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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공항 인근에 또 공항 건설...지역민원 앞에 경제성은 뒷전

입력
2021.06.23 04:30
수정
2021.07.07 11:2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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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기획취재물 공모전 당선작?
[2021신예타농단]
① 세금이 줄줄 샌다

편집자주

한국일보 제2회 기획취재물 공모전에 당선된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3주에 걸쳐 매주 3회씩 게재합니다. 이번 주는 최우수상을 수상한 '2021 신(新) 예타농단 사태'로 가덕도 신공항 사업 등 정치권의 도구로 전락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의 현실을 조명합니다.


4월 29일 무안국제공항 운항이 개재된 가운데 제주발 무안행 항공기 좌석이 대부분 비어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무안국제공항 도착 후 확인한 당일 운항 비행편.

4월 29일 무안국제공항 운항이 개재된 가운데 제주발 무안행 항공기 좌석이 대부분 비어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무안국제공항 도착 후 확인한 당일 운항 비행편.

“사실 무안엔 공항이 있을 필요가 없어.”

20년 동안 목포와 제주를 오간 화물차 운전기사 김태삼씨가 말했다. 그는 저비용 항공사인 티웨이 항공편이 개통된 2014년 이후 7년간 무안국제공항을 이용해왔다. 비행기는 대부분의 좌석이 비어 있었다. 하루 한 편 있는 비행기엔 마흔 명 정도가 탔다. 대다수는 화물을 배편으로 부친 뒤 슬리퍼를 신고 비행기에 오른 화물차 기사였다.

일주일에 편도 2편. 무안국제공항은 2021년 기준 국내 공항 중 운항 편수가 가장 적다.

재개가 무색한 무안국제공항

올해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필요한 경우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면제한다는 조항이 특례에 명시돼 문제가 됐다. 공항 준공까지 차질 없이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인천, 김포, 김해, 제주 4개 공항을 제외하면 국내 공항은 모두 적자다. 취재팀이 방문한 무안국제공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취재팀이 무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주를 찾은 4월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중단됐던 무안국제공항 비행편이 넉 달 만에 재개됐다. 무안발 제주행 비행기가 월요일과 금요일 한 편씩, 제주발 무안행 비행기가 목요일과 일요일에 한 편씩 있다.

비행기는 한적했다. 취재팀 3인을 제외하면 고작 24명. 총 18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비행기의 6분의 1이 안 되는 인원이었다. 비행기는 40분이 조금 안 돼 착륙했다. 승객들이 내리고 얼마 안 있어 공항의 조명이 꺼졌다. 저녁 9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무안국제공항 내 문 닫은 식당 모습. 이용 가능한 부대시설은 편의점이 전부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4월 30일 무안국제공항에 안내된 운항 예정표. 다음 항공편은 이틀 뒤에 있다.

무안국제공항 내 문 닫은 식당 모습. 이용 가능한 부대시설은 편의점이 전부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4월 30일 무안국제공항에 안내된 운항 예정표. 다음 항공편은 이틀 뒤에 있다.


무안공항 인근에 새만금국제공항 추진

무안국제공항은 코로나19 이전부터 매년 1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안국제공항 인근에 새만금 국제공항이 신설될 예정이다. 무안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이동하면 새만금 공항 부지가 나온다.

적자 공항 1시간 거리에 공항이 또 지어질 수 있었던 건 예타 면제 덕분이다. 새만금 국제공항이 본격적으로 화두에 오른 건 2016년 국토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포함되면서부터다. 전북 정치권에서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타당성 평가에서 경제성(B/C)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예타 면제를 받으며 신설이 확정됐다.

20년 숙원사업이 풀리는 것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반가워해야 마땅했다. 익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남기범씨는 무안국제공항은 물론이고 집에서 가까운 군산공항도 불편해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 그는 “새 공항을 짓기보단 기존 공항의 경쟁력을 키우는 편이 지역 경제와 주민 생활에 더 기여할 것 같다”고 했다. 무안에 20년간 살고 있는 택시기사 박종현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는 착공 예정인 새만금 국제공항에 대한 의견을 묻자 잠시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이내 “전부 정치싸움”이라며 혀를 찼다. 무안국제공항 근처에 새 공항이 들어온다면 이용객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예비타당성조사란

사회간접자본(SOC) 등 500억 이상의 재정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신규 사업의 사업성을 판단하는 절차를 말한다. 각 지자체에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을 신청하면, 기획재정부에서 접수된 공문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한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 사업을 검증해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로 1999년 도입됐다.

