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30년간 판자촌 강남 구룡마을...1만2000가구 공공개발 가능할까

입력
2022.02.17 14:00
4면
0 0

민주당 대선 공약, 5000가구는 '반값 이하'로
구룡마을 주민들 반응은 '시큰둥'
전문가들 "사회적 갈등 커질 수 있어"

지난 15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천으로 간신히 지붕을 덧댄 판잣집들이 즐비하다. 서현정 기자

지난 15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천으로 간신히 지붕을 덧댄 판잣집들이 즐비하다. 서현정 기자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린다. 주변에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치솟았지만 30년 동안 곧 쓰러질 듯한 판잣집 1,100여 가구가 몰려 있는 구룡마을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금싸라기 땅 강남의 외딴섬 같은 구룡마을 개발이 갑자기 대선 공약으로 부상했다.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겸 상임선대위원장이 주택 1만2,000가구를 공급하는 이재명 대선후보의 계획을 밝히면서다. 그중 5,000가구는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반값 이하로 공급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

송 대표는 "개발이익을 전 국민과 공유하고 무허가 집에 거주하는 전원에게 입주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공약을 발표한 날 만난 구룡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30년 전부터 개발 시도가 번번이 무산된 탓에 기대감이 낮아 보였다. 대선 직전 등장한 공약이 현실과 동떨어져 오히려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①거주민 전원 분양권 줄 수 있나

17일 서울시와 부동산 전문가 등에 따르면 분양권 갈등 해결 가능성부터 만만치 않다. 현재 구룡마을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도시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6월 서울시는 26만여㎡ 부지에 2,838가구(분양 1,731가구, 임대 1,107가구)를 건설하는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실시계획을 인가했다.

서울시와 강남구, SH공사는 내년 착공을 앞두고 주민들과 협의 중이다. 서울시는 "무허가 주민들에게 분양권을 줄 법적 조항이 없다"며 임대주택 입주를 제안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래 거주한 만큼 분양권을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주민은 "임대료를 낼 수 있었다면 이런 낡은 곳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권에 부정적이다.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법을 위반한 무허가 주민들에게 분양권을 주는 건 면죄부가 된다"면서 "재개발을 원하는 다른 지역의 원주민들이 도미노처럼 분양권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②용적률 500% 문제 없나

구룡마을 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구룡마을 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국토계획법에 4종 일반주거지역을 신설해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하는 공약은 인근 주민 간 갈등 조장 우려도 있다. 구룡마을 맞은편에 들어선 래미안 아파트에는 2,00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그 옆에는 2024년 6,000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여긴 대모산 조망권으로 프리미엄 붙었던 아파트"라며 "높은 건물이 사이에 들어오면 주민들 반발이 무척 클 것"이라고 전했다.

인근 아파트의 한 주민은 "출퇴근 시간마다 언주로가 꽉 막히는데 1만2,000가구가 더 들어오면 교통체증은 말도 못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500%는 주거공간에 걸맞지 않는 용적률"이라며 "도시 공간 속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짓는다면 마을 공동체 간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10년 분양형 '누구나집' 살 수 있을까

구룡마을 입구에 '주민 의견 수렴하라'고 적힌 빛바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현정 기자

구룡마을 입구에 '주민 의견 수렴하라'고 적힌 빛바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서현정 기자

민주당은 집값의 10%만 내고 저렴하게 살다 10년 뒤 확정분양가로 받는 '누구나집'을 구룡마을에 짓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은 난색을 표한다. 김모(77)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하루하루 버티는데 분양권을 사는 건 생각도 못한다"며 "이 주변은 평(3.3㎡)당 1억 원이 넘는다는데 입주할 땐 얼마나 오를지 모르지 않냐"고 말했다. 최은영 도시연구소장은 "분양가를 감당할 만한 소득이 있는 사람만을 위한 공약"이라며 "주민 재정착률을 높이겠다는 방향과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이해관계가 다층적인 만큼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귀범 구룡마을 주민자치회장은 "공약 발표 전 선거 캠프 사람들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며 “신중하게 검토한 뒤 발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아직 공약 단계라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답했다.

서현정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