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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미혼 한부모'가 품은 사연, 그들 노래가 영원하길

입력
2020.11.01 1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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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히쉬(HeShe)태그'는 청소년 미혼 한부모들의 실제 이야기를 녹인 창작뮤지컬이다. 올해는 온라인 낭독공연으로 관객을 만났다. CJ나눔재단 제공

'히쉬(HeShe)태그'는 청소년 미혼 한부모들의 실제 이야기를 녹인 창작뮤지컬이다. 올해는 온라인 낭독공연으로 관객을 만났다. CJ나눔재단 제공


합창(合唱) [명사] 1.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맞추어서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 2. 여러 사람이 여러 성부로 나뉘어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다른 선율로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

청소년 미혼 한부모와 함께 만드는 뮤지컬 프로젝트 ‘히쉬(HeShe)태그’가 올해로 3년차를 맞았다. 첫 해에 작가와 연출로 참여하고, 다음 해부터 새로운 창작자들이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 했다. 올해의 작품을 보면서 시작부터 눈물이 났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3년 전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몰랐다. 나는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었을 뿐, 그들의 삶에 대해 몰랐다. 그들은 삶을 빛나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때때로 그 빛이 세상에 막혀서 저마다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삶에 얼마만큼 다가가야 할지, 그들이 자신들의 빛과 그림자를 얼마만큼 노래로 부를 수 있을지, 모든 것을 가늠할 수 없었다.

연습 첫날, 솔직하게 고백했다. “난 여러분의 삶이 무대에서 빛나게 돕고 싶다. 하지만 난 여러분의 삶을 모르고 나의 삶만 안다. 그러니 약속하자. 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하나 들려주면, 여러분의 이야기를 나에게도 하나 들려 달라. 그렇게 하나씩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가 점점 섞여 가면서, 나에게도 숨겨진 그림자가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때로 그 상처를 들추면서 밀려오는 눈물을 참았다. 그렇게 애써 참은 눈물은, 그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하나씩 부르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터지곤 했다.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우리가 나눠 왔던 이야기가 골고루 섞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설움, 누군가의 희망, 누군가의 간절함, 그 모든 ‘누군가’가 한 곡의 노래에 담기며 ‘모두’ 가 되고 있었다. 나는 노래를 듣고 있었지만, 사실은 함께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합창’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을 위해 모두가 쌓아올린 시간. 그 기나긴 이야기의 합창.


청소년 미혼 한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 '히쉬(HeShe)태그' 공연 장면. CJ나눔재단 제공

청소년 미혼 한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뮤지컬 '히쉬(HeShe)태그' 공연 장면. CJ나눔재단 제공


나는 그 합창 속에서 많은 순간을 보았다. 자신의 처지를 담은 대사 한 마디에 울컥해서 얼굴이 빨개지던 A가, 어느새 자신의 삶을 온전히 풀어내는 독백을 하는 순간을 보았다. 노래를 할 때마다 눈물이 나서 늘 고개를 숙이던 B가, 어느새 홀로 조명을 받으며 독창을 하는 순간을 보았다. 무대에는 도저히 못 서겠다며 일만 돕겠다고 하던 C가, 주인공이 되어 관객의 박수소리를 듣는 순간을 보았다. 저마다의 삶과 그림자를 지녔던 이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오프닝 합창을 하는 순간을 보았다.

독백을 하는 A를 보며 얼굴이 빨개지던 내가 떠올랐다. 독창을 하는 B를 보며 고개를 숙이던 내가 떠올랐다. 박수를 듣는 C를 보며 어딘가에서 도망치던 내가 떠올랐다. 하나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합창을 들으며, 그 수많은 얼굴을 보며, 난 과거의 어둠 속 곳곳에 두고 왔던 내 얼굴들을 떠올렸다. 아마 객석에 앉은 관객들도, 무대 위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속에서 저마다의 노래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히쉬태그’에서 만난 이들의 노래가 오래오래 계속되면 좋겠다. 그 오래오래 이어지는 노래를 들으며 우리 또한 오래오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합창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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