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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소련의 아프간 철수 이후가 그랬듯… 미군 떠난 뒤 아프간 혼란도 커질까

입력
2019.02.10 14:52
수정
2019.02.10 19: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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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15일 소련 병사들이 아무다리야강 '우정의 다리'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9년 2월 15일 소련 병사들이 아무다리야강 '우정의 다리'를 통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1989년 2월 15일 옛 소비에트연방 소속 공화국 우즈베키스탄과 남쪽 이웃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을 가로지르는 아무다리야강. 아프간에 주둔했던 소련군 부대가 이곳 ‘우정의 다리’를 건너 아프간 영토를 빠져나갔다. 행렬 끄트머리에 있던 마지막 장갑차가 다리 중간 지점에 이르자, 소련 제40군 사령관 보리스 그로모프 중장은 장갑차에서 뛰어내린 뒤 걸어서 고국 땅을 밟았다.

“내 뒤에는 단 한 명의 소련 병사도 남아있지 않다. 우리의 9년간 주둔은 이걸로 끝이다.” 그로모프 중장은 다리 맞은편에서 소련의 한 방송매체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10대 아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아 든 그는 아프간 쪽을 향해선 단 1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침공에 대한 사과도, 상대국을 향한 존중의 표시도 없었다. 냉전 시절 소련이 치른 최후의 전쟁, 1차 아프간 전쟁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소련의 베트남전’으로 불릴 만큼 실패한 전쟁으로 기억되는 아프간전은 1979년 12월 소련군의 침공으로 시작됐다. 중동 및 인도양으로 진출하려는 소련에게 아프간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했다. 1978년 4월 쿠데타로 집권한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가 친소정권을 수립했지만, 5개월 후 하피줄라 아민이 타라키를 살해하고 정권을 잡자 양국의 관계는 악화하기 시작했다. 아프간에 들여온 공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하자, 소련은 무력 침공을 택했다.

전쟁 초기는 소련의 뜻대로 흘러갔다.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들은 아민을 제거하고 바브락 카르말을 내세워 ‘친소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했다. 이후 소련군은 아프간 정규군과 손을 잡고 향촌지역에 기반을 둔 반군을 겨냥한 소탕 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소련군은 연 인원 최대 13만5,000명, 9년간 총 62만명의 병력을 투입하고도 ‘무자헤딘’이라 불리는 게릴라부대를 진압하는 데 실패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뿐 아니라,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은 공공시설을 파괴한 것은 물론, 소련군을 상대로도 테러를 가했다. 게릴라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소련군은 무자헤딘을 당해내지 못했고, 비용에 비해 성과가 없는 전쟁을 지속할 수도 없었다. 결국 소련은 1987년 철군 의사를 밝힌 뒤, 1989년 2월 그로모프 중장을 마지막으로 아프간 땅을 떠났다.

하지만 소련군 철수가 아프간의 평화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 이후 아프간은 무자헤딘 군벌들 간의 내전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내전은 2001년,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뒤에야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곧이어 9ㆍ11 테러가 터졌고, 이번엔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했다.

이제 18년 만에 미군 철수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해외 주둔 미군 철수를 추진하면서다. 최근엔 ‘아프간 주둔 미군 등 외국군은 18개월 안에 철수한다’는 평화협정 초안에 미국과 탈레반 양측이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소련군 철수 이후가 그랬듯, 미군 철수 뒤 아프간 내 혼란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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