캠핑장만 호황인 역사 문화 시설... 청도군 신화랑풍류마을

논란의 예타 면제 사업. 과연 SOC 사업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5월 18일. 경부선 청도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폐건물이 즐비한 산길을 지나길 30분, 취재팀은 신화랑풍류마을에 도착했다. 청도군의 외곽인 을문면에 위치한 신화랑풍류마을은 신라의 화랑정신을 테마로 하는 문화 관광 시설이다. 빈자리가 대부분인 제1, 2주차장을 지나 멈춰선 제3주차장. 넓은 부지에 주차된 차는 단 세 대뿐이었다. 취재팀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택시 기사 이승수씨도 차에서 내려 신화랑풍류마을 건물을 신기한 듯 둘러봤다. 청도 70년 차 토박이인 그에게도 이곳은 생소한 장소다.

청도 신화랑풍류마을 전경. 우리정신문화재단 제공

청도 신화랑풍류마을 전경. 우리정신문화재단 제공

신화랑풍류마을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예타를 면제받았다. 경상북도의 역사 자원을 관광화해 각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취지로 시행된 ‘3대 문화권 기반 조성 사업’의 일환이다. 2018년에 개관한신화랑풍류마을은 용지만 약 9만 평에 달한다. 화랑정신기념관, 숙박시설과 캠핑장 등의 시설을 짓는 데 국비와 도비 포함 약 610억 원이 투입됐다.

비어 있는 화랑궁도장(왼쪽 사진)과 장비대여실.

비어 있는 화랑궁도장(왼쪽 사진)과 장비대여실.

취재팀이 신화랑풍류마을을 찾은 날, 176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숙박시설 ‘화랑촌’은 공실이었다.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는 화랑궁도장 장비 대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운문사 가는 길에 들른 몇 사람이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대구에서 온 이준홍씨는 "특색을 살린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VR처럼 아이들 놀거리 정도만 약소하게 갖춰져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경북에 지어진 화랑 관련 시설은 청도뿐 아니라 경주, 경산과 영천에도 있다.

시설 내 캠핑장은 이용객이 없던 역사 문화 시설과 상황이 달랐다. 청도 주민 김민정씨는 신화랑풍류마을 캠핑장을 개관 초기부터 이용해왔다. 주말이면 캠핑터 43석 대부분이 찼고, 코로나19 거리 두기 차원에서 자리를 절반으로 줄인 요즘도 캠핑장은 붐빈다. 그러나 정작 신화랑 풍류문화 체험장은 관람객이 적었다. 시설 내 캠핑장을 자주 찾는 김씨도 이용해본 적은 없고, 캠핑장 울타리 너머로 인적 없는 건물을 몇 번 본 게 전부다. 역사 자원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내세웠지만, 화랑과 실질적으로 관련 없는 캠핑장만 호황인 셈이다.

화랑정신발상지기념관 바로 옆에 위치한 캠핑장. 주중임에도 이용객이 있었다

화랑정신발상지기념관 바로 옆에 위치한 캠핑장. 주중임에도 이용객이 있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기 이전부터 신화랑풍류마을은 운영난을 겪어왔다. 개관 첫해인 2018년엔 약 3억 원의 적자를 봤고, 이듬해에도 8억4,100만 원의 운영비가 들어갔지만 5억7,000만 원의 수익에 그쳤다.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큰 규모로 시설을 지었으나 매년 운영비는 청도군 자체 예산으로 부담한다. 인구 4만명 남짓에 재정자립도가 8.5%(2021년 기준)에 불과한 청도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다.

현재 신화랑풍류마을은 청도군이 출연한 우리정신문화재단에서 2017년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다. 우리정신문화재단 관계자는 “청도군 문화관광과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시설을 운영 중”이라며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예산 집행을 타이트하게 해 자체적으로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경제성 분석과 수요 조사 등 철저한 예타 없이 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발생하는 적자는 해당 지자체가 떠안게 되는 셈이다.


‘실속’ 보장 못 하는 예타 면제, 원인은 검증 부족?

전문가들은 예타 면제 사업이 잡음을 일으키는 이유가 검증 단계가 생략되는 점에 있다고 봤다. 박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은 예타의 정보 공급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예타 면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예타 면제가 예외가 아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역 차원에서 중요한 사업이라고 해서 막상 현장에 가보면 주민들은 관심도 없고 오히려 환경단체에서 반대하는 사업인 경우도 있었다. 박 원장은 “이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예타”라고 설명했다. 예타가 생략됐을 때 예상 수요나 지자체 감당 여력 등의 정보가 국책사업 책임자에게 충분히 공급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희·윤현지·이유진(윤세영저널리즘스쿨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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