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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없이 감귤류 맛있게 즐기려면

입력
2022.01.25 05: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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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감귤류는 곰팡이가 잘 피는 과일이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표면을 잘 닦은 뒤 한 개씩 떨어뜨려 보관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감귤류는 곰팡이가 잘 피는 과일이다. 오래 두고 먹으려면 표면을 잘 닦은 뒤 한 개씩 떨어뜨려 보관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겨울의 끝 무렵 제철 과일을 즐기고자 비싼 돈을 주고 산 레드향에 곰팡이가 피었다. 감귤류는 부드러운 황색의 껍질 안쪽으로 달달한 즙이 흐르는 과육이 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감귤류처럼 수분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과일들은 곰팡이에 취약하기 때문에 보관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과일의 당도를 더 높이고 싶은 마음에 며칠 후숙한 것이 화근이었다. 동물처럼 식물에서도 다양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생리를 조절하는데 기체 형태의 식물호르몬인 에틸렌이 과육을 숙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과일을 수확하면서 잘린 부위나 유통 과정 중 상처를 입은 부분에서 에틸렌의 생성이 더욱 촉진되는데, 식물의 세포벽을 분해하는 효소와 다당류를 분해하는 효소의 합성을 유도해 시간이 지날수록 과육이 더 부드러워지고 당도가 높아진다. 감귤류를 손으로 주무른 후 방치하면 더 빨리 숙성되는 것도 물리적인 손상에 의해 에틸렌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충분히 숙성된 감귤은 사람뿐만 아니라 곰팡이가 번식하기에도 좋은 먹잇감이 된다. 부드럽게 물러진 과육에 곰팡이의 구조물이 침투하기 쉽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균계에 속하는 생물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해 다른 생물이나 유기물에 붙어 양분을 얻는다. 균계의 많은 종들은 균사라고 불리는 미세한 섬유 구조를 넓게 뻗는다. 먹이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균사 덕분에 먹이와 닿는 표면적이 높아지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작은 토양 속에도 무려 1㎞ 이상의 길이로 균사가 존재할 수 있을 정도이니 주먹만 한 과일에 침투한 균사의 양은 상상 이상이다. 균사가 서로 얽혀 눈에 보이는 크기의 균사체 덩어리를 형성했다면 발아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는 의미로 곰팡이가 없어 보이는 부분에도 균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균사의 끝부분이 계속 생장하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빠르게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옆에 둔 과일에도 곧 곰팡이가 퍼지기 마련이다.

균사가 자라 곰팡이가 퍼지는 것이라면 균사의 시작은 무엇일까. 곰팡이의 생활사는 균사체와 포자의 반복이다. 충분히 자란 균사체에서 공기 중으로 생식세포의 일종인 포자를 방출한 후에 적절한 조건이 되면 포자가 발아해 새로운 균사체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곰팡이는 엄청난 수의 포자를 생성해 퍼뜨리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 곁 곳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포자가 떠다니고 있다. 겉보기에 깨끗했던 레드향에도 어디서든 곰팡이의 포자가 붙어 오기 마련이다.

상처 없이 단단한 과일의 껍질을 뚫고 균사가 자라기는 어렵지만 숙성되어 물러지고 자잘한 상처가 생긴 후에는 쉽게 균사가 뻗어 나가 곰팡이의 세력을 넓히게 된다. 감귤류를 구입하자마자 표면에 붙어 있을지 모르는 포자를 잘 닦아 낸 후에 균사가 뻗어 나가지 못하도록 한 개씩 거리를 둔 채 보관하면 알맞게 후숙된 과육과 신선함을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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