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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나는 다만 뒤를 따라가는 음향신호다

입력
2020.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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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부문 당선자 신종원씨 당선소감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 신종원씨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자 신종원씨

현악기 소리를 하나 상상해보자.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다 감바. 어떤 것도 상관없다. 누군가의 어깨 위에서, 혹은 넓적다리 사이나 무릎 밑에서 연주되는 악기가 하나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성부가 하나뿐인 그 음악은 일면 쓸쓸하고 외로운 구석이 있다. 악기가 하나, 둘, 셋, 넷, 하는 식으로 박자를 만들어나가면, 불현듯 다른 악기가 똑같이 뒤따라 연주된다. 하나, 둘, 셋, 넷. 똑같이. 그리고 또 다른 악기가 다시 그렇게. 이런 음악 형식을 카논이라고 한다. 제시된 성부가 시간차를 두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학도 그렇다. 긴 시간 나를 이끌어준 이름들을 감히 이길 수 있는지? 바꿀 수 있는지? 플로베르의 정원과 벤야민의 아케이드. 제발트라는 산책로. 블랑쇼가 일으킨 화염은? 조이스의 푸줏간, 보르헤스의 도서관과 카프카의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키냐르의 오르간을 부수고 포의 갈가마귀, 멜빌의 백경을 잡아 죽일 셈인지? 이어지는 베케트의 독백. 드 퀸시의 농담. 포크너의 중언부언들.

이들이 나를 앞서가는 성부들이라면, 나는 다만 뒤를 따라가는 음향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들을 모방하는 노래다. 비어 있는 콘서트홀에 홀연히 떠오르는 음성이다.

목소리는 모든 음악을 끝내라고 속삭인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너는 네가 들은 최초의 소나타를 찾아내고 말 거야. 너는 배 속에 있을 때 네 부모가 들려준 태교 음악, 교회 칸타타를 찾아 기보하게 될 거야. 이제 그 부름은 이렇게 강요하기에 이른다. 그라치오소! 우아하고 상냥한 톤으로. 너는 왜 너에게 종원鐘原이라는 이름이 주어졌는지 기어코 알게 될 거야. 너는 그 이름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필요하다면 구걸하는 사람의 몸짓으로. 시종일관 필사적이어야 할 것.

카논에는 코다가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다는 구조다. 그래서 "종울림" 또는 "종소리의 기원"이라는 이름을 타고 난 소년은 모든 음향을 끝내려는 사람으로 이 땅에 왔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시작된 카논 음악의 마지막 성부가 되려고. 수백, 나아가 수천, 어쩌면 수만 년 전부터 수없이 반복해서 구전되어온 노래의 끝, 이른바 하나의 코다가 되고자.

먼저 바흐를 죽일 것. 그런 다음, 세계를 침묵 속으로 되돌리기. 음성과 음향의 무덤. 가장 처음의 무소음 상태 그대로.

나는 파괴적인 음향신호이다.

 △1992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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