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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말하는 미래를 믿느니... 주식이 보여주는 숫자를 믿겠어요

입력
2021.01.05 21:30
수정
2021.01.05 23:3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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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금 부담 큰? 2030, 복지 부족한 6070

편집자주

2030·6070세대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청년·노년을 사는 첫 세대다. 일자리·주거·복지에서 소외를 겪으면서도 ‘싸가지’와 ‘꼰대’라는 지적만 받을 뿐, 주류인 4050세대에 치여 주변부로 내밀린다. 세대간 공정을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외침이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27)씨와 직장동료가 점심 시간 짬을 내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박씨 제공

공공기관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27)씨와 직장동료가 점심 시간 짬을 내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박씨 제공

세전 월급여 300만원. 세금과 4대보험료 등등을 빼고 통장에 찍히는 실수령액 250만원. 여기서 1년 만기 적금 83만원, 생활비 50만원, 월세 50만원, 연금저축 34만원, 각종 보험료 13만원, 경조사비와 통신 요금이 각각 10만원씩 빠진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어라, 잔액이 0원이네. 물론 적금이 1년에 1,000만원씩 쌓인다곤 하지만, 서울 평균 집값이 10억원인 시대에 1년을 벌어도 아파트 1㎡ 값도 안 된다.

암담하다. 이 가계부의 주인공 3년차 직장인 전예진(30)씨는 매달 21일 월급 통장을 정리할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쉰다. 뭔가 여행이나 특별한 활동을 하려면 저 지출 목록을 구조조정 해야 하지만, 생활비나 연금·보험을 줄이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전씨가 찾은 해답은 주식이다. 새해부터 전씨는 적금을 줄이고 주식 투자 비율을 늘리기로 결심했다.

대학생 최모(22)씨가 노트북으로 자신이 구매한 우량주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을 주식에 쏟고 있다. 최다원 기자

대학생 최모(22)씨가 노트북으로 자신이 구매한 우량주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을 주식에 쏟고 있다. 최다원 기자

자산 수익률이 소득 증가율을 압도하는 시대. 2030은 근로 소득만으로 개천 탈출을 꿈꿀 수 없는 세대다.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일 뿐, 저축만이 살 길은 옛날 얘기고, 이제 '저축은 죽는 길'이다. 그래서 2030이 선택한 사다리는 금융투자다. 비트코인, 주식에 젊은이들이 목매는 것은 자산의 벽을 넘지 못하는 '소득의 한계'를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일찌감치 절감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그런 청년들을 타박한다. "종잣돈을 만들어야지." "아직 세상도 제대로 모르면서 도박 같은 주식에 눈을 돌리면 쓰나." 그런 이들에게 2030은 반문한다. 과연 저축으로 돈을 모은다는 게 이 시대에 가능하냐고.

주변 친구들 90% 이상이 주식해요

저축만 바라보는 젊은이는 이제 없다. 한국일보가 취재를 위해 만난 9명의 2030은 "주위의 90% 이상이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심취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고 있는 6년차 직장인 김연경(27)씨는 "예금을 넣어놓는 것보다 주식 투자가 재산 불리기 더 좋다는 얘기에 주식을 시작했다"며 "한창 때는 월급의 90%이상을 주식에 투자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청년층의 신용융자 잔고 추이 증가율. 중장년층에 비해 100%를 훌쩍 넘기고 있다. 금융감독원 제공

지난해 청년층의 신용융자 잔고 추이 증가율. 중장년층에 비해 100%를 훌쩍 넘기고 있다. 금융감독원 제공

이들의 일상엔 적금 대신 주식이 자리 잡은지 오래다. 공공기관 4년차 직장인 박모(27)씨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월급이 줄었지만, 적금 예금 비율을 20%까지 줄이고 투자 비율을 50%까지 늘릴 것"이라고 재테크 계획을 설명했다.

꽤나 많은 2030은 직장도 구하기 전인 대학 시절부터 주식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선배들의 사례를 보고, 월급만으로 답이 없다는 것을 일치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김연경씨는 "취업 준비생 시절, 스펙이며 아르바이트를 준비하면서 비트코인을 시작했다"며 "나 한 사람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절을 탈출하려 했던 몸부림"이라고 말했다.

전예진씨도 대학생이던 7년 전 주식에 입문했다. 그는 23세에 "주변 사람들이 전문직에 도전하려고 고시나 로스쿨을 준비했지만 내 상황에선 시간, 노력, 돈 모든 게 아까웠다"며 "그래서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주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주식이 믿을 구석이죠

제 또래와 치열한 취업 경쟁을 마친 뒤, 선배 세대와 더욱 살벌한 보금자리 전쟁을 치러야 하는 2030. 그들은 자기 한 몸 지키기 위한 그나마 확실한 수단이 주식이라고 말한다. 전예진씨는 "젊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주식"이라고 말했고, 직장인 서모(27)씨 역시 "주식에 관심을 갖는 청년이야말로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20대 대학생 하모씨가 주식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하씨의 블로그에는 하루 3,000여명이 방문해 주식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하씨 제공

20대 대학생 하모씨가 주식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하씨의 블로그에는 하루 3,000여명이 방문해 주식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 하씨 제공

2030이 주식과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앞으로 이 땅에서 직면할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는 자각 때문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에 이어 가장 인구가 많은 40대 후반~50대 초반 세대가 차례로 노년층에 진입하면, 지금의 2030이 이들의 연금 수급을 떠받쳐야 하는 상황이 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자 100명이 몇 명의 수급자를 부양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제도부양비는 지난해 19.4에 불과했지만, 2040년 60.0, 2050년 93.1로 치솟는다. 지금은 100명이 내는 연금을 19명이 나눠 가지지만, 30년 후엔 100명이 93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2년째 취업 준비중인 박모(26)씨는 "어른 세대 연금에 내 돈을 헌납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그만 뒀다"고 말한다. 박씨는 요즘 택배 상하차 등 바로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변동 상황이 즉각 나타나는 주식에 투자한다. 미래를 기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우리 미래는 선배세대 연금 뒤치다꺼리

2030은 자신들의 '주식 사랑'이 희망이나 가능성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김연경씨는 "주변 얘기를 들어봐도 월급은 내가 그때그때 소비하는 비용을 충당하는 돈일 뿐이고, 미래를 위한 돈은 주식 투자로 마련하려고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은 삶을 영위하는 이 세대만의 새로운 방법을 어른 세대들이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부모님들은 입버릇처럼 '우리 자식들 세대가 힘들지'라고 하시면서도 ‘나도 같은 사회 생활을 했는데 왜 쟤네들만 저렇게 주식을 하나' 의문스러워 하세요. 글쎄요. 주식이라도 안 하면 뭘 할 수 있을까요." 전예진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지난해 20대의 신용거래 융자 잔액. 달마다 그 규모가 늘어가고 있다. 장혜원 의원실 제공

지난해 20대의 신용거래 융자 잔액. 달마다 그 규모가 늘어가고 있다. 장혜원 의원실 제공


최은서 기자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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