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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 전문가 인력난... "돈보다 개방적 문화가 중요"

입력
2021.03.24 04:30
수정
2021.03.24 08:5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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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이 된 상아탑]
<하> 대학에 미래를 심자

편집자주

산업이 급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 현장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해야 할 대학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턱없이 부족한 IT 개발자를 모셔가려고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연봉을 높인다. 상아탑이 산업 흐름에 뒤처진 원인과 해법을 진단하는 기획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 미래차 등 신산업 분야 인력난은 대학 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하지만 대학은 고연봉 같은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제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적은 돈'보다 '관료적 문화'가 더 싫다는 얘기다.

23일 정송 카이스트 AI대학원장이 들려준 지난 2년간의 경험도 바로 그것이었다. 정 원장은 지난해 3월 AI대학원 개원 작업을 하면서 2년 동안 국내외로 바삐 뛰어다녔다. 좋은 교수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정 원장은 그 과정을 "내 시간의 8할은 교수 뽑는 데 썼다”고 표현했다.

예상대로 교수 구하기 장벽은 높았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세계 최고 수준의 IT 기업이나 연구소의 박사 초임은 30만~40만 달러(약 3억5,000만~4억5,000만 원) 선이었지만, 카이스트가 제시할 수 있는 조교수 평균 연봉은 8,000만 원 수준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뭔가 돌파구가 없을까 싶어 해외 기업에 근무하는 한국계 IT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국내 대학 이직 조건’을 설문조사했다. 이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직 조건 중 연봉은 겨우 '4순위'에 그쳤다.

이직의 조건 1순위는 ‘함께 일할 만한 동료’였다. 트렌드 변화가 심한 신산업의 특성상 자신의 경쟁력 못지않게 함께 일하는 사람의 경쟁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순위는 ‘최신 기자재’였다. 정 원장은 “지난해 세계를 경악시킨 AI 쪽 최대 화제는 언어모델 AI ‘GPT3’의 발표였다"며 "그 정도 AI를 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슈퍼컴퓨터가 있어야 하는데 국내에 그와 비슷한 수준의 컴퓨터를 가진 곳이 없다"고 말했다.

3순위는 ‘조직문화’였다. 이 응답에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내가 한국의 위계질서 문화에 순응할 수 있을까'가 걱정의 한 측면이라면, 다른 측면에서는 '내가 한국적 문화에 익숙해지면 결국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원장은 "이 얘기를 종합하면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으로 자기 발전 가능성이 있어야 좋은 인재가 모이고, 그래야 좋은 인재를 더 불러모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대학 임용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임성수 국민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교수는 “SK텔레콤의 데이터 알고리즘 분석 전문가를 임용해 데이터처리 과목을 만들었고, 아마존 연구원을 임용해 실습과목 서버 시스템을 바꿨다"며 "대학 학부 수준에서는 그런 분들을 모셔와도 충분한데, 아직도 박사학위나 논문 등재 실적을 따진다"고 지적했다.

논문 쓰기에서 대학을 해방시키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대학, 교수 평가에서 논문을 강조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김원용 전국대학산학협력단장(중앙대 연구부총장)은 “각종 대학평가에서 논문 쓰기를 강조하다보니 역량 있는 교수라 해도 십수 년 전 과학기술 원리를 다루는 논문 쓰는데 매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신기술 트렌드는 논문보다 국제 콘퍼런스나 오픈 라이브러리 등을 통해 유통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애플에서 논문 나오는 걸 본 적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임성수 교수는 “업적 평가가 논문 중심이다 보니 창업이나 교육에 도전하려면 가욋일을 더 하거나 승진을 포기해야 한다"며 "대학이 문턱을 더 낮추고, 산업 교류 활동처럼 논문 이외의 활동을 좀 더 독려할 수 있는 평가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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