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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청문회] “유시민 작가, 청년 멘토인 줄 알았는데…”

입력
2019.12.17 04:40
수정
2019.12.17 07:5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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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존 정치인과 다를바 없는 유시민

어른들은 주류 정치판엔 안 끼워주면서

밀레니얼 앞에선 정치에 관심 가지라고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6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초청 특강에서 '언론의 역할과 시민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6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초청 특강에서 '언론의 역할과 시민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밀레니얼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통념이 있지만, 사실 누구보다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멋진 정치를 보여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멀리했을 뿐입니다. 구태 정치가 아닌 심지 굳은 정치를 밀레니얼은 원하니까요.

유시민(60) 작가가 한때 청년층의 높은 지지를 받았던 이유도 그렇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대선주자 지지율 상위권에 오르내릴 정도로 이목을 받고 있지만 스스로 권력을 멀리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유씨는 각종 베스트셀러 서적과 ‘썰전’ ‘알쓸신잡’ 등의 방송에서 지식 보따리상의 면모를 뽐내며 밀레니얼에게 인기스타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유씨의 최근 행보는 실망스럽습니다.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진행하면서 다른 정치인처럼 청년을 대상화하는 모습을 드러내며 밀레니얼의 분노지수를 높였습니다. 유씨도 결국 ‘청년 멘토’라기보다는 조금 특이한 정치인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유씨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줄기차게 청년을 외치지만 청년을 정치판 주류로 절대 끼워주지 않습니다. 586이라 불리는 기성세대의 자리 욕심에, 여의도에서 청년 정치인은 손에 꼽을 만큼 적습니다. 그러니 정치인이 밀레니얼 목소리를 대변해주지 못한다는 인식은 이제 편견이 아닌 상식이 돼버렸습니다. 기성세대의 외면에 청년들이 바로 설 수 없는 지금의 정치, 밀레니얼 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요.

똑똑하지만 날 대변해주지 못해

마이마이=유시민 작가 책을 좋아해. ‘역사의 역사’, ‘표현의 기술’과 같은 책을 보면서 배울 점이 있다고 느꼈거든.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과 정치신념이 멋있다고 느껴지기도 했어.

외거노비=마찬가지야. 지식인으로서 공감 가는 말들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 그때 유 작가는 호감 가는 정치인과 지식인 경계에 있었지.

날아라펭수(이하 날펭)=정치인 보면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유 작가는 다른 느낌이었어.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정치를 안 하겠다고 선언한 것 때문에 신뢰감이 생겼어. 그런데 요즘은 실망스러워. 요즘 행보는 기존 정치인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여의도불주먹(이하 불주먹)=내가 보기에 유 작가는 50~60대 엘리트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자기 신념이 너무 강해서, 거기에 대해 그 동안 회의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보여. 그러니 기존 정치인과 차별화가 안 되는 거지.

누헨지니=유시민은 20대 정치인이 아니잖아. 사실 30~50대 아이돌 같은 느낌이었지. 20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건 방송 덕분이었던 거고. 그 사람이 외치는 정치적 이념은 나이 든 세대에 가깝지. 기존 정치인과 차이가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

도쎄=맞아. 그래서 유시민 작가의 행보는 20대와는 동떨어져 있어. 아버지가 추천해줘서 책도 읽었고 똑똑하다고 느꼈는데, 거기까지인 것 같아. 평범한 기성세대 정치인이고, 날 대변해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정치 참여하려 해도 무력감만 느껴

배부른 소크라테스(이하 배테)=그런데 유시민 작가가 아니더라도 정치인들이 날 대변해준다는 느낌이 든 적이 있나. 난 거의 없었거든.

도쎄=한 번 있었어. 윤창호씨가 우리 학교 학생이라 교내에서 더 활발하게 청원이 퍼졌어. 나도 서명했지. 덕분에 윤창호법이 통과될 수 있었는데 그때는 정치의 순기능을 느꼈어.

마이마이=나 같은 경우엔 변화는 크게 느껴본 적 없고 좌절만 겪었어. 예전에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데 탈북 학생 정착지원과 관련해 입법활동을 꾸준히 했어. 법안을 관철시키려고 2년간 활동했고 마침내 국회에서 기자회견 할 기회를 얻었단 말이야. 그런데 정국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바로 취소됐어. 열심히 준비했는데 대학생 신분이니깐 이의 제기하는 것도 어렵고.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했지. 그런데 인턴기자가 되고 나니깐 명함만 있으면 국회를 출입할 수 있는 거야. 기분이 묘하더라고.

