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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도..." 정글 누비는 하이킹 가이드, 과거는 '콜롬비아 반군'

입력
2021.07.20 18: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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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늘 만난 세계. 지구촌 곳곳 눈에 띄는 화제성 소식들을 전해드립니다.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출신이 운영하는 '카팁사 익스페디션' 홈페이지.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출신이 운영하는 '카팁사 익스페디션' 홈페이지.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중남미 콜롬비아 남부의 깎아지른 듯한 협곡. 정글에 익숙하다는 듯 앞장선 사람은 밧줄과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45m 절벽을 내려간다. 이윽고 도착한 정글 속 숙소 벽에는 남아메리카의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선 ‘사람을 죽여 봤는진 말할 수 없다’ ‘납치엔 가담해 봤다’ 등 말이 오간다. 혹시 위험한 사람들한테 걸려든 건 아닐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정글 탐사에 앞장섰던 인물은 반(反)정부 내전에 참여했다가 손을 씻고 민간인으로 돌아온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출신이다. 정글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며 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전직 반군들이 ‘특기’를 살려 관광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콜롬비아 FARC 반군 출신이 이끄는 정글길을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콜롬비아 FARC 반군 출신이 이끄는 정글길을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19일(현지시간) 미국 공영 NPR방송에 따르면, 이들이 정글 하이킹 사업에 뛰어든 것은 3년 전인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콜롬비아 정부와 맺은 평화 협정으로 내전이 종식됐지만, 반군에 가담했던 사람들로선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문 기술이 부족했다. 자연스레 익숙한 정글로 눈을 돌렸다. 국립 직업학교에서 관광업에 대한 지식을 쌓은 전직 게릴라 30여 명은 노르웨이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여행사를 차렸다.

관광객은 주말 1박 2일 기준 1인당 125달러(약 14만4,000원)을 내면 이들의 여행에 동참할 수 있다. 정글 속 강에서 래프팅을 즐기고, 절벽을 오르내리며 트레킹도 할 수 있다. 밤에는 전직 반군들이 재정착한 캠프에서 숙박한다. 이제는 평범한 시민이 된 ‘반군 출신 가이드’들은 한때 치열했던 전투의 경험을 관광객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콜롬비아 FARC 반군 출신이 이끄는 하이킹과 래프팅 상품을 소개하는 포스터.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콜롬비아 FARC 반군 출신이 이끄는 하이킹과 래프팅 상품을 소개하는 포스터.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과거에 대한 반성도 빠지지 않는다. 반군 지도부였던 마르코 알비스는 참가자들에게 내전 중 자신들의 잔혹했던 행위를 사과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NPR는 “이들의 캠프에서 피가 흐르는 건 저녁 식사를 위해 닭을 죽일 때뿐”이라는 ‘농담 섞인 표현’과 함께, 처참했던 옛 기억들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투어에 나선 고교생 마누엘라 히메네스는 “내전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완전히 만회할 순 없겠으나, 일반인들은 전쟁 탓에 보기 힘들었던 낙원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까진 아니지만, 반군의 재사회화를 통해 평화를 이루겠다는 콜롬비아의 ‘실험’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지난해 6월 미국 학술지 아메리카스쿼터리(AQ)의 분석을 보면, 내전이 한창이었던 지난 2006년에 비해 2019년 콜롬비아의 해외 관광객 수는 300% 증가했다. 140만여 명이 관광업에 종사 중이고, 국내총생산(GDP)의 3.8%인 190억 달러(약 21조8,644억 원)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된서리를 피하긴 힘들었어도, 이른바 ‘반군 하이킹’ 상품은 이제 부분적으로나마 영업을 재개했다고 NPR는 덧붙였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하이킹을 위해 관광객들이 안전용구를 착용하고 있다. 콜롬비아 반군 FARC출신 가이드들은 이러한 지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깎아지른 듯한 절벽 하이킹을 위해 관광객들이 안전용구를 착용하고 있다. 콜롬비아 반군 FARC출신 가이드들은 이러한 지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카팁사 익스페디션 제공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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