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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제로는 공짜 아냐"… 전방위 물가 올리는 '그린플레이션'이 온다

입력
2021.09.29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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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풍력발전 저조 속 전기요금 급등
천연가스 7년, 국제유가 3년 만에 최고치
전기사용 많은 알루미늄도 가격 치솟아
"생활물가, 기업 생산원가에 장기 악영향"


게티이미지 뱅크

게티이미지 뱅크


#. 독일 헤센주에 6년째 사는 송순보(36)씨는 요즘 전기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원래 한국보다 훨씬 높던 독일 전기요금이 올 들어 무섭게 올랐기 때문이다. 송씨는 28일 “빨래를 몰아서 하거나 밤에도 불을 밝게 켜지 않는 등 어떻게든 전기를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그는 지난달 연간으로 계산되는 전기요금을 150만 원가량 납부했다. 무려 월 13만 원꼴이지만 "내년에는 얼마나 더 오를지 가늠이 안 된다"고 걱정했다. 송씨에 따르면, 유럽은 한국과 달리 국가 간 전력 거래도 활발하지만 요즘은 유럽 전체가 전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그는 "전기뿐 아니라 기름값까지 오르면서 각종 물가가 덩달아 올라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했다.

곳곳에서 고개 드는 ‘그린플레이션'

최근 이른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이 미국, 유럽 등 주요국에 경기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각국이 '위드 코로나'를 외치며 경제 정상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한쪽에선 에너지와 산업 필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며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을 뜻하는 그린(green)과 물가상승(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용어다. 세계 각국의 ‘탈(脫)탄소’ 정책과 조치가 직간접적으로 기존 필수 연료, 원자재의 공급은 줄이고 수요는 늘리면서 관련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을 말한다.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게 되는 일종의 ‘에너지 전환 과도기 비용’이기도 하다.

28일 외신 등에 따르면, 유럽 각국은 최근 '전기요금 급등'이라는 심각한 그린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주요 원인은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비 급등이다. 유럽은 일찌감치 풍력 발전 비중을 높여왔는데, 올해 예상과 달리 북해의 바람이 잠잠해지면서 풍력 발전량이 크게 줄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최근 독일의 전력 도매가는 메가와트시(㎿h)당 65.16유로까지 올랐다. 이는 2018~2020년 평균보다 무려 74% 높은 가격이다. 독일의 경우 올 들어 뚝 떨어진 풍력발전량을 메우고자 '화석연료'인 천연가스 발전을 크게 늘리면서 전기요금이 더 오른 것이다.



치솟는 금속 원자재·에너지 가격

치솟는 금속 원자재·에너지 가격



유럽 각국처럼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자, 국제 가스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100만BTU당 7달러 남짓이었던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최근까지 4배 이상 뛰어 30달러에 육박한다. 27일 천연가스 가격(100만BTU당 5.706달러)은 하루에 11%나 급등하며 2014년 2월 이후 7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가스의 대체재인 원유도 덩달아 뛰고 있다. 27일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75.45달러를 찍으며, 2018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씨티그룹은 "올겨울 비정상적으로 추운 날씨까지 겹친다면 LNG 가격이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친환경차’ 발목 잡는 친환경 역설

가공 과정에 에너지를 많이 쓰던 필수 원자재 가격도 그린플레이션의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이 올해 탄소 절감과 전기 부족 등을 들어 알루미늄 생산공장 가동을 줄이면서, 국제 알루미늄 가격이 급등했다. 런던금속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톤당 1,978달러였던 알루미늄 현물가격은 27일 2,905.5달러로 47%가량 뛰었다. 같은 기간 구리는 20%, 니켈도 16%가량 오르는 등 산업용 필수 원자재 가격은 올해 경기 고점 통과 논란 속에서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친환경 전기차 생산에 필수적인 알루미늄 생산을 친환경 정책이 가로막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린플레이션 현상은 제조현장의 생산원가는 물론, 생활물가 전반에까지 장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신흥국 경제에 더 치명적이다.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수석글로벌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중국 공장들의 전력 부족 문제가 지속될 경우 알루미늄 및 철강의 국제 가격은 더 급등할 것”이라면서 “설상가상으로 중국은 석탄 부족 문제까지 겪고 있다”고 짚었다.

중국에 공장이 몰린 세라믹, 유리 및 시멘트 가격 인상도 우려한 그는 “(이대로 갈 경우) 브라질의 가정은 값비싼 전기요금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와 같이 연룟값을 감당할 수 없는 국가는 경제적으로 고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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