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에서 인류 역사상 첫 블랙홀 사진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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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에서 인류 역사상 첫 블랙홀 사진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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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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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망원경(SPT) 뒤로 나타난 오로라의 모습. 시공사 제공

지난 4월, 인류 역사상 처음 공개된 사진 한 장은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까만 배경에 흐리지만 붉게 빛나는 하나의 고리, 블랙홀이었다. 행성과 빛을 모두 먹어 치워 그 형태가 불분명했던 ‘우주 무법자’의 모습을 포착해 낸 건 지평선망원경(EHT) 프로젝트 팀.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200여명의 연구진이 모여 꾸린 단체다. 블랙홀 정체 공개에 이어 국내 연구계 안팎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한 건 EHT에 한국 연구진 8명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소속 연구원부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서울대, 연세대 등에서 세계적 프로젝트 성공에 힘을 보탰다.

‘남극점에서 본 우주’는 EHT에 참여한 김준한 미국 애리조나대 박사, 또 다른 실험 천문학자이자 김준한 박사와 함께 남극점을 연구한 강재환(미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씨의 경험을 담은 책이다. 지구에서 가장 넓은 불모지이자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에 달하는 남극점에 5년간 7번이나 발을 디딘 이야기부터 블랙홀을 찾아 나선 김준한 박사와 EHT의 행보까지, 일반인에겐 생소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남극점의 암흑영역 실험실. 암흑영역에는 남극점의 과학 연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천체물리 연구 시설이 분포돼 있다. 보통 암흑이라 하면 깜깜한 밤의 어둠을 떠올리지만, 이곳은 남극점망원경(SPT) 같은 전파 망원경이 하늘을 관측할 수 있도록 모든 파장의 빛을 포함하는 전자기적 어둠이 생성되는 곳이다. 시공사 제공

우선 남극점이란 어떤 곳인가. 대륙의 한가운데, 지구 자전축이 지나는 남위 90도다. 해가 종일 떠 있는 남극권이 남위 66.5도부터라고 하니, 남극점은 남극권의 경계 안에 들어서서도 한참을 더 내려가야 닿는다고 한다. 워낙 날씨가 혹독한 탓에 기온이 영하 40도 위로 올라가는 약 3개월 반의 기간에 전 세계 연구원들이 이곳을 찾는다.

남극점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남극점에 다다른 천문학자들은 망원경 등 각종 장비를 큰 풍선에 매달아 높은 고도까지 띄워 올리기로 했다. 이런 과감한 실험이 가능한 건 남극 대륙에서는 대기가 남극점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때문이다. 열흘 정도 지나면 풍선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남극점에서 연구하는 연구원들 사이에선 매년 크리스마스에 독특한 ‘세계 한 바퀴 경주’도 열린다. 남위 90도인 남극점에선 시간대가 모두 한 점에서 만나기에 남극점 주변을 돌면 전 세계를 도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는 원리를 이용한 일종의 놀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대원들은 독특한 의상을 입고 속속 출발선으로 모여드는데, 남극점에서 시작해 기지 주위의 연구 시설을 따라 약 4㎞를 뛴다.

올해 4월 발표된 최초의 블랙홀 사진. 'M87' 은하 가운데의 블랙홀이다. 시공사 제공

남극점과 블랙홀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EHT 연구진이 블랙홀 관찰을 위해 세계 곳곳에 설치한 8개 전파망원경 중 1개가 설치된 곳이 남극이다. 연구진은 남극과 멕시코, 칠레 등에 설치한 8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구경이 지구만한 거대 가상 망원경을 만들었다. 블랙홀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파를 동시에 관찰해 해상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다. 2017년 4월, 은하계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 블랙홀 궁수자리A*(Sgr A*)와 M87을 관찰해 영상을 찍었고, 2년 뒤 세상에 공개(남극 망원경 데이터 전달 문제로 지연)됐다. 저자 김준한 박사는 “이론 예측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다르지 않아 더 놀라웠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저자들을 포함한 다수 천문학자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검증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밝혀내지 못한 모든 미지의 영역은 모든 인류의 마음에 무거운 짐으로 남는다!” 1911년 남극점을 인류 최초로 탐험한 로알 아문센의 말이자, 많은 천문학자가 가슴에 새기고 사는 문구라고 한다.

남극점에서 본 우주

김준한ㆍ강재환 지음

시공사 발행ㆍ320쪽ㆍ1만6,000원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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