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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슈] ‘심신미약’ 도대체 뭐길래? 강서구 PC방 사건으로 돌아본 논란들

입력
2018.10.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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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슈]는 ‘모아보는 이슈’의 준말로, 한국일보가 화제가 된 뉴스의 발자취를 짚어보는 기사입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씨가 22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서재훈 기자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성수씨가 22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서재훈 기자

심신미약이란 말이 다시금 최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4일 PC방 아르바이트생인 신모(21)씨가 손님에게 얼굴 등을 잔인하게 난도질 당해 살해된 일명 ‘강서구 PC방 사건’ 때문인데요. 특히 피의자인 김성수(29)씨가 우울증 진단서를 경찰에 냈다는 소식에 17일 청와대 게시판에는 “심신미약을 이유로 강서구 PC방 사건의 처벌이 경감되어선 안 된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왔습니다. 현재 이 청원은 100만건이 넘는 동의(25일 오후 3시 현재 107만)를 얻어, 국민청원 중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법에 따르면 심신장애자들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책임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국의 법 체계 아래서 모든 심신장애자들은 처벌을 피해 갔을까요? 심신장애 및 심신미약의 기준은 무엇이며 어디까지 처벌이 가능할까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뒤흔든 심신미약 관련 판례들을 통해 알아봅니다.

 ◇ 심신미약이란?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 김모씨가 2016년 5월 24일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범행 현장을 검증하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 배우한기자
강남역 살인 사건 피의자 김모씨가 2016년 5월 24일 서울 강남역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범행 현장을 검증하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 배우한기자

형법 10조 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정해놓고 있습니다. 보통 짧게 ‘심신상실’ 이라고 표현되는 구절입니다.

1항이 적용된 최근의 사례가 2015년 두 살짜리 아기를 3층에서 던져 숨지게 한 19세 발달장애인 이모군입니다. 이모군은 이런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물 변별능력이 전무하다는 판단 아래 무죄를 받는 사례는 그다지 흔치 않습니다.

이보다 더 많은 것이 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는 규정, 즉 ‘심신미약’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6년 강남역 근처 화장실에서 한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입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았던 피의자 김모씨에게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김씨가 다음날 옷에 묻은 피도 지우지 않은 채 식칼을 갖고 출근한 점 등을 볼 때 범행이 심신미약 상태에서 행해졌다고 판단해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 술 마시면 봐준다? ‘주취 감경’ 적용의 모순 

'조두순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오른쪽)가 2012년 여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와 그 해 12월 24일 만나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조두순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오른쪽)가 2012년 여주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행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와 그 해 12월 24일 만나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배우한기자

형사처벌에서의 ‘심신미약 인정’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인의 눈엔 충분히 사물을 분별할 능력이 있어 보이는데도 형이 감경되는 사례들 때문입니다.

‘주취 감경’이 대표적입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형을 낮춰주는 것으로 2008년 ‘조두순 사건’이 그렇습니다. 8세 여아를 성폭행하고 장기를 훼손한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재판부는 조씨가 술에 취해 있었단 이유로 감형해 징역 12년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음주운전은 강력하게 처벌하면서 음주폭력은 감형해주는 것은 모순적인 행태’라며 반대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현행법상 주취 감경이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다만 주취 상태의 범죄를 형법 10조 2항에 근거해 심신미약으로 보고 감형을 해주는 판례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입니다.

조두순 사건이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면서 국회는 성범죄에 한해 술을 마신 사람의 감형을 제한하는 특별법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휘두르거나 자녀를 학대하면 심신미약 감형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음주폭력 방지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 미쳤다고 주장하면 무죄? 다 봐주는 건 아니다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주범 김양과 공범 박양이 2017년 11월 22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첫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주범 김양과 공범 박양이 2017년 11월 22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첫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형을 줄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2017년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주범 김모양에게 1심과 2심 모두 미성년자 법정최고형인 징역 20년이 선고됐습니다.

김양 측은 자폐성 정신질환의 하나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등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범죄를 저지른 원인이라는 개연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그 자체로는 감형 사유가 되지 않고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라는 게 인정돼야 감형을 할 수 있습니다.

2014년 미성년 조카를 강간하려다 살해한 오모씨에 대해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됐습니다. 재판부는 만취 상태였던 오씨의 심신미약 주장에 대해 “심신미약 상태였음이 인정된다”면서도 주취 감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 형법 10조는 악법? 왜 필요할까? 

형법 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분별할 수 없는 자의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형법 10조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분별할 수 없는 자의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술 취한 사람에게 관대한 형법 10조는 과연 필요한 법일까요. 형법 10조는 근대 형사법의 대원칙인 ‘책임주의’에 근거합니다.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자, 즉 죄를 짓고도 그게 죄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법 규범에 맞춰 행동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처벌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는 것입니다. 14세 미만의 형사 미성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 법이 없다면 실제 사리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일반인과 똑같은 처벌을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서구 PC방 사건에서 피의자가 방어수단으로 ‘우울증’을 내세우면서, 다른 쪽에서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이 커질 것을 우려하기도 합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21일 입장문을 내고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라며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하여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추어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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