불주먹=정치라는 게 멀게 느껴지긴 해. 법안 통과 과정이 복잡하고, 주로 국회에서만 일이 벌어지니까 내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야. 무력감이 들기도 하고. 뉴스 보고 정치이슈에 관심을 가지긴 하지만, 직접 정치가 돌아가는 과정에 뛰어든 적은 없어.

누헨지니=결국 생활과 밀접해야 실감하는데 지금은 작은 사안까지 정치 논리로 바뀌는 게 문제인 것 같아. 나는 사학 전공이라서 예전에 국정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을 때 관심이 많았어. 사학과 교수부터 대학원생, 학부생 모두 다 분노했단 말이지. 그런데 정치인들이 ‘사학과 교수들 예전에 시위해서 교수된 사람들 아니냐. 그런 사람들이 교과서에 대해 뭘 안다고 말하냐’고 비난하는 거야. 학자들 이야기도 본인들 입맛에 맞는 의견만 가져오고. 사실 국정교과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어떤 교육을 받느냐의 문제라서 누구든 발언할 수 있는 사안인데, 그것까지 정치 논리로 해석해 버려. 사안에 직접 영향 받는 사람들이 발언해도 다 정치 논리로 귀결되니깐 정치가 멀어지고, 효능감도 사라지는 것 같아.

마이마이=예전에 교내 엘리베이터 설치 관련해서 시설 관리인들이 하는 말도 그렇더라고. 이건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보편적 인권 문제잖아. 그런데 이게 시의회로 가면 정치 담론이 되고, 동의하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으로 나눠 다시 정파 싸움을 해. 이런 일 때문에 짜증 나서 정치가 보기 싫을 때도 많아.

밈(meme)으로만 소비되는 정치

배테=그래서 정치 하면 떠오르는 게 법안 내용보다는 웃긴 사건들만 기억에 남아. 특히 우리 세대는 인터넷에 있는 ‘짤방’(편집된 짧은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것으로 정치를 많이 소비하잖아. 지난 총선만 해도 나는 누가 이겼는지는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유명 정치인 시리즈로 ‘언주야’ 하면서 떠돌았던 건 아직도 생각나.

불주먹=이젠 짤방이나 웃긴 영상을 만드는 게 ‘밈’(memeㆍ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을 모방해서 올린 그림이나 영상)’이 된 것 같아. 유행어나 짤방 효과도 나쁘지 않고.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해도 한 번 뜨면 그걸 계기로 정치를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되잖아. 그런 점은 좋은 것 같아. 하지만 이런 것에만 의존하면 안 될 것 같아. 우리가 관심 가질 부분은 너무 많은데 일부분만 부각되니깐.

날펭=난 걱정스럽기도 해. 이런 문화가 웃기긴 한데 하나씩 뜯어보면 되게 심각한 사안이잖아. 과거 김무성 옥새 파동도 정당 안에서 친박ㆍ비박 논란이 있었던 거고, 교육감 선거 나온 고승덕을 패러디한 콘텐츠들도 ‘아버지는 교육감 자질이 없다’는 딸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대해 다룬 거야. 그런데 정작 이런 중요한 부분은 잊혀지고 자극적 영상만 머리 속에 맴돌거든. 밈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일시적 효과는 있겠지만, 긍정적 영향을 퍼뜨리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지.

누헨지니=지금 세대가 진영 논리에 묶여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반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더 심해진 것 같아. 정치 문화를 밈으로 소비하는 게 이런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정치인을 추종하는 현상이 약해지기도 했고, 또 탈권위라는 이유로 정치인 별명도 모욕적으로 짓잖아. 정치인에 대한 선을 넘은 느낌이야.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일부 이해는 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아.

마이마이=이런 현상은 한편으론 밀레니얼이 정치에 대한 생각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읽혀. 정치인들이 먼저 우리를 소비했잖아. 청년 정치가 매력적이니깐 청년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고 해서 표심을 얻는 거잖아. 그런데 관련 공약 보면 일자리, 주택 문제가 10년 내내 거의 안 변했어. 이름표만 바꿔 내걸었을 뿐 사실 10년 동안 변한 게 없어. 그 밥에 그 나물이야. 그러니까 밀레니얼만의 방식으로 짤방을 소비하면서 ‘너희 지금 뭐 하는 거냐, 제대로 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 아닐까.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년들과 정치 이야기 한 다음날 바로 단식했잖아. 그것도 지금 사주팔자랑 합성해서 소비되고 있는데, ‘청년들한테 약속했던 일을 똑바로 하라’는 강력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외거노비=그런 부분에선 공감이 되긴 해. 문제는 짤방으로 소비되는 게 진지한 성찰이나 담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거야. 웃고 끝나는 거잖아. 그리고 이젠 국회 내부까지 이 문화가 퍼져서 자기들끼리 그 짤방을 보고 웃고 끝난단 말이야. 그런 거 보면 밈으로 소비되는 문화가 밈으로만 끝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돼.

