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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차 한국은 4만원, 호주는 47만원... 주차전쟁 끝내는 법 [전국은 주차 전쟁]

입력
2021.12.08 04:30
수정
2021.12.08 08:1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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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차비 땅값 기회비용보다 싸
불법 주정차 과태료 낮고 벌점도 없어
도시형 생활주택·주거용 오피스텔
건축 규제 완화로 주차지옥 한몫
비싼 주차료로 도심 진입 장벽 높이고
차량 의존적인 도로망·도시구조
'대중교통·보행·자전거' 중심 전환을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단지 주차장이 이중 주차된 차량들로 혼잡하다. 오대근 기자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단지 주차장이 이중 주차된 차량들로 혼잡하다. 오대근 기자

'돈만 있으면 대한민국이 가장 살기 좋다'는 이야기는 자동차생활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차를 살 때 차량 가격과 취·등록세, 보험료 정도만 고려하지만, 선진국 국민들은 '배보다 큰 배꼽'을 먼저 걱정한다. 한 사람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도록 설계한 각종 제도 때문이다. 한국은 자가용 차량을 소유하고, 끌고 다니기 가장 쉬운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경제 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한국이 지속해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주차 관련 제도를 더 늦기 전에 고도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우선 ‘발등의 불’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차량 증가 억제가 필요하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7일 “불법 주차는 결국 주차장 없이 차를 사는 우리 사회의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주차장이 있어야 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따르는 각종 문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도입한 차량총량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차고지 증명제 등을 통해 무분별한 차량 증가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차를 사기 전에 운행권리증명서(COE)를 경매를 통해 사야 한다. 10년간 유효한 COE 가격은 1,600㏄ 이하 차량 기준 5만5,000싱가포르 달러(약 4,700만 원) 수준이다.

차량 증가 억제와 함께 현재 주차선 밖에 있는 차들이 선 안쪽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주택법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진주 청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택공급자(시행사, 건설사)를 의식해서 소수점 아래의 복잡한 수치 대신 '가구당 1대 이상' 식의 단순한 기준의 주택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없는 가구를 가정한 ‘1.0대’ 이하의 가구당 주차면 수는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역행해왔다. 정부가 건축 규제를 수차례 풀어 주차난을 부추겼다. 최근 가구당 주차대수 기준이 1대에 못 미치는(0.6대) 도시형 생활주택과 주거용 오피스텔을 더 지을 수 있도록 한 게 대표적이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 주택 공급 확대라는 대의 아래 주차난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 셈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규제 완화로 머지않아) 주차 문제가 부각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주차장 규제 완화 등의 영향으로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이 크게 늘어난 2015년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불법 주차 관련 민원은 전년보다 16배 폭증했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이 늘면서 주차 민원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불법주차에 관대한 우리 교통문화와도 연결돼 있다. 승용차 기준 벌점 없이 과태료 4만 원만 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호주는 과태료가 최대 47만 원, 일본과 싱가포르 등은 과태료(6만~25만 원) 외 벌점이 부과된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주차장 부족으로 차들이 불법 주정차를 하고, 그 차량이 직간접적으로 일으킨 사고가 최근 3년간 4,700여 건(추정)"이라고 말했다. 주차장 공급 확대와 함께 불법 주정차에 대한 처분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차고지 증명제의 도입을 역설했다. 정진주 교수는 “한국도 차고지 증명제가 필요하다”며 “차를 처음 사는 사회초년생, 취약계층에게는 국가가 일정 기간 주차비를 지원하면서도 사유지 주차장 설치 규제 완화 노력과 병행한다면 큰 문제 없이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차량 증가 억제책과 함께 비싼 혼잡통행료와 도심 주차요금 등을 통해 도심 상업지역의 차량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도 ‘주거지역의 주차난’ 해소책으로 거론된다. 차량을 끌고 나오기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 도심에 차를 끌고 온 이들로부터 받은 주차요금을 주거지 주차장 공급에 쓴다는 원리다. 김진유 교수는 "서울 중구, 강남 등 주차 수요가 집중되는 주요 지역은 주차비가 ‘무서운’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주차비 인상으로 생긴 수입을 어린이 등 노약자가 다수 거주하는 주거지 주차장 마련에 사용, 보행자 교통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승용차를 줄이기 위해선 자전거 인프라 확대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변병설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교통 선진국의 경우 자전거 출퇴근 비중이 40%에 이른다”며 “자전거 인프라 구축에 더욱 더 큰 힘을 써서 승용차의 수송분담률을 떨어뜨리는 것도 차량을 줄이고, 주차난을 줄일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승용차의 수송 부담률은 2015년 23.0%에서 2019년 24.5%로 오히려 상승했다. 서울은 지하철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교통망을 갖춘 도시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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