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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데시벨 ↑ 심장마비 위험 2.8% ↑… "소음은 조용한 살인자"

입력
2020.07.17 04:3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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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만큼 위험하지만 심각성 인식 못해
고혈압ㆍ심부전ㆍ뇌졸중 등 유발 연관 있어
민원 갈수록 증가 "건강 최우선한 정책 필요"

경기 성남시 판교 알파리움 2단지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여름마다 두통에 시달리고 우울해진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가까스로 눈을 붙여도 금새 깨기 일쑤다. 불면증과 수면장애 탓에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무겁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조용한 곳에 오래 머물면 환청이 심해져 귀에서 '윙윙' 하는 소리가 울린다.

아파트 단지 앞 판교나들목을 지나는 도로소음에 4년 넘게 시달린 탓이다. 수면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수면제를 처방받는 것 외에는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차량통행량을 줄이거나 획기적인 차단설비를 설치하는 것밖에 없다. 안광환 성남시의원은 “판교나들목 진출입로와 서현로 인근 주민들은 밤낮 없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 70데시벨(㏈A) 이상의 소음으로 창문을 열지 못하고 수면장애까지 겪고 있다"며 “성남시가 2015년 알파리움 2단지에 대한 주택건설 사업을 승인할 때 소음관리 기준을 무시해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A씨를 포함한 입주민 400여명은 성남시에 "도로소음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정신적으로 심각한 고충을 겪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한 상태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A씨처럼 소음피해로 건강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일보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소음진동 분야 전문가들은 소음공해에 장기간 노출되면 미세먼지나 수질오염 피해 못지 않게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미세먼지는 눈이나 코, 피부를 통해 피해를 실감할 수 있고, 수질오염도 냄새나 색깔로 심각성을 느낄 수 있지만, 소음피해는 피해지역이 좁고 개인별 민감도도 달라 심각성을 뒤늦게 인식하기 쉽다.

환경소음(자동차 등 환경요인에서 비롯된 원치 않은 소리)이 고혈압이나 심근경색, 심부전, 뇌졸중 발생률 증가와 연관이 있다는 지적은 해외에서 이미 입증됐다. 독일 마인츠대 의료센터 토마스 뮌젤 박사는 2018년 미국 심장학회지에 실린 논문 ‘환경소음과 심혈관 시스템’에서 소음 노출로 스트레스를 겪은 피실험자의 심방세동(심방의 여러 부위가 아주 빠르게 뛰는 부정맥의 일종) 발병률이 현저히 높아졌다는 점을 밝혔다. 독일 라인란트팔츠주(州) 마인츠빙엔 지역에 거주하는 35~74세 주민 1만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한 결과, 조용한 상태에서는 심방세동 발병률이 15%에 그친 반면, 극심한 소음피해를 겪은 경우 발병률이 23%로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연합(EU)에서도 소음공해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WHO는 향후 미세먼지 다음으로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적 요인으로 소음공해를 꼽을 정도다. WHO는 2018년 펴낸 ‘유럽 환경소음지침’에서 밤 시간대 소음도를 평균 40데시벨(㏈A) 이하로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이보다 큰 소음에 노출되면 수면장애와 각성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며, 55㏈A 이상의 소음에 장기간 노출되면 혈압 상승으로 허혈성 심장질환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2017년 소음을 “조용한 살인자”로 명명하며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16년 독일 드레스덴대 연구진도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10㏈A 커질 때마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은 2.8% 증가했다’는 실험결과를 내놓았다.

도로소음은 '조용한 살인자'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장기간 피해가 누적되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에 치명적이다. 숙면을 방해하고 학습과 작업능률을 떨어뜨려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소음저감 대책은 미미하다. 한국일보가 서울시를 비롯한 12개 지방자치단체의 3차원 소음지도 구축사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민 10명 중 2명은 기준치를 초과한 소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효진 기자

도로소음은 '조용한 살인자'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장기간 피해가 누적되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에 치명적이다. 숙면을 방해하고 학습과 작업능률을 떨어뜨려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 심각성에 비해 정부의 소음저감 대책은 미미하다. 한국일보가 서울시를 비롯한 12개 지방자치단체의 3차원 소음지도 구축사업 결과를 분석한 결과, 서울시민 10명 중 2명은 기준치를 초과한 소음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효진 기자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율이 높아 소음피해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위험 신호는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20년간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1991~2018년 발생한 환경분쟁 사례 4,057건 가운데 85%(3,448건)가 ‘소음 및 진동’ 피해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일각에선 배상금을 받기 위해 주민들이 소음피해를 과장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의 시선도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지방자치단체의 한 민원담당자는 "소음피해가 알려지면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오히려 도로소음과 관련한 문제제기는 가능하면 자제하려고 한다"며 "시끄러워서 정말 못 살겠다고 느낄 때 민원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정부도 소음피해가 심각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소음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4차 소음진동관리종합계획(2021~2025년)을 마련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소음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건강을 해치는 요인을 줄이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관계자도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 소음피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며 “지금이라도 주민들 건강을 최우선적으로 감안한 소음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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