도쎄=우리가 발언할 수 있는 자리가 아예 없으니까 밈 문화가 나오는 거 아닐까. 대의 민주주의라는 게 우리가 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대변하고, 우리 삶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 거잖아. 그런데 그런 게 아예 없잖아.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만 바쁘니까 비판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거지.

날펭=결국 밈 문화가 그 이상의 의미를 전하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해. 그래도 요즘은 과도기적 단계라서 시민단체가 토론회도 많이 열고, 시위 현장에 나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잖아.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다 보면 밈에서 끝나지 않고 제대로 된 정치가 가능해지겠지.

정치가 ‘우리’ 이야기가 되려면

누헨지니=활동도 중요하지만 정치를 주제로 자주 대화할 필요도 있어. 우린 정치 이야기를 너무 안 하잖아. 하더라도 거의 다 대통령이랑 국회의원 욕하고 끝난단 말이야. 그런데 이건 아무런 도움도 안돼. 좀더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

날펭=그런 이야기를 할 거면 정치에 대한 교육이 중요해. 우리는 학창 시절에 국영수만 배우고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 정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잖아. 대학생이 돼서야 정치에 관심 갖게 되는데, 정보를 접할 곳이 인터넷밖에 없는 거지. 온라인 공간은 극단적이니깐 과격한 언어만 받아들이고, 해결책이 나오기보다는 서로 물어뜯고 조롱만 하다가 끝나지.

마이마이=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대화하다가 하태경 의원이 언급됐어. 친구가 자기는 하 의원을 싫어했는데 시선이 바뀌었단 말을 하더라고. 그 이유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슈가 됐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더라고.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그리핀’ 구단의 카나비 선수의 불공정 계약을 해결했는데, 기존 정치권에선 관심이 없었거든. 그런데 하 의원은 게임에 관심 있는 20~30대 남성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 맞춰 해결책을 내놓은 거야. 입법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 특정 수요층을 파악하고 움직이니깐 지지도 얻고 필요한 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었던 ‘윈윈 전략’이었던 거지. 이처럼 밀레니얼 사이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인식하고 법안을 만드는 게 필요해. 정치인들이 청년문제에 이만큼 관심 있고 이 정도로 노력하고 있다는 걸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정치에 대한 관심이 훨씬 커질 것 같아.

불주먹=청년 정치인 숫자도 너무 적어. 정치권에서 청년 대변한다고 하는데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 250명 이상은 나이가 엄청 많아. 어쩌다 한 번 30~40대 정치인이 나와도 결국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청년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는데 청년 정치인이 소수니까 법이나 정책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는 거지. 형식적으로라도 자리를 만들어서 청년 이야기를 듣는 게 지금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아.

날펭=지난해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녹색당의 신지예씨 투표율이 예상외로 높았잖아. 난 이런 부분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주류 정치권에서 관심 갖지 않았던 사안들이 청년 정치인 등장과 함께 대두되는 거지. 페미니즘이나 환경문제처럼 비주류였던 주제들을 대변하는 정당들이 늘어나면 청년들의 정치 논의도 늘어날 거라고 봐.

도쎄=동의해. 어떤 당이 이길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비주류 사안도 당당히 이야기하는 정당들이 지지를 얻는 것도 중요해. 정의당, 녹색당처럼 밀레니얼 세대가 관심 있는 특정 사안에 집중하면 청년들을 다시 정치로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거야.

정리=정해주 인턴기자

참여=김민준, 박형기, 이미령, 이주현, 전혜원, 차승윤 인턴기자

※ 밀레니얼들이 열광하거나 주목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방담 형식으로 소개(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밀레니얼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숙제로 ‘자소서’를 써 왔지만, 사실 ‘세대소개서’를 쓸 때는 난감합니다. 세대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인물’, 화제가 되는 ‘인물’을 통해 젊은 개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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