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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스토리] 신약개발ㆍ환자치료 두 마리 토끼 좇는 임상시험

입력
2019.12.09 04:40
수정
2019.12.09 14:5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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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임상시험

동물시험 등 끝낸 신약, 사람에 안전ㆍ효과성 확인

年 10만여명 참여, 주로 암환자… 성공률 10%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에서 임상시험 참여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제공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에서 임상시험 참여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제공

지난해 11월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은 강모(32)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림프종 신약개발과 관련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다. 림프종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방사선치료와 항암 화학요법 치료를 받았지만 골수, 간 등에 퍼져 있는 림프종을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교수는 “길어야 2년밖에 생존을 못 하니 마지막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해보자”며 강씨를 설득했다. 무모한 실험 대상이 떠올라 두려웠고, 가족의 반대도 심했지만 강씨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다행히 시험은 성공적이었다. 림프는 물론 골수, 간 등에 퍼져 있던 암세포도 사라졌다. 강씨는 “암 환자이지만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며 “임상시험을 권유한 교수님께 감사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은 연구자가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효과성을 확인하는 시험(연구)이다. 비록 환자를 치료하는 단계가 아니며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환자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이유는 ‘치료기회와 효과’ 때문이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20~70대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시험 인식도 조사’(2017년) 결과, 응답자의 67.6%가 ‘새로운 신약치료를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임상시험에 참여한다고 답했다. ‘기존 치료보다 효과가 더 좋을 것 같아서’라고 응답한 비율도 35.9%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임상시험 참여 대상자는 2015년 10만5,037명, 2016년 11만3,769명, 2017년 10만4,907명 등으로 매년 10만명을 상회한다.

◇기존치료 효과 없는 암 환자가 주로 참여

치료기회와 효과를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들은 주로 암 환자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이들의 경우는 보통 둘로 나뉜다. 먼저 기존 치료를 모두 받았지만 치료효과를 보지 못해 치료중단 상태에 놓인 암 환자들로, 말기 암 환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 기존 치료법으로 치료받는 암 환자라도 개발되고 있는 신약의 효과가 기존 치료법보다 우월하다고 판단돼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경우다. 김인호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 수술 후 재발위험을 낮추기 위해 항암치료를 하지만 항암치료를 해도 상당수 암 환자들은 재발을 경험한다”며 “신약이 항암치료보다 더 나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판단되면 환자들에게 임상시험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2016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담도암 4기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던 정모(55)씨는 2017년 1월 주치의 권유로 면역항암제 임상시험에 참여해 치료효과를 봤다. 정씨는 “항암제를 투여한 후 종양의 40%가 감소됐고, 부작용도 없어 만족하고 있다”며 “제3상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아 일반 암 환자들은 사용할 수 없는 약인데 임상시험에 참가한 덕분에 약을 투여받을 수 있어 행운”이라고 말했다. 유창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새로운 진단 혹은 치료법이 임상연구를 통해 증명돼도 실제 환자 진료에 적용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것은 본인의 치료 성과를 높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상연구 연구병상 모습.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제공
임상연구 연구병상 모습.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 제공

물론 모든 암 환자들이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분명 한계도 있다.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임상시험은 동물시험 등 다양한 시험을 통해 사람에게 사용했을 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실시되지만, 사전에 효과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신약개발 성공률은 10%에 불과하다.

암 환자라고 해서 모두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임상시험 참여에 동의를 해도 해당 연구에 적합한지 여부를 가리는 ‘스크리닝’(screening) 절차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3년 전 신장암으로 우측 신장 절제술을 받은 김모(52)씨는 올해 여름 암이 재발해 신약 임상시험 참여를 희망했지만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임상센터 측에서는 한쪽 신장이 없어 김씨의 신장기능이 정상인보다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약제가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알 수 없다”라며 임상시험에서 배제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임상시험센터에서 근무하는 임상시험코디네이터 A씨는 “환자가 임상시험 참여에 동의하면 혈액 및 방사선검사, 환자의 과거 질환 등을 검토해 참여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며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힘겹게 모든 검사를 받은 환자에게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을 전할 때가 가장 괴롭다”고 말했다. 김인호 교수는 “임상시험은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망한 치료라 하더라도 안전할지 우려가 되는 환자들이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부작용ㆍ효과 없어 임상시험 중단도

검사를 통과해 임상시험에 참여해도 임상시험 도중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 등으로 인해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시험약을 대상자에게 투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임상시험 참여가 중단될 수 있다.

2015년 전립선암으로 부친을 잃은 이모(43)씨는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씨의 부친은 2013년 주치의 권유로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신약을 투입한 결과 종양크기가 60% 정도 작아지는 등 효과를 봤지만 임상시험 참여 1년 만인 2014년 약물 부작용으로 임상시험을 포기했다. 이씨는 “종양크기가 작아진 것을 보고 기뻐하던 아버지를 잊을 수 없다”며 “임상치료 중단 후 1년 만에 암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종양내과)은 “임상시험을 통해 신약이 기존 치료법보다 우수하다는 입증을 하지 못하면 환자들에게 설명한 후 동의를 얻어 임상시험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암 진행속도가 빨라 임상시험보다 신속한 치료가 필요한데 무조건 임상시험을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환자도 있다”라며 “임상시험 참여만 기다리다 치료시기를 놓쳐 상태가 악화할 수 있어 담당의사와 면밀히 상의해 치료방향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시험을 담당하는 임상의들은 과거보다 임상시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임상시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시지 않았다고 말한다. 장인진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임상약리학과)은 “임상시험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항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라 시험에 참여한 환자에게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임상시험은 환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검토과정을 거쳐 진행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장 센터장은 “자신이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른 환자들이 자신의 희생으로 치료받을 길을 발견한다는 마음을 갖고 임상시험에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병철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환자에게 임상시험을 제안하면 ‘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하냐’며 종종 화를 냈지만 지금은 오히려 환자나 보호자들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임상시험 정보를 의사에 보여줄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계에서도 시대변화에 맞춰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임상시험 정보를 환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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