안해
여성은 개인 아닌 성별 전체 공격
사회적으로 여혐 표현 승인 효과

지난 8일 '세계 여성의날' 114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날 정신 계승 성평등 운동회'에서 민주노총과 여성단체 소속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일 '세계 여성의날' 114주년을 맞아 서울시청 앞 도로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날 정신 계승 성평등 운동회'에서 민주노총과 여성단체 소속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언론은 여성혐오의 확성기다. 온라인에서 나온 여성 비하를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써 사회문제로 키우고, 피해자에게 '○○녀'라는 이름을 달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파헤친다.

혐오표현은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라도 위험하지만, 언론에서는 특히 더 위력을 가진다. 유민석 혐오표현 연구가는 "언론에서의 혐오표현은 사회를 향해 이런 표현을 승인하는, 암묵적인 허락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대중을 향해 '이 정도 표현은 괜찮다'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 역시 비판적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정치인·언론이 혐오를 부추길 수 있는 표현이나 보도 자제'(90.3%)였다. 그만큼 언론이 혐오를 선동한다고 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일보는 여성혐오를 담았거나, 은근히 혐오를 부추기는 국내 언론의 최근 보도를 골라 '성별'만을 바꿔봤다. 낯설거나 옳지 않은 보도라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왜 이전에는 문제점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구성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혐오를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뒤로 광화문광장 공사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벽화가 보인다. 뉴스1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구성원들이 지난달 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혐오를 반대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뒤로 광화문광장 공사현장을 둘러싸고 있는 벽화가 보인다. 뉴스1


①성별 부각 기사, 집단을 공격한다

우선 평범한 판결 기사를 '남성 판사'를 강조해서 바꿔봤다. 남성 판사가 성범죄자를 풀어줘도 남성 경찰이 성매매를 해도, 언론은 '남성'임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남성의 잘못은 그저 '사람'의 잘못으로 치며 '남판사 무용론' '남경 무용론'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방식이 물론 옳다. 개인의 잘못을 특정 집단의 잘못으로 몰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성에게는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러링 기사

남판사가 또, 대낮 매장 화장실 성폭행범 풀어줬다


남성 판사가 대낮 도심 대형 매장에서 생면부지 여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한 20대를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온라인에서 공분을 사면서 남성 판사 무용론이 또 나오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12부(부장 ○○○)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8)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7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남성 판사의 솜방망이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월에도 내연녀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4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2020년 9월엔 아내가 아이를 재우러 간 사이 아내의 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뒤늦게 반성·합의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면했다. 누리꾼들은 "법원에 남성 판사가 많아 이런 봐주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면서 "피해자를 지키지 못하는 판사가 왜 필요하나"라고 지적했다.

※원본 기사: 대낮 매장 화장실서 여학생 성폭행했는데 집행유예라니...

(2021.12.29·한국일보)

대낮 도심 대형 매장에서 생면부지 여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한 20대가 실형이 아니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12부(부장 ○○○)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28)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7년간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중략) A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문을 75차례나 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피해자 탄원이 있더라도 죄질 등을 볼 때 양형은 부당하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②여경은 여자 잘못, 남경은 개인의 잘못?

남성의 실수는 개인의 문제가 되고, 여성의 잘못은 성별 전체의 비하로 이어지는 게 '경찰' 기사의 특징이다. 2012년 '오원춘 사건' 당시 피해자의 신고전화를 받고도 허술하게 대응한 경찰이 피해자의 사망을 초래했다는 사실은 법원도 인정했으나 이 사건에서 '남경 무용론'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건에서도 경찰의 초동대응 부실을 꼬집는 기사는 흔히 나오지만, 성별을 언급하고 문제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경찰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에서도 이탈한 경찰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이어 선배인 남성 경찰도 함께 현장을 떠났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여전히 비판은 여성에게만 쏠렸고 '여경 무용론'까지 쏟아졌다. 유민석 연구가는 "여경 무용론에는 여성은 능력이 떨어지고 열등하다는 숨겨진 전제가 있다"면서 "여성 경찰이라는 특정한 집단을 계속 부각시켜 문제를 여성이라는 집단에 있다고 몰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경찰 등의 문제는 날것 그대로 커뮤니티에서 따와 보도해서는 안 된다"며 "관련 문제제기가 왜 계속되는지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봐야 한다"라고 했다.

