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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사례를 주세요" ... 2차피해 기준이 뭐냐 되묻는 정부 기관들

입력
2021.03.16 04:30
수정
2021.03.16 09: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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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정부기관들 해법 골머리

편집자주

서울시장 선거가 다음달 7일로 임박했습니다. '2차피해' 문제는 잊히고 '대선 풍향계'로만 주목받습니다. 박원순 사건이 낳았던 2차피해 문제를 <상> <하> 에 걸쳐 짚어봅니다.

1월 26일 서울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희롱 혐의를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이를 쇄신의 계기로 삼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당일 서울시청 앞의 모습. 뉴스1

1월 26일 서울시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 성희롱 혐의를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이를 쇄신의 계기로 삼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당일 서울시청 앞의 모습. 뉴스1


지난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은 2차피해 논란을 대대적으로 촉발시켰다. 조직, 특히 공조직에서 대놓고 벌어지는 2차피해를 막아야 하다는 목소리가 일면서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여성가족부는 지난 1월 ‘여성폭력 2차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표준안)'을 마련, 중앙부처와 지자체 등에 보냈다. 표준안을 토대로 각 기관별 성격에 어울리는 맞춤형 지침을 만들라는 것이다.

15일 각 부처 등에 따르면 정부 기관들은 맞춤형 지침을 만들지 못해 여가부에다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고 다시 요구한 상태다. 성희롱 등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징계 등 처벌이 강화된 상태인데, 이 처벌 과정에서 문제 사실이 거론되면 그것 또한 2차가해로 봐야 하는 건지 등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차피해 원천봉쇄가 목표? "너무 포괄적"

여가부가 마련한 표준안에 따르면 각 기관별 지침이 만들어지고 나면, 이에 따라 개별 조직 내 공식적인 신고 창구가 마련되고, 이 창구를 통해 조사 및 처리 작업이 이뤄지게 된다. 표준안은 2차 피해 예방 방침이 해당 조직의 기관장과 구성원들뿐 아니라, 그 조직과 업무연관성이 인정되는 제3자까지 포함시키도록 해뒀다.

논란은 2차피해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일념 아래 이 같은 규정이 너무 포괄적이라는 데서 나온다. 다른 정부 기관에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그것도 구체적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건 이 때문이다.


여가부의 여성폭력 2차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에서 정의하는 '2차피해' 유형. 여가부 제공

여가부의 여성폭력 2차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에서 정의하는 '2차피해' 유형. 여가부 제공


2차피해의 경계는 어디?

가장 논란이 되는 건 역시 2차피해의 '경계'다. 장인자 교육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이미 처리된 성폭행 피해 문제를 두고 가해자 징계 등의 문제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 경우도 2차피해라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며 "개별 사안별로 2차피해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표준안에서는 사건처리 및 회복의 전 과정에서 입는 정신적 피해를 거론하면서 그 중에 '소문 유포'를 거론해뒀다"며 "이 또한 SNS를 통한 정보의 전파 등을 감안하면 피해자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2차가해 여부가 달리 적용될 수밖에 없어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박영 고용노동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2차피해를 예방해야 하고, 누구나 무심코 2차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점에서 기준이 빨리 마련되면 좋겠지만, 그 당위성에 비해 표준안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여성폭력 2차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에서 제시하는 '구성원의 책무' 조항. 여가부 제공

여가부의 여성폭력 2차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에서 제시하는 '구성원의 책무' 조항. 여가부 제공


공식 절차도 '2차피해' 될 수도

기존 절차가 2차피해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정신과 의사에게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는 한 교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등으로 약식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교사가 피해자라곤 하지만 정신과의사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판한 게 문제가 됐다.

교원징계령은 교원이 벌금형 이상의 약식기소 통보를 받았을 때 30일 이내 징계위로 회부하게 되어 있다. 해당 교육청은 이 절차에 따라 이 교사를 징계했다. 하지만 이 교사는 징계로 인해 2차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장인자 담당관은 "여가부의 표준안은 징계와 같은 신분상 불이익을 2차피해로 보는데, 이게 교원 징계와 충돌한 셈"이라 말했다.

또 공무원 징계는 최종적으로 소청심사위원회로 넘어가는데, 개별 부처나 조직 차원에서 개입할 수 있는 통로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신분상 불이익이 대표적 2차 피해인데, 소청심사위로 넘어가면 소속 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시각물_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정부 대책

시각물_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정부 대책


지난해 8월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에서 광주 여성·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성추행 신고를 한 전남대 산학협력단 여성 직원을 해고한 학교 측의 조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지난해 8월 광주 서구 광주시의회에서 광주 여성·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성추행 신고를 한 전남대 산학협력단 여성 직원을 해고한 학교 측의 조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기관별 싸움에 2차피해 더 커진다

기관별 판단이 다를 경우 이를 조정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2019년 전남대에서 발생한 성비위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남대 인권센터는 사건 조사 뒤 피해 여성의 주장이 거짓이라 판단, 신고한 직원과 이를 도운 직원을 각각 해임, 정직 처리했다.

하지만 사안이 커지자 별도 감사에 착수한 교육부는 되레 이 사안 처리를 결정한 전남대 교수들을 징계하라고 대학에 통보했다. 전남대 교수회는 반대 성명을 내는 등 교육부의 결정에 반발했다. 감사 등 진상조사가 이뤄지더라도 해당 기관이 이를 거부해 분쟁이 이어지면, 그로 인한 2차피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이 때문에 2차피해 방지를 위해 제도 자체를 너무 경직화시키면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선영 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가부 표준안을 바탕으로 각 기관별 지침을 만들자는 취지는, 그간 성희롱 등 피해사실을 말하면 마치 내부고발자처럼 취급당했던 분위기를 없애자는 것"이라며 "2차피해 문제를 조직 내에서 슬기롭게 다루자는 의미인 만큼 처벌보다 조직문화 변화에다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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