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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가다, 이슈를 읽다] 생태 습성 다른 동물들 좁은 공간에 함께 전시… 질병 옮길라

입력
2019.12.23 20:00
수정
2019.12.23 21: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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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내동물원ㆍ야생동물카페

경기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어린이들이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고경석 기자
경기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어린이들이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고경석 기자

“동물학대라고요? 동물을 괴롭히는 사람도 없는데요. (동물카페 손님) 모두 애정을 갖고 쓰다듬어주잖아요. 야생에서 맹수들에게 잡아 먹힐 걱정도 없고요. 개나 고양이처럼 라쿤도 사람들과 지내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라쿤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강모씨는 야생동물 카페에서 동물들을 전시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동물복지에 상대적으로 민감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강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지난 9월 발표한 ‘전국 야생동물카페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35개였던 야생동물카페는 최근 64개로 늘었다. 이 가운데 18개가 서울에 있으며 충청, 경남, 제주 등으로 지역 분포가 점차 넓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만큼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온라인 카페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야생동물카페나 실내동물원에 다녀왔다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쓴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모두 강씨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 같은 라쿤카페에서 만난 직장인 조은성(32)씨는 “라쿤을 직접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즐거웠지만 종일 사람들을 대하는 게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야행성인데 낮 생활 강요 당하는 라쿤

서교동 라쿤카페는 카페라기보다 작은 동물 전시장이라 부르는 게 적절할 듯했다. 이 곳에는 라쿤과 개 각각 네댓 마리가 한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최근 몇 년간 동물카페 전시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라쿤은 미국너구리과에 속하는 동물로 주로 북ㆍ중미 지역에서 서식한다. 이 업체는 위생 문제를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듯 카페 내부에 ‘라쿤에게 광견병ㆍ코로나 등에 대한 예방접종을 매년 하고 있다’고 적은 안내문구를 붙여 놓았다.

동물들이 있는 방에는 10명 넘는 손님들에 직원들까지 밀집해 있어 개와 라쿤이 쉴 만한 공간이 부족해 보였다. 손님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이었다. 라쿤은 대부분 비만 상태인 듯했고, 개들에게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라쿤 한 마리는 유리벽에 붙어 같은 자리를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정형행동(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였다. 라쿤은 야행성 동물이지만 카페의 영업시간인 밤 10시까지 밝은 조명 아래 생활해야 한다. 서울 시내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전문 사육사 박모씨는 “라쿤은 야행성 동물이어서 주로 밤에 움직이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조명이 밝게 비추는 야생동물카페의 환경은 사육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동물카페도 상황이 비슷하다. 라쿤카페 인근에 있는 미어캣 카페에는 미어캣 외에 왈라비, 라쿤, 사향고양이, 북극여우 등이 전시돼 있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왈라비 두 마리였다. 캥거루과에 속하는 왈라비는 한쪽 구석에 몰려 있는 탁자와 의자 아래에 숨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동행한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왈라비는 흙으로 된 땅바닥에서 두 발로 뛰어다니는 동물인데 여기처럼 미끄러운 바닥에선 잘 뛰지 못해 구석에 쓰러져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런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관절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캥거루과의 왈라비(왼쪽)와 미국너구리과의 라쿤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고경석 기자
서울 마포구의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캥거루과의 왈라비(왼쪽)와 미국너구리과의 라쿤이 뒤엉켜 싸우고 있다. 고경석 기자

하루종일 사람들의 손길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이 대표는 “왈라비 같은 초식동물은 늘 육식동물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시각ㆍ청각적 자극에 예민한데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해서 매우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내와 격리된 야외 베란다에는 북극여우, 은여우 등 서로 다른 여우 3마리가 전시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여우들은 함께 있으면 서열이 만들어져 괴롭히는 여우와 괴롭힘 당하는 여우가 생기기 때문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줘야 하는데 3마리가 함께 지내기엔 좁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곳에서 여우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자 직원이 급하게 뛰어 들어가 이들을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식환경이 다른 야생동물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충돌하는 일이 적지 않은 듯했다. 이날도 라쿤과 왈라비가 뒤엉켜 씨름하고 있었지만 직원들은 애써 말리려 하지 않았다. 손님들도 신기하다는 듯 지켜볼 따름이었다.

서로 어울리기 힘든 동물을 같은 공간에서 합사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육하는 동물카페가 적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웨어가 방문한 수도권ㆍ부산 소재 업소 12곳 가운데 8개 업소에선 작은 철제 우리 안에 동물이 방치돼 있었고 이들 중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체도 발견됐다. 동물이 아무 때나 물을 마실 수 있게 해놓은 곳은 12개 업소 중 5개뿐이었고, 4개 업소는 일부 동물에게만 물을 상시 제공하고 있었다. 꼬리 끝이 잘린 미어캣이나 잘못된 먹이 때문에 염증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는 왈라비도 발견됐다.