☆미러링 기사

또 '남경 무용론'…흉기 휘두르는데 사라진 경찰


최근 층간소음 갈등으로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남성이 구속된 가운데 체포 과정에서 남성 경찰이 자리를 떠났다는 피해자 측 주장이 나와 남경 무용론이 다시 불거졌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민을 지키지 못하는 남경이 도대체 왜 필요하냐" "시민에게 남경이 아닌 경찰이 필요하다" 등의 글이 쏟아졌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층간소음 사건이 빠르게 확산하며 '남경 무용론'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사건은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서 벌어졌다. (중략) 이를 본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남경에 대한 논쟁은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누리꾼들은 '남혐(남성 혐오)'이 아닌 치안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원본 기사: 또 나온 '여경 무용론'…"흉기 휘두르는데 사라진 경찰"

(2021.11.18·온라인 매체)

최근 층간소음 갈등으로 일가족에게 흉기를 휘둘러 다치게 한 남성이 구속된 가운데 체포 과정에서 여성 경찰이 자리를 떠났다는 피해자 측 주장이 나와 여경 무용론이 다시 불거졌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시민을 지키지 못하는 여경이 도대체 왜 필요하냐" "시민에게 여경이 아닌 경찰이 필요하다" 등의 글이 쏟아졌다.

1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층간소음 사건이 빠르게 확산하며 '여경 무용론'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사건은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의 한 빌라에서 벌어졌다. (중략) 이를 본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여경에 대한 논쟁은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누리꾼들은 '여혐(여성 혐오)'이 아닌 치안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경찰 공무원 한 명의 성별을 부각해서 여성 경찰 전체를 공격한 기사. 온라인 캡처

경찰 공무원 한 명의 성별을 부각해서 여성 경찰 전체를 공격한 기사. 온라인 캡처


③○○녀는 흔하지만 ○○남은 드물다

여성 관련 이슈에 '○○녀'라는 표현을 쓴 보도는 여성혐오라고 이미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서 70% 이상이 동의했다. 그러나 언론의 ○○녀 타령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래 원본 기사에서도 범죄를 저지른 이의 성별은 남성이지만 제목에서도, 기사 본문에서도 강조되는 성별은 여성뿐이다. 피해자 여성과 여성 BJ의 성별만이 기사에서 드러난다. 법무부에서는 지난해 피해자에게 '○○녀'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가해자 관점의 용어로 피해자를 주목시키는 자극적인 표현이라고 봤다.

성별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기사에서 남성을 일컬어 ○○남이라 쓰는 사례는 드물다. 뉴스 빅데이터 시스템 '빅카인즈'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국내 보도에서 여교사의 경우 736회 언급됐지만, 남교사는 100회에 그쳤다. 남학생(2,658회) 역시 여학생(4,612회)의 절반 정도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관계자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단어에도 '녀'를 붙여 성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행태"라면서 "편의점 살인남(男)이 아니라 편의점녀(女) 살인범으로 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러링 기사

"선물로 돈 탕진"…제주 편의점男 살인범 '계획범죄'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남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검찰에 송치된다. A씨는 인터넷방송 BJ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후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서부경찰서는 피의자 A씨를 강도살해, 시신은닉 미수, 신용카드 부정사용, 사기 혐의 등을 추가해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A씨는 제주시 도두1동 제주민속오일장 후문과 제주국제공항 사이 이면도로 옆 호박밭에서 B씨(39·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당초 강도질을 하려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주장을 뒤집는 정황들이 포착됐다. A씨는 남성 BJ에게 고액 후원을 이어가다 모아둔 돈을 전부 탕진하고 신용카드마저 정지되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본 기사: "여성BJ 선물공세로 돈 탕진"… 제주 편의점女 살인범 '계획범죄'

(2020.9.10·종합 일간지)

