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번이 끝이길…취재진의 ‘어쩌다 황제 관람’

입력
2021.07.27 17:36
수정
2021.07.27 18:07
0 0

편집자주

2021년에 열리는 '2020 도쿄올림픽' 현장에 파견되는 취재기자가 재난 상황에서 겪는 생생한 취재기를 전달합니다.

한국 축구가 2020 도쿄올림픽 첫 승을 거둔 25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 가시마=김형준 기자

한국 축구가 2020 도쿄올림픽 첫 승을 거둔 25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 가시마=김형준 기자


25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한국 남자축구의 도쿄올림픽 첫 승의 순간은 기쁘면서도 허전했다. 뉴질랜드와 1차전 패배로 가라앉은 김학범호 분위기가 이날 루마니아전 4-0 대승으로 살아났으며, 답답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강인(20)의 막판 두 골과 이동준(24)과 이동경(24)의 살아난 공격력은 시원했다. 28일 온두라스와 3차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8강에 진출하는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 소중한 경기를 목격했지만, 관중들의 함성이 없으니 팥 없는 찐빵 씹는 기분이다. 개회식을 시작으로 모든 경기 취재 때마다 지울 수 없었던 감정이다.

이날 약 4만 명 수용 가능한 이 경기장 기자석에 앉은 한국 취재진은 단 4명뿐. 한국에서 동료 기자들이 부러움 섞어 보낸 ‘황제 관람’ 표현을 반박하긴 어려웠지만, 재작년 말 올림픽 취재가 확정됐을 때만 해도 상상 못했던 이 장면이 썩 달갑진 않아 “어쩌다 그리 됐네”라며 기운 없이 받아 쳤다. 늦은 밤 가시마에서 업무를 마친 뒤엔 우리 돈으로 50만원 상당의 비용이 청구되는 내야 하는 거리(약 120㎞)를 택시로 귀가, 한국에선 겪지 못할 나름의 호사도 누리지만 이 역시 통제된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라 씁쓸하다.


가시마에서 취재를 마친 뒤 도쿄까지 온 택시 이용 금액이 우리돈으로 약 45만원에 해당하는 4만500엔을 찍었다. 이 경우 1만엔 권 바우처를 5장씩 내야 한다. 도쿄=김형준 기자

가시마에서 취재를 마친 뒤 도쿄까지 온 택시 이용 금액이 우리돈으로 약 45만원에 해당하는 4만500엔을 찍었다. 이 경우 1만엔 권 바우처를 5장씩 내야 한다. 도쿄=김형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불러 온 이색 취재환경이다. 2020 도쿄올림픽에 파견된 전 세계 취재진들은 선수단 및 운영 스태프, 초청인사 등 관계자들을 제외하면 유일한 이 대회 ‘관람자’들이지만, 입국 후 3박4일간의 격리와 14일까지의 이동 제한 등으로 다른 국제대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재가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조직위는 전 경기의 96%를 무관중 경기로 치르기로 했고, 입국 14일간 취재진의 동선을 통제한다. 지정된 버스(TM)를 지정된 장소에서 타야 하고, 대부분의 버스는 MTM(Media Transport Mall)을 거쳐야 한다.

시간상 MTM을 거치기 어렵다면, 조직위에서 지정한 ‘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조직위는 취재진의 대중교통 이용을 금지하면서, 우리 돈으로 한 장에 10만원 정도 하는 ‘택시 바우처(1만엔 권)’를 모두에게 14장씩 지급했다. 이용 하루 전, 늦어도 몇 시간 전엔 예약을 해야 탈 수 있는데, 택시 회사별로 영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이 적은 탓에 예약도 쉽지 않다. 가능한 많은 현장을 누비며 현장을 찾지 못한 스포츠 팬들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지만, 이동 시간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취재 현장도 많은 점이 아쉽다.

한국 7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26일 도쿄 스타디움에서 다른 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도쿄=김형준 기자

한국 7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완용이 26일 도쿄 스타디움에서 다른 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도쿄=김형준 기자


텅 빈 관중석에서 경기하고 마스크를 쓴 채 시상대에 오르는 선수들도 허전하고 아쉽긴 매한가지다. 언제 또 올 지 모르는 근거리 국가에서의 올림픽이지만, 가족들도 응원 올 수 없는 상황이니 말이다. 올림픽 스폰서 및 파트너사가 홍보관을 차리고 가장 큰 기념품 점이 들어서는 인기공간 ‘팬 파크’도 이번엔 팬이 없어 이름값을 못 한다. 참가 선수 및 취재진, 관계자, 관중들이 편하게 드나들며 각종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이 공간도 이번엔 스폰서 및 파트너사들의 초청장을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해졌다.

모든 게 낯선 이번 대회가 끝난 뒤 내년 초부터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항저우 아시안게임, 카타르월드컵 등 스포츠 빅 이벤트가 이어진다. 관중들의 입장이 허용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이번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을 통해 관중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체감하고 있다. 부디 개최지들의 철저한 방역 관리와 준비로, 취재진들의 ‘어쩌다 황제 관람’이 이번 대회로 사라지길 고대한다.


도쿄= 김형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