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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의 어제] 사막의 폭풍 작전 28년 만에... 고개 숙인 ‘슈퍼파워’

입력
2019.01.13 15:36
수정
2019.01.13 23:4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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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의 F-16A, F-15C, F-15E 전투기가 1991년 1월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퇴각하던 이라크군이 불을 질러놓은 쿠웨이트 유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 공군 홈페이지 캡처
미국 공군의 F-16A, F-15C, F-15E 전투기가 1991년 1월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퇴각하던 이라크군이 불을 질러놓은 쿠웨이트 유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 공군 홈페이지 캡처

“우리와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할 기회다.”

조지 H. 부시 미국 대통령이 1991년 1월17일 TV 앞에 섰다.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향해 폭격을 지시하며 탈냉전 이후 미국의 첫 군사행동을 알렸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었다. 페르시아만에서 불을 뿜은 순항미사일 토마호크 수백 발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주요 군사시설을 도려내고, 스텔스폭격기 F-117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이라크의 방공망을 처참하게 무력화시켰다. 무려 10만여회의 공중폭격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전 세계 시청자들은 마치 비디오게임인 양 TV화면을 통해 미국의 가공할 힘을 생생하게 지켜보며 전율을 느꼈다. 압도적 화력으로 어둠 속의 악을 처단하는 슈퍼파워에 맞설 적수는 지구상에 없었다.

미국이 깃발을 들자 33개국이 동참했다. 68만명 병력이 모였다. 유엔도 판을 깔아줬다. 6ㆍ25전쟁 이후 처음으로 1990년 11월 무력 사용을 승인했다. 그렇게 38일간 공습으로 이라크는 초토화됐다. 그리고 지상전으로 상황이 바뀐 뒤 불과 100시간 만에 전쟁은 끝났다. 이란과의 오랜 전쟁으로 단련됐다던 100만 이라크 정예군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망자 이라크 15만명, 연합군 125명. 비교가 무의미한 일방적 승리였다.

그렇게 미국이 다시 전장을 호령했다. 초강대국, 단극구조, 유일 패권. 미국을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베트남전의 쓰라린 소모전을 우려했지만 첨단 기술이 전쟁의 양상을 바꿨다. 불과 1년여 전인 1989년 12월 몰타선언을 통해 “냉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고 선언한 부시 대통령은 그의 바람대로 새로운 질서의 주역이 됐다.

승리에 도취해 너무 빨리 발을 뺀 게 화근이었다. 후세인 정권은 다시 발호했고, 미국은 2003년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명분으로 이라크에 다시 개입한다. 하지만 1991년과 달리 프랑스, 러시아가 등을 돌린 데다 전 세계 반전운동이 고조되면서 미국은 신망을 잃어갔다.

앞서 2001년 테러집단을 응징하고자 아프간에 수만 명의 병력을 투입한 미국은 중동의 전선이 넓어지면서 서서히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든다. 이라크는 안정은커녕 수니-시아파 간 갈등이 고조되고, 아랍의 봄과 난민 문제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운 이슬람국가(IS)가 최대 위협으로 부각되면서 미국은 중동 분쟁에 완전히 발목이 잡히게 됐다.

급기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갑작스레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했다. 2017년 4월 공습을 시작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지 1년8개월 만이다. 한때 미국의 리더십과 힘의 우위에 열광했던 국제사회는 꼬일 대로 꼬인 중동을 내팽개치고 제 잇속만 챙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냉소를 보내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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