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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인색·건강한 사람만 채용… 중대재해법 '나비효과' 대비하자

입력
2022.01.25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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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중대재해법, ‘공짜 안전’은 없다]
<하> 준비 없인 안전도 없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진 사고 모습. 광주경찰청 제공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진 사고 모습. 광주경찰청 제공

오는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우리 사회 안전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전환점이 될 거란 여론의 기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법을 피부로 맞닥뜨릴 기업과 노동계의 시각은 좀 더 복잡하다. ‘처벌 수위를 높여 사고를 예방하자’는 이상과 별개로, 현실에선 예기치 못한 ‘나비효과’가 의외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서다. 법 앞에 경직된 기업의 반사 행동이 되레 노동자의 고통을 키울 거란 우려도 나온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면밀한 보완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이 두려운 기업들

광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를 일으킨 정몽규(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서울 용산구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하원기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오른쪽은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이한호 기자

광주 건설 현장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를 일으킨 정몽규(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서울 용산구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은 하원기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오른쪽은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이한호 기자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중대재해의 법적 책임을 물을 대상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중대재해법은 형사처벌 대상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로 규정했지만 과연 경영책임자가 누구냐는 게 여전히 논란거리다.

당장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만 봐도, HDC현대산업개발의 처벌대상이 오너인 정몽규 회장인지, 유병규·하원기 대표이사인지, 새로 도입될 최고안전책임자(CSO)인지 불명확하다. 이정회 변호사(법무법인 솔루스)는 “중대재해법에는 책임자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책임자가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판단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이행했다면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여전히 ‘의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대다수의 지적이다.

처벌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나비효과는 발생한다. 안전사고에 대한 기소 후 최종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통상 안전사고 관련 대법 판결까지는 2년 이상 걸린다”며 “검찰이나 법원도 사안별로 판단이 다를 수 있어, 어느 정도 판례가 누적돼 사회적 판단기준이 확립될 때까지는 갑론을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혼란 덕에 법조계는 ‘특수’를 맞았다. CEO 처벌을 우려한 기업들의 자문 의뢰가 쇄도하고 있어서다. 김앤장은 기존 태스크포스(TF)를 확대 개편해 ‘중대재해 대응그룹’을 운영 중이다. 경찰 출신 변호사부터 고용부, 산업안전보건공단 출신 등 100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광장 역시 60명 규모의 ‘산업안전·중대재해팀’을 운영하면서, 최근 신인재 전 산업안전보건교육원장을 영입했다. 태평양은 중대재해대응본부를 4, 5개 팀으로 나눠 휴일에 상관없이 24시간 상황실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자칫 노동자에 부메랑 될 수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예상되는 나비효과. 그래픽=김대훈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예상되는 나비효과. 그래픽=김대훈 기자

중대재해법의 나비효과는 역설적으로 현장 근로자를 옥죌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장기 소송전 와중의 이중 피해다. 사고 책임을 어떻게든 면하려는 기업이 대법원까지 소송전을 끌고 갈 경우, 근로자 개인으로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관행적인 기업의 우선 보상도 약해질 우려가 있다. 사고 피해자에 대한 선제적 보상이 곧, ‘책임 인정’으로 비칠까 기업이 도의적 책임 차원의 보상에조차 인색해질 거란 얘기다. 제조업계 관계자는 “평소 사고책임 증거 수집을 위해 생산현장에 폐쇄회로(CC)TV 등 감시설비를 대폭 늘리면서 인권침해 논란을 빚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뉴스1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뉴스1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이 취약층 근로자의 고용을 줄일 가능성도 경고한다. 가령 기저질환에 의한 사망도 현장에서 발생한다면 중대재해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점차 고령자, 기저질환자의 취업문이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에는 가벼운 감기나 질병이 있어도 고용하는 분위기였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일용직을 많이 쓰는 건설현장에서 취약계층이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는 셈이다.

또 사고 예방을 명분으로 채용 전 건강검진을 강화해 이를 채용거부 사유로 삼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에 대해 강성규 가천대 교수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모든 질병이 중대산업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인과관계 확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일용직 근로자가 급감할 경우, 지금보다 공사기간(공기)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충분한 공사기간을 줘도 시공사가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기를 줄이려는 경우도 있고, 시공사가 하도급 업자한테 빨리 끝내라고 할 수도 있다”며 “앞으로는 모든 주체가 공기보다 안전이 먼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이 된 중대재해법.png

현실이 된 중대재해법.png


김지섭 기자
안아람 기자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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