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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1년] 피해자 이름 입력하면 ‘성폭행’ 연관검색… 2차 가해 버젓이

입력
2019.01.29 04:40
수정
2019.01.29 07:5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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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몸매’‘성폭행’ 단어 자동완성

피해자가 직접 요청했을 때만 자체 심의 거쳐 삭제 가능

네이버 검색창에 '심석희 선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몸매'가 자동완성된다. 구글 검색창에 '양예원'을 입력하면 '양예원 사진모음', '양예원 사진 못보신 분'등이 함께 검색된다. 각 웹사이트 캡쳐
네이버 검색창에 '심석희 선수'의 이름을 검색하면 '몸매'가 자동완성된다. 구글 검색창에 '양예원'을 입력하면 '양예원 사진모음', '양예원 사진 못보신 분'등이 함께 검색된다. 각 웹사이트 캡쳐

김모(19)양은 최근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심석희 선수의 이름을 검색하다 충격을 받았다. 심 선수 이름을 입력하자마자 ‘성폭행’이나 ‘몸매’ 등의 단어가 자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지난해 5월 비공개 스튜디오 촬영회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한 양예원씨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유출 사진 수위’ 등 낯 뜨거운 연관검색어가 양씨 이름 뒤에 따라붙었다.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고백을 신호탄으로 사회 각계에 ‘미투 혁명’이 확산된 지 1년이 됐지만 아직도 인터넷 공간에는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잠복하고 있다. 특히 하루에도 수백 만 명의 네티즌들이 이용하는 포털 검색창이 또 다른 가해의 현장이 되고 있다. 대학생 정민하(25)씨는 “당사자나 가족이 검색을 했을 때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겠냐”며 “미투가 터질 때마다 대중의 관심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외모’로만 향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미투 피해자들이 온라인 검색을 통해 2차 피해에 노출되는 현상은 포털의 자동완성검색어 기능이 부추기고 있다. ‘양예원’ 이름을 치면 ‘양예원 사진 모음’ ‘양예원 사진 못 보신 분’ 등 양씨가 찍힌 피해 촬영물을 찾는 검색어가 자동으로 완성된다. 대학생 신모(26)씨는 “자동완성검색어가 줄줄이 뜨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눌러보게 되더라”며 “대형 포털의 검색창이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는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포털마다 방법에 차이는 있어도 많이 검색한 순으로 검색어가 완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히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성폭력 피해를 범죄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가십으로 소비하고 있는 대중의 행태가 자동완성검색 기능에 투영돼 있을 뿐이다. 정보탐색 시간을 줄이기 위해 포털이 제공하는 자동완성검색어 서비스가 미투 2차 피해의 도구로 전락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포털의 자동완성검색 기능이 악용되는 현상에 대해 사회 전체가 거대한 ‘가해자 연대’가 됐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자동완성으로 뜨는 단어들 중 대부분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할퀴는 말들”이라며 “많은 이들이 검색하니까 노출이 되고, 노출이 되니 또 더 많은 사람들이 검색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포털의 관리는 소극적이다.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 사이트들은 노골적인 선정성을 띠는 단어가 아닌 이상 필터링을 하고 있지 않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심석희 선수를 검색할 때 완성되는 ‘몸매’와 같은 단어는 선정성 결과로 판단하기 다소 애매한 상황”이라며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요청이 들어오면 심의를 거쳐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불법촬영 피해자의 경우에도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음란물 제목이 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 포털 측에 삭제 요청을 보냈는데, 아예 회신 자체가 없거나 뚜렷한 근거 없이 ‘조치가 어렵다’고 답한 경우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관련 규정의 미비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의 정책규정에 따르면, 피해자 본인의 신고가 이뤄져야만 포털 자체 심의를 거쳐 연관 검색어 삭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피해자 본인이 직접 나서 신고를 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자동완성검색 기능으로 인한 미투 2차 가해에 대해서는 포털이 보다 강력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학생 윤은별(24)씨는 “주변에서 미투 피해자의 얼굴이나 몸매 등을 들먹이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광경을 종종 봤는데, 그런 인식이 온라인 공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며 “이는 포털 차원에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김지영 교수도 “성범죄 피해자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검색어는 키워드 자체가 얼마나 선정적인지의 여부를 떠나 반드시 필터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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