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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악 말라" vs "의견 수렴" 도서정가제 개정 두고 불 붙은 출판계와 문체부

입력
2020.08.19 18:00
수정
2020.08.20 19: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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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재검토 시한 앞두고 입장 차 커 난항

편집자주

온전히 품지도 못하고, 온전히 버릴 수도 없는 계륵 같은 존재. 도서정가제 얘기다. 좋은 책이 많이 나오려면 저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함께 살아 남아야 한다. 도서정가제는 출판 생태계를 지탱하는 최후 보루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당장 책값이 좀 더 저렴해지길 바란다. 3년마다 돌아오는 재검토 시한(11월 20일)을 앞두고 도서정가제 찬반의 입장을 들어봤다.

출판·서점·작가단체로 이뤄진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가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현판식을 열고 공식 발족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도서정가제 합의안을 파기했다고 규탄하며, 합의안 이행과 민관협의체 재가동을 촉구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출판·서점·작가단체로 이뤄진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가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현판식을 열고 공식 발족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도서정가제 합의안을 파기했다고 규탄하며, 합의안 이행과 민관협의체 재가동을 촉구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제공

11월 20일로 예정된 도서정가제 개정을 앞두고 정부와 출판계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출판계는 정부가 잠정 합의안을 마련해놓고도 대형 웹툰ㆍ웹소설 업계의 눈치를 살피느라 갑작스레 판을 깼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전자출판물 등 추가적인 의견수렴을 거치는 과정일 뿐 합의 파기는 어불성설이란 입장이지만, 출판사와 서점, 웹소설ㆍ웹툰 등 전자출판계,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며 도서정가제 논의는 갈수록 표류하는 모양새다.

이에 출판계는 19일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하며 공동대응에 돌입했다. 전국 100여개 서점들의 모임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도 이날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여론전에 힘을 보탰다.

지난달 1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공개토론회 때만 해도 갈등이 이렇게까지 심화하진 않았다. 업계 대표자들로 구성된 민관협의체가 지난해 7월부터 16차례 협의 끝에 마련한 일부 합의안(구간의 정가 변경 기한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단축, 도서관 등 공공기관 구매 도서 할인 10%만 허용 등)도 내놓으며 이견을 좁혀가고 있었다.

'도서정가제'는 무엇

출판사가 책정한 정가대로 서점에서 판매하는 제도. 다만 우리나라에선 책을 판매할 때 일정수준 이하로 할인을 못하게 하는 제도로 통용되고 있다.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 출판생태계가 흐트러지는 걸 막기 위해 2003년부터 법제화됐다. 현재는 정가의 15%(10% 가격할인, 5% 마일리지 적립 등 경제상 이익)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정해놨다. 3년마다 재검토 절차를 밟아 폐지 또는 완화, 유지 등의 조처를 취하기로 돼 있는데 11월 20일까지가 합의안 도출 시한이다.

하지만 뇌관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전자출판업계가 자신들은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아예 예외로 해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다. 협의체에서 웹툰ㆍ웹소설의 경우 정가 표시 의무를 완화해주는 것으로 이미 공감대를 이뤘지만 전자출판계는 매체 성격이 엄연히 다르고 새롭게 형성된 시장인 만큼 특수성을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자책은 플랫폼이 운영을 중지하면 소유권이 구매자에게 넘어가지 않는 데다, 웹툰과 웹소설 등은 보통 연재 형태로 회당 게재되고 있어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게 ‘역차별’이란 논리다.

출판계는 수긍하기 어렵단 반응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웹툰ㆍ웹소설 역시 만화나 소설로 온라인 플랫폼에 공개된 것일 뿐, 본질적으로 출판물이란 성격은 유지되는 ‘확장된 출판시장’인 만큼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는 과도하다는 것이다. 예외 조항을 두기 시작할 경우 도서정가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자출판계가 면세 혜택을 노리고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도서정가제는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등이 부여된 출판물에 한해 적용되고, 이 경우 부가가치세를 면제받고 있다. 박용수 대한출판문화협회 기획상무이사는 “전자책이 도서정가제 적용을 피하고 싶다면 ISBN 번호를 받지 않으면 되기에 이는 선택의 문제”라며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을 누리면서 도서정가제로 인한 가격 규제는 피하려는 건 과도한 욕심”이라고 꼬집었다.

'할인율'을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출판계에선 완전도서정가제를 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거세지만, 현실적으로 현행 15% 할인율을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부로선 소비자 후생도 외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선주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지난해 국민청원을 비롯해 도서정가제 할인율을 높여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제도의 수용성을 높이려면 국민들의 요구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지만, 출판생태계 육성이라는 취지를 잘 살려야 하는 만큼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인율을 건드리는 건 도서정가제 존립 자체를 흔드는 격이라고 출판계는 반발한다. 조진석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지금도 동네책방들은 제대로 된 영업 수익을 내지 못한 채 '좀비 서점'으로 변해 겨우 버티고 있는데, 도서정가제가 완화된다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정책위원장은 "개정된 도서정가제 이후 독립서점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출판사도 늘고 신간 종수도 증가하는 등 출판계의 다양성이 크게 증진됐는데, 할인율을 높인다면 이 모든 걸 역행하는 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일단 이달 안을 목표로 개정안 초안을 마련해 출판계 등 관련 업계와 협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양측 입장 차이가 너무 커 조율은 쉽지 않아 보인다. 개정 시한까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도서정가제는 현행 수준 그대로 유지된다. 전자출판계 입장에선 구독 및 대여 서비스 등을 지금처럼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는 것. 박옥균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은 “판을 깨더라도 전자출판계는 본전이라는 점에서 최대 수혜자"라며 "문제는 이번에 손을 보지 않으면 3년 뒤 개정시한까지 전자출판계 거대 기업의 시장 독점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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