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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 속 허송세월… 막판에 1분당 1193억 날림 심사

입력
2018.12.12 04:40
수정
2018.12.12 07:4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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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허송세월하다 벼락치기로 끝낸 심사 

 핵심 절차인 전체회의 11번 개최 

 실제 논의 기간은 65시간 불과 

 밀실 소소위 심사는 8일이나 써 

국회 예산결산특위 파행 일지 및 숫자로 보는 예산심사 그래픽=강준구 기자
국회 예산결산특위 파행 일지 및 숫자로 보는 예산심사 그래픽=강준구 기자

국회의 가장 큰 권한이자 의무인 예산안 심사가 해마다 밀실ㆍ담합ㆍ늑장 처리로 얼룩지는 데는 원칙과 규정을 무시한 정치권의 관행 탓이 가장 크다. 정부가 2019년도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9월 3일부터 수정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12월 8일까지 97일간의 기록을 살펴보면 민심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밀실에선 자신들의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된 여야 정치권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정치권의 그릇된 예산 심사 관행을 깨려면 앞에서는 입바른 소리만 하는 여야의 ‘선의’에만 맡겨둬서 될 게 아니라, 예산 심사 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크다.

여야 정치권은 100일간 열린 정기국회 시간을 사실상 허송세월 했다. 9월 3일 정부가 2019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예산결산특위는 11월 1일 새해 예산안을 설명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있기까지 60일을 그냥 흘려 보냈다.

남은 30일 동안 470조원 규모의 슈퍼 예산 심사를 진행하다 보니 사실상 날림 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예산 심사의 핵심인 예결특위 전체회의부터 부실했다. 모두 11차례 열렸지만, 실제 예산안을 논의한 기간은 엿새에 불과하다. 예결특위 여야 간사 선임을 위한 1차 회의와 예산안조정소위 구성을 위한 10차 회의 등을 제외하면 실제 예산 심사에 쏟은 시간은 5차례 회의에 만 2일 17시간 36분(65시간 36분)에 불과했다. 1분당 1,193억원의 예산을 심사한 꼴이다.

그마저도 파행으로 얼룩졌다. 사실상 예결특위 첫 심사가 열린 3차 회의부터 여야는 신경전에 열을 올렸다. 회의 초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경기 침체’ 발언을 언급하며 “경제는 심리인데,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예결특위 한국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이 “명예훼손”이라고 문제 삼으면서 파행을 빚었다. 7차 회의에서도 장 의원이 일자리, 남북협력 등 16가지 사업예산과 관련한 정부의 자료제출이 미비하다고 문제 삼으면서 회의가 파행되는 등 크고 작은 충돌이 반복됐다. 본격적인 예산안 ‘딜’(협상)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여야의 신경전 성격이 적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이 먼데도 여야는 예산소위 구성 인원 등을 놓고 닷새간 줄다리기를 벌이며 시간을 흘려 보냈다.

2019년도 예산안 심사 일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2019년도 예산안 심사 일지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러다 보니 지난달 21일 출범한 예산소위 논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예년에는 2주가량 주어졌던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8일간 이뤄진 예산소위 심사는 간신히 감액 심사만 마친 채 증액 심사는 해보지도 못했다. 그마저도 4조원 규모 세수결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야당이 심사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이틀을 날려 먹었다. 한부모가정 아이돌봄 예산 전액삭감을 주장한 송언석 의원을 향해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비정하다”고 지적한 게 파행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9일간 밤낮없이 진행됐다는 예산소위의 실질적인 심사 기간은 만 3일 23시간 52분에 그쳤다. 1분당 816억원의 예산을 심사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당 고위 관계자는 “원래 15일 정도에는 시작해서 감액 심사에 이어 증액 심사까지 2주 정도 진행해야 하는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며 “(소(小)소위에서) 간신히 하루 정도 증액 사업에 대한 조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밀실 심사의 대명사로 불리는 소소위 심사는 어느 때보다 길어졌다. 예결특위 권한이 정지되는 12월 1일 0시 이후부터 예산안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8일 오전 4시 27분까지 만 7일이 넘는 시간이 주어졌다.

예산안 심사가 갈수록 부실해지는 데는 국회가 오랜 관행에 기대 예산 심사를 하는 탓이 크다. 여야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면서 예산안 심사의 내실을 기하도록 했다. 정부의 예산안 제출 시한을 당겨, 1973년 이후 60일로 줄었던 예산 심사 기간을 90일로 늘렸고, 90일간의 예산안 심사기간을 넘기면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는 조항도 마련해 강제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제도만 바뀌었을 뿐 선진화법이 적용된 2014년 이후에도 여야의 행태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당장 국회법상 정기국회 전 30일 이내에 실시해야 하는 국정감사 일정을 번번히 정기국회 회기 내 잡고 있다. 정부ㆍ여당 또한 예산안 자동부의 조항이라는 믿을 만한 언덕에 기대 예산 심사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예산 처리 시점 또한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국회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국회법에 따른 일정만 준수해도 지금과 같은 졸속 예산 심사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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