제주국제공항 인근에서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A씨가 검찰에 송치된다. A씨는 인터넷방송 BJ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후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서부경찰서는 피의자 A씨를 강도살해, 시신은닉 미수, 신용카드 부정사용, 사기 혐의 등을 추가해 검찰에 송치한다고 밝혔다. A씨는 제주시 도두1동 제주민속오일장 후문과 제주국제공항 사이 이면도로 옆 호박밭에서 B씨(39·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당초 강도질을 하려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으나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주장을 뒤집는 정황들이 포착됐다. A씨는 여성 BJ에게 고액 후원을 이어가다 모아둔 돈을 전부 탕진하고 신용카드마저 정지되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확인됐다.


살인범인 남성은 전혀 부각하지 않고, 성적이미지를 강조해 피해자를 '○○녀'로 부각한 사건 기사. 온라인 캡처

살인범인 남성은 전혀 부각하지 않고, 성적이미지를 강조해 피해자를 '○○녀'로 부각한 사건 기사. 온라인 캡처


④10명 중 2명인데 '여성 전성시대'?

유리천장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인데 한국 언론에서는 '여풍' '여성 전성시대'가 넘쳐난다. 10명 중의 2명이 여성인데 '강한' 여풍이라고 묘사한다. 이런 보도는 사회에서 성평등이 이미 이뤄졌다는 착시를 준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여성 전성시대 등의 표현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식의 기호학적 함의를 담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서 여성임원 비율은 4.8%에 불과하고 여성 국회의원은 19%이다. 주요 국가들과 큰 차이가 있다. 신경아 교수는 "신입에서는 여성의 비율이 늘어 남성이 채용 목표제로 오히려 구제받을 정도지만, 결정권을 지닌 직급에는 여성이 여전히 소수"라고 지적했다.

남성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상황을 '정상'으로 보고, 여성이 진입하는 현상을 변수로 여기는 시선도 깔려있다. 신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고위직으로 갈수록 남성 일색인 것이 정상적인 규범이고, 여성들이 들어가면 불편하고 이질적으로 느낀다"라고 덧붙였다.

☆미러링 기사

'공직 남풍'… 지방직 과장급 23%가 남성


공직사회에서 강한 남풍이 불고 있다. 2021년 상반기 지방직 과장급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2.7%를 기록했다. 서울시 9급 공무원 합격자 가운데서도 남성은 57.2% 차지하며 과반 합격자를 기록했다.

100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남성대표성 제고 5개년 계획'에서 지방직 과장급은 2021년 21.5%, 2022년 22.5% 이상을 남성으로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런데 올 상반기 지방직 과장급 남성 비율이 22.7%를 기록하며 이미 내년 목표치까지 달성하게 됐다. 올 상반기 중앙부처 본부과장급(23.3%), 공공기관 임원(22.4%) 등에서도 남성 비율은 이미 올해 목표를 달성했다.

여성의 비율이 20%에 불과한데도 '여풍'이라고 표현한 기사. 온라인 캡처

여성의 비율이 20%에 불과한데도 '여풍'이라고 표현한 기사. 온라인 캡처

※원본 기사: '공직 여풍'…지방직 과장급 23%가 여성

(2021.9.29·경제전문지)

공직사회에서 강한 여풍이 불고 있다. 2021년 상반기 지방직 과장급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2.7%를 기록했다. 서울시 9급 공무원 합격자 가운데서도 여성은 57.2% 차지하며 과반 합격자를 기록했다.

100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 5개년 계획'에서 지방직 과장급은 2021년 21.5%, 2022년 22.5% 이상을 여성으로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런데 올 상반기 지방직 과장급 여성 비율이 22.7%를 기록하며 이미 내년 목표치까지 달성하게 됐다. 올 상반기 중앙부처 본부과장급(23.3%), 공공기관 임원(22.4%) 등에서도 여성 비율은 이미 올해 목표를 달성했다.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1회>여성을 지운 대선, 현실을 보세요

<2회>여혐 기사, 미러링 해봤다

<3회>알고 보면, 당신도 페미니스트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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