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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향한 욕망에 끝까지 저항하는 힘

입력
2021.11.18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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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편집자주

※ 한국 문학의 가장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4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최은미 작가. 문학동네 제공

최은미 작가. 문학동네 제공

최은미 소설만큼 위태롭고 뜨거운 정념을 여실하게 표현해낸 사례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념(情念)이 아니라 정염(情炎)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어제는 봄'이나 '아홉번째 파도' 그리고 '눈으로 만든 사람'에 수록된 '보내는 이' 혹은 '운내' 등에서 얼른 눈에 띄는, 사랑과 뒤엉켜 있는 육체적 충동과 그것이 초래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환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최은미의 소설이 하는 일은 성과 사랑의 황홀을 찬미하면서 그러한 체험이 일상적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성과 사랑을 신비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은미의 소설은 반대로 그런 것들을 신비화하며 믿고 싶어하는 우리의 허약한 마음이 일상의 세목들에서 얼마나 실현불가능한지 그것들이 어떻게 망쳐지고 여기에 크고 작은 폭력이 얼마나 끈질기게 개입하는지를 묘사한다. 그렇게 해서 “남편이랑은 이제 못하는 거. 남편 때문에 다른 사람이랑도 못하게 된 거. 그걸 나랑 하자”는 속엣말을 끝내 발설할 수 없는 사람과 “몸안의 모든 수분, 모든 피를 빼내고, 모든 습기를 말리고, 비틀고, 보이지 않는 입자가 될 때까지 갈고 갈아서, 완전히 부수어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것. 몸을 없애는 것. 이 지긋지긋한 몸을 없애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몸을 없애는 것” 그런 것을 오랫동안 원하게 된 사람의 혼란과 동요를 정밀하게 표현해내는 데 성공한다.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눈으로 만든 사람'

그럼에도 최은미의 소설은 그러한 인물들에게서 고통 속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고 소멸을 향한 욕망에 끝까지 저항하는 힘을 발견해낸다. 그녀들을 패배자나 희생자 혹은 자기혐오자로 만드는 힘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도 그러나 그녀들은 그런 역할을 순순히 수락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정직했기 때문에 혼란과 동요의 끝까지 갈 수 있었고 같은 힘에 의지해서 혼란과 동요를 뚫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순간, ‘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향해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최은미의 정념의 불꽃은 성적 쾌락이 아니라 바로 이 대목에서 타오른다. 자신과 자신의 욕망에 대한 수긍과 사랑을 갈망할 때. 그러한 갈망 때문에 ‘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는 사랑의 대상을 찾아내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그러한 대상이 되어줄 때. 그러니까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르시시즘들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뒤엉켜 더 이상 간단히 폄하되는 자기애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게 될 때. 그때 독자들의 무엇인가가 함께 흔들리며 타오른다.

권희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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