[저작권 한국일보]야생동물카페.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야생동물카페.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라쿤 수입 개체수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라쿤 수입 개체수 추이.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전국 동물원 유형별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전국 동물원 유형별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허술한 법적 규제로 우후죽순 느는 실내동물원

동물카페가 주로 젊은 층이나 외국인의 데이트 코스, 이색 체험 등으로 소비되는 반면 좀더 규모가 큰 실내동물원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 관람객의 주를 이룬다. 경기 부천시 소재 모 실내동물원은 수족관을 겸하는 곳으로 일반 동물카페와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규모가 컸다. 이름만 보면 수족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호랑이와 사자, 곰, 여우, 원숭이, 펭귄, 악어, 뱀, 스컹크, 족제비 등 포유류와 파충류, 조류 등이 뒤섞여 있는 사실상 동물원이다.

인공 장식과 밝은 조명 탓에 화사해 보일 수 있어도 야생동물에게 이 같은 인위적인 실내 공간이 편할 리 없다. 게다가 수백 종의 동물을 한정된 공간에 수용하다 보니 이들 각자에 주어진 공간이 매우 협소했다. 최소한의 생태적 습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시에만 신경 쓴 탓에 사자나 호랑이, 곰처럼 큰 동물은 물론 족제비, 기니피그 등 덩치가 작은 동물도 좁은 공간에서 생기를 잃은 채 엎드려 있거나 같은 자리만 천천히 오갈 뿐이었다.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도 쉽게 눈에 띄었다. 북극여우는 유리벽 좌우를 기계처럼 반복해서 오가고 있었는데 이 같은 행동은 1시간여 동안 계속됐다. 위생 문제도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수십 마리의 거북이가 있는 수조는 어린이들이 거북이를 직접 만질 수 있을 만큼 턱이 낮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 거북류는 대부분 살모넬라균을 보유하고 있어 접촉할 경우 인체에 감염될 확률이 높다. 또 토끼에게 잘게 자른 당근을 주던 어린이가 무의식적으로 이를 입에 대는 장면도 목격됐지만 이를 관리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야생동물카페 등에서 탈출하거나 유기된 야생동물이 늘어날수록 생태계가 교란될 위험도 커진다. 지난 10월 충남 천안의 한 야생동물카페에서 열린 창문 사이로 라쿤이 탈출하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미 영국 스페인 일본 등에선 라쿤을 외래침임종으로 지정해 수입ㆍ사육ㆍ판매를 제한하거나 개체 수 조절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등 관리를 강화한 상태다.

경기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북극여우가 우리 앞을 좌우로 왔다갔다 반복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다. 고경석 기자
경기 부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북극여우가 우리 앞을 좌우로 왔다갔다 반복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고 있다. 고경석 기자

인도주의 수의사 모임 휴메인벳 대표인 최태규 수의사는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야생동물에서 인간에게 넘어온 인수공통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다”며 “발병률이 높지는 않겠지만 야생동물에게서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야생동물을 직접 만지고 접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야생동물카페나 실내동물원이 우후죽순 늘어나는데도 관리ㆍ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를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현재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동물원 또는 수족관을 운영하려는 자는 기본적인 등록 요건만 갖추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한 뒤 운영할 수 있다. 사전에 사업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허가’ 절차는 없다. 게다가 야생동물카페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동물원이 아니어서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법을 따를 필요도 없고, 현행법상 애완동물에 속하는 개, 고양이, 토끼, 패럿, 기니피그, 햄스터 6종의 동물을 전시하지 않을 경우 동물보호법에 따라 영업장 시설 및 인력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정애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이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 금지와 야생동물 판매 허가제 도입 및 통신판매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야생동물카페가 늘면서 업체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효연 동물문화산업협회장은 “동물산업은 교육ㆍ정서적 가치가 크다”며 “인수공통질병이나 관람객이 동물에게 공격 당하는 것은 소수 사례에 불과한데 (동물원 허가제 등 법 개정은) 중소형 동물산업을 위축시키는 과잉 규제”라고 반발했다. 동물문화산업협회는 전국 130여개 동물원ㆍ수족관ㆍ동물카페 등 동물산업 종사자들의 단체다.

동물보호단체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동물권 행동 단체 카라의 신주은 활동가는 “돈벌이로 야생동물을 이용하고 스트레스 받는 동물을 보는 것에 무슨 교육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전문시설과 인력을 갖춘 동물원ㆍ수족관이 아닌 장소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며 “현행 동물원ㆍ수족관법에서 시행하는 동물원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고 정부가 업체들의 허가 기준대로 운영ㆍ관리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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