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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백밴드하다... 남ㆍ북 잇는 ‘소리 디자이너’ 윤상

입력
2018.04.03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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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예술단 음악감독 윤상

정훈희ㆍ김현식ㆍ아이유ㆍ러블리즈…

트로트서 K팝까지 30여년

세대ㆍ장르 넘어서며 곡 만들어

남북 합동무대의 적임자로 낙점

조용필 밴드와 삼지연관현악단

오늘 협연의 편곡 작업도 맡아

윤상이 북한에서 열린 공연 ‘봄이 온다’ 음악감독을 맡아 지난달 31일 평양으로 출국하고 있다(왼쪽 사진). 윤상은 1990년대엔 가수 김민우(오른쪽 맨 위 사진) 등의 곡을 쓰며 발라드 작곡가, 2000년대엔 전자 음악가(오른쪽 가운데 사진)로 활약했다. 2010년대에 들어선 전자음악 작곡팀 원피스를 꾸려 아이돌그룹 인피니트 등의 곡을 썼다. 연합뉴스ㆍ뉴시스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상이 북한에서 열린 공연 ‘봄이 온다’ 음악감독을 맡아 지난달 31일 평양으로 출국하고 있다(왼쪽 사진). 윤상은 1990년대엔 가수 김민우(오른쪽 맨 위 사진) 등의 곡을 쓰며 발라드 작곡가, 2000년대엔 전자 음악가(오른쪽 가운데 사진)로 활약했다. 2010년대에 들어선 전자음악 작곡팀 원피스를 꾸려 아이돌그룹 인피니트 등의 곡을 썼다. 연합뉴스ㆍ뉴시스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선생님, 노래 한 곡 불러주실 수 있을까요?” 가수 정훈희는 2002년 윤상(50)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친분도 없는 데 곡 작업을 부탁해 와서다. 정훈희는 곡을 듣고선 또 한 번 놀랐다. 정훈희는 2일 한국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윤)상이가 내 노래 중 ‘꽃밭에서’와 ‘무인도’ 같은 곡을 들어봤을 텐데 아주 어두운 곡을 불러달라고 해 놀랐다”고 옛일을 떠올렸다. 정훈희는 1960~70년대 같이 작업했던 작곡가에게서도 ‘너한테 슬픈 곡 주면 ‘내일은 다시 해가 뜬다’ 분위기가 된다’고 해 애달픈 노래를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했다. 그런데 정훈희 데뷔 20여 년 뒤에야 활동한 가수가 어두운 곡을 불러달라고 해 신기했다는 설명이었다.

윤상이 정훈희에게 가창을 부탁한 곡은 윤상 4집 ‘이사’(2002)에 실린 ‘소월에게 묻기를’이다. 피아노 한 대의 연주를 첼로의 선율이 흐느끼듯 따라간다.

“상이가 슬픈 곡을 부르고 싶었던 내 소원을 풀어줬어요. 가수에 어떤 음악이 어울릴지를 잘 파악하는 것 같아요. (강)수지를 봐요, 어울리는 곡 많이 줬잖아요.”

정훈희부터 러블리즈까지… 세대 아우른 프로듀서

정훈희, 김현식(1958~1990ㆍ’여름밤의 꿈’)부터 강수지(‘보라빛 향기’), 김민우(‘입영 열차 안에서’), 동방신기(‘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 아이유(‘나만 몰랐던 이야기’), 러블리즈(‘아츄’)까지. “윤상은 가요계 살아 있는 화석”(작곡가 겸 가수 유희열)이라고까지 불린다. 세대와 장르를 뛰어 넘어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온 덕분이다.

많은 사람이 그를 발라드 가수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윤상은 음악인들 사이에서 작곡가 혹은 프로듀서로 더 유명했다. 윤상이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봄이 온다’(‘봄이 온다’) 수석 대표이자 음악감독으로 지난달 내정됐을 때 의외라는 반응도 많았지만, 가요계에선 적임자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봄이 온다’에는 조용필, 최진희와 걸그룹 레드벨벳까지 초대됐다. 음악감독에게 필요한 덕목은 장르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무대 기획이다. 트로트와 K팝 그리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적임자로 윤상 만한 사람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청와대 입성 전 공연 기획 일을 했던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눈여겨 봤던 윤상을 ‘봄이 온다’ 음악감독으로 추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편집실 찾아와 방송 소리 체크”

“윤상은 연주자 출신 가수라 공연 전반에 대한 이해가 높다.”(권태은 MBC 음악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 음악감독) 윤상은 1987년, 19세에 김현식의 ‘여름 밤의 꿈’의 작곡가로 가요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음악 활동은 록밴드로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밴드(페이퍼모드) 활동을 한 윤상은 1980년대 후반 김완선의 백밴드 실루엣에서 베이시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1990년 1집 ‘이별의 그늘’을 내기 전 일이다.

연주자는 좋은 연주만 하면 되지만, 그 소리를 좋게 들리게 하는 건 다른 이의 몫이다. 하지만 음악 프로그램 PD에게 윤상은 ‘소리 조력자’로 통한다. “방송 직전 편집실로 와 무대 영상을 보며 ‘보컬 소리 좀 키워줘’라며 음향에 신경 쓰고, 선곡(이탈리아 음악)까지 자문해 주는 보기 드문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김형중 JTBC 음악프로그램 ‘팬텀싱어’ PD)이다. 윤상은 2003년 미국으로 떠나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뮤직신서시스학을,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뮤직테크놀로지학을 각각 전공했다. 35세에 돌연 해외로 음악 공부를 하러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겨울 한국일보와의 만남에서 윤상은 “음악이 곡만 좋다고 되는 시대는 아니다”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방송사(MBC) 백밴드를 했을 때 (조)용필이 형이 나와서 ‘꿈’을 처음으로 라이브 무대로 꾸렸어요. 하지만 그때는 한 마디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겐 방송에 나와 음악 들려주는 게 꿈인데... 그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경험한 것도 좋은 소리를 향한 열망을 만들었고, 뮤직테크놀로지를 전공으로 택한 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결혼식 연주 아르바이트로 산 중고 신시사이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윤상은 어렵게 음악을 했다. 낮에 밴드 생활하며 돈을 벌고 밤엔 집에서 전자악기로 곡을 썼다. 윤상은 대학교에 입학한 뒤 결혼식에서 연주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낙원상가에서 신시사이저(카시오 CZ5000)를 중고로 처음 사 본격적으로 전자음악에 발을 들였다. 이 악기를 디딤돌 삼아 신해철(1968~2014)과 프로젝트팀 노땐스를 1996년에 결성, 전자음악 탐험가로 나섰다. 전자댄스 음악이 요즘 주류 장르로 떠오르기 20여 년 전 실험이었다.

30대 후배들과 전자음악 작곡팀 원피스로도 활동하는 윤상은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다.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릴 남ㆍ북 측 예술단의 합동 무대다.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삼지연관현악단의 협연에 관심이 쏠린다. 이 무대를 위해 윤상은 편곡 작업에도 참여했다. 윤상은 “위대한 탄생과 삼지연관현악단의 협연을 위한 편곡을 준비하면서 아이 같은 설렘을 경험했다”며 웃었다. 그의 머릿속은 화합의 멜로디를 위한 악상으로 ‘불꽃놀이’가 한창일 것이다. 그는 남ㆍ북의 소리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현해낼까. 윤상의 뜻깊은 축제는 시작됐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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