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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해방공간… 879명이 써내려 간 북한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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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해방공간… 879명이 써내려 간 북한사회의 ‘민낯’

입력
2020.06.18 14:00
수정
2020.06.1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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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남제의 자서전.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오남제는 서툰 글씨체로 자서전을 썼다. 토지를 분여 받은 그는 국가의 시혜에 보답하려 백미를 헌납했다. 푸른역사 제공
오남제의 자서전.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오남제는 서툰 글씨체로 자서전을 썼다. 토지를 분여 받은 그는 국가의 시혜에 보답하려 백미를 헌납했다. 푸른역사 제공

책 제목인 ‘고백하는 사람들’은 해방 공간 북한의 일반 민중 879명이다.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때까지 북한 각급 기관 직원인 이들이 생산한 자서전과 이력서, 그들에 대한 상급자의 평정서를 토대로 당시 북한 사회의 모습과 주민 생활상을 책은 재현해냈다.

저 시기 북한 인민들에게 양대 사건은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에 따른 광복과 이후 공산주의 혁명이다. 친일파 척결은 사적 원한 해결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해방을 맞자 세상은 무법천지로 변했다.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주민들은 우차(牛車)몰이꾼들을 혹사하며 배급할 쌀을 횡령한 우차 총대(總代)의 집으로 몰려갔다. 성난 군중 틈에는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청년훈련소에 들어간 김종성(당시 16세)도 끼어 있었다. 군중은 총대 부자를 사정없이 구타했고, 몰매를 맞은 총대는 사흘 뒤에 사망했다.

군중은 재산 몰수에도 적극적이었다. 친일파가 쌓은 재산은 동족 착취 산물로 인식됐다. 하지만 몰수가 법적 절차에 따라 엄정히 집행되지는 않았다. 해방 직후의 혼란에 편승해 사욕을 채운 이들 중에는 지역 내 ‘건달꾼’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남한으로 도주하거나, 보안기구에 체포돼 교화소에 수감됐다.

의외로 일제에 협력했어도 악질적 친일 행위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전문직 종사자들은 기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강원도 평강축산전문학교 교장 주범(당시 40세)은 시학(視學)으로부터 일제 전직자라 학교장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들었지만, 경질되지는 않았다. 전문가인 데다 기술학교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비행대 조종사 출신 인사가 북한 공군의 모태가 될 신의주 조선항공대에 입대하기도 했다.

혁명은 빈농과 지주의 희비를 극명하게 갈랐다. 빈농은 체제의 버팀목이 됐다. 머슴 출신인 황해도 재령군 농민 오남제(당시 38세)는 토지개혁으로 논 859평을 받고 어엿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첫 수확을 마치자마자 쌀 네 가마니를 현물세로 납부하고도 모자라 ‘애국미’ 여섯 가마니를 추가 헌납할 정도로 국가에 보답하고픈 욕구가 솟구쳤다.

지주 토지 몰수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산업국장 이문환(당시 43세)은 북한의 산업 부문을 총괄한 고위 인사였지만 토지개혁 때 2만평의 경작지를 빼앗겼고, 재산이 30만원에서 1만원으로 줄었다. 평양공업대 건설공학부 건축과 교수 김윤제(당시 25세)의 부모는 경작지와 주택을 몰수당해 재산 절반을 잃고 ‘요(要)이주자’로 찍혀 살던 곳인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축출됐다.

자서전ㆍ이력서는 모든 개개인을 장악하려 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반적 통제 기제였다. 한국전쟁 기간 중 38선 이북을 점령한 미군이 북한 공공 기관에서 이 문건들을 노획했다. 북한사(史) 연구자인 저자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수장고에 60년간 보관돼 있던 해당 자료들을 만난 약 10년 전을 이렇게 회고한다. “역사 연구자들은 엄청난 자료와 마주칠 때 전율한다. 20여년간 그런 전율이 나를 엄습했던 적은 두세 번뿐이었다. 이 글 기초 자료인 자서전ㆍ이력서류를 처음 접했을 때가 그 중 하나였다.”

고백하는 사람들

김재웅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472쪽ㆍ2만5,000원

저자는 인물들의 집단 경험을 분해한 다음 테마별로 꿰맞춰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방식을 썼다. “대중들의 관점에 입각한 역사 서술이 가능해지면서 역사 세계의 민주주의가 성취됐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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