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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에서 '고양이'까지 보장… 만병통치약 된 건강보험

입력
2022.02.04 04: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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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탈모' 이후 너도나도 건보 퍼주기 공약
전문가들 "건보 재정 강화 방안 없는 포퓰리즘"

편집자주

대전환의 시기에 치러지는 20대 대선은 대한민국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 선거라 불립니다. 네거티브 공세로 선거판이 혼탁하지만 미래 비전과 정책 검증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일보는 이슈가 되는 대선 후보 공약의 이면을 면밀히 따져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탈모 커뮤니티에서 잇따르는 '이재명을 심겠다'는 지지 선언에 호응해 헌정 영상을 공개했다. 유튜브 '재명이네 소극장'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탈모 커뮤니티에서 잇따르는 '이재명을 심겠다'는 지지 선언에 호응해 헌정 영상을 공개했다. 유튜브 '재명이네 소극장' 캡처

부동산·일자리·대북 정책 등 굵직한 이슈들이 공약으로 거론되는 대선판에 뜬금없이 '탈모'가 등장한 건 지난달 초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소확행' 공약 중 하나로 탈모치료제의 건강보험(건보) 적용을 내세우면서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재명은 뽑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이라는 홍보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다. '모(毛)퓰리즘'이란 비판이 나왔지만 다른 후보들도 슬금슬금 건보 적용 확대 공약들을 내놨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반려동물 건강보험을 현행 건보에 통합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1,000만 탈모인'에 맞서는 '1,500만 반려인구' 공략 작전이다.

건보 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급속한 고령화 중이다. 2025년 전후엔 건보 재정이 적자가 되리란 예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79조5,000억 원이었던 건보 지출이 2030년엔 160조5,00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민이 낸 건보료를 대선 후보들의 쌈짓돈처럼 써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건보 포퓰리즘의 시작, 이재명의 '탈모'

이재명 후보는 △탈모 치료 건보 확대(1,000억 원) △난임부부 조기검사 및 약값 급여화(2,090억 원) △임플란트 적용 확대(5,000억 원) 등에 총 8,090억 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민주당 관계자는 "건보 재정 국고 지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불필요한 급여 항목을 구조조정하고 급여 항목 우선순위 조정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며 "개별 항목당 액수가 적지 않지만, 건보 지출 전체로 놓고 보면 비중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80조 원에 달하는 건보 지출에 비하자면 1조 원도 채 안 되는 돈이 드는 것이라 건보료 인상 없이도 실현 가능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건보가 적용되는 순간 진료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기준 탈모 질환으로 건보 진료를 받은 인원은 23만 명이지만, 건보 적용이 늘어나는 순간 수십만 명은 가볍게 불어날 수도 있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6년 '아동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6세 미만 아동의 입원진료비 본인 부담금을 20%에서 전액 면제로 바꾸자, 건보공단이 6세 미만 아동 입원비로 병원에 준 돈은 전년 대비 40%가 급증했다. 결국 시행 2년 만인 2008년, 본인 부담금을 10%로 올렸다.

국고 지원 확대에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국민건강보호법 등의 관련 법률상 국고 지원이 전체 건보 재정의 20% 수준으로 나와 있지만 보험료 예상수입액을 기준으로 삼는 등 모호한 기준 때문에 그간 계속 적게 지원돼서다. 2007~20년 과소지원 금액만 28조 원에 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명박 정부 시절 16% 수준에서 현 정부에서는 14%로 국고 지원은 오히려 줄었다.

지난달 2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진행한 국민공약 언박싱 데이 행사에서 국민제안 공약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3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카페 하우스에서 진행한 국민공약 언박싱 데이 행사에서 국민제안 공약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외국인 수급 부정 여론에까지 편승한 윤석열

그렇다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이 제대로 된 공약을 내놓은 것도 아니다. 윤 후보 측은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현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을 개편해 건보 재정을 안정화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당뇨병 환자 연속 혈당 측정기 지원(982억 원) △요양병원 중환자 간병비 급여화(1,000억 원) 등으로 돈을 더 쓰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것들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는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선 '의료전달 및 지불제도 개편'이라는 두루뭉술한 답변 이외에는 내놓은 게 없다.

여기다 윤 후보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가입자는 한국에서 6개월 이상 거주 등 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피부양자는 거주기간과 관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주장은 당장 강한 비판에 부딪혔다. 일부 외국인의 얌체 수급이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지난 4년간 외국인 건보 재정 수지는 1조4,095억 원의 흑자를 내고 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체류 외국인의 상당수는 '젊은 외국인 근로자'라 부양가족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며 "외국인 노동자 혐오에 기댄다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도 부족한데 동물까지 돌보겠다는 심상정

양대 후보를 제외하면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심상정 케어'와 반려동물 건보 적용이 눈에 띈다. 심 후보는 본인의 연간 병원비 부담을 100만 원 이하로 맞추는 '심상정 케어'를 내걸었다. 그 한도 안에서 탈모, 비만, 여드름, 코골이, 안경 등을 모두 건보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10조 원 정도 더 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가구당 월 2만 원 정도 더 부담하는 수준의 소폭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 가능하다"며 "민간 보험 의존도를 줄이고 병원비에 대한 절대적 부담을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 후보의 또 다른 공약은 '반려동물 건보 적용'이다. 반려동물을 등록한 뒤 등록된 반려동물에 대해 건보료를 추가로 내는 방식이다. 반려동물인들 사이에선 호응이 있겠지만, 재정 추계가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임승지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박사는 "사람도 저급여 상태라 중증질환과 신약 등 문제가 정리 안 된 상황인데, 반려동물 건보 도입 자체가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정신건강 의료비 90% 건보 보장(5,000억 원)과 함께, 감기 같은 경증질환의 지원은 축소하는 대신 약값이 높은 중증질환 위주로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의 '문재인 케어 개편'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단건 공약은 포퓰리즘… 종합적 로드맵 제시해야"

전문가들은 개별 항목 위주로 공약을 내놓는 것 자체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윤석명 연구위원은 "건보 보장성이 확대되는 걸 누가 싫어하겠느냐"라며 "문제는 재정인데 이 얘기 없이 더 주겠다고만 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구체적 건보 적용 항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비용 효과를 분석해야 하는 등 엄격한 법적 절차가 있다"며 "그럼에도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개별 항목 하나하나를 미리 정해버리는 건 폭력적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건보 문제는 종합적 로드맵이 없으면 우선순위를 따지기도, 재정 방안을 짜는 것도 쉽지 않다"며 "건보는 하나의 부처 예산과 맞먹는 지출이 발생할 정도로 무척 큰 제도인데, 재정이 말라가는 건 외면한 채 한두 개 단품만 낸다는 건 아주 잘못된 의제 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김경준 기자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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