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이론가 강남훈ㆍ양재진 교수 기본소득 찬반 논쟁
[논담] 기본소득론자인 강남훈(오른쪽)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와 복지강화론자인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최소 생활비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전까지 몇몇 학자들의 공상처럼 여겨지던 기본소득이 진지한 정책 대안으로 공론장에 오른 것. 코로나19 사태로 전 국민에게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민생안정과 소비진작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 받으면서 정치권이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3일 김종인 미래통합당 위원장이 “배고픈 사람이 빵을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가 정치의 목적”이라며 기본소득 논의의 물꼬를 트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진영을 가로질러 백가쟁명식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창립, 10년 이상 기본소득 운동을 이끌어온 기본소득론자 강남훈(63)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와 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복지국가 강화론자 양재진(52)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를 만나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들을 짚어 보았다. 지난 16일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이뤄진 대담에서 두 전문가는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과 불평등 해소 효과, 기존 복지제도와의 정합성 등 여러 쟁점을 놓고 팽팽하게 맞섰다.

_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정의해 달라.

강남훈 교수(이하 강)= “우리 네트워크의 정관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기본소득이란 ‘공유부(共有富)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공유부란 토지, 햇빛, 물, 바람 등 자연에게서 상속을 받은 것으로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재산을 말한다. 토지나 환경에서 나오는 수익은 나눠가질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핵심이다. 미국 알래스카주에서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은 연간 배당금을 받는데 석유를 판매해 얻은 수입으로 지급되고, 스위스는 난방용 화석연료에 이산화탄소 부담금을 부과한 뒤 이를 스위스 거주자에게 n분의 1로 생태배당으로 나누어 돌려준다. 액수가 크지 않고 기본소득이란 이름을 쓰지 않지만 이 또한 기본소득이다.”

양재진 교수(이하 양)=“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의 정의에 지급액의 ‘충분성’ 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본소득 주창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저서 ‘21세기 기본소득’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를 주자고 제안하더라. 우리나라 GDP로 환산하면 월 75만~76만원 정도 된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52만원)와 주거급여(25만원)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충분성은 필요조건 아닌가.”

강=“꼭 25%일 필요는 없다. 파레이스는 단계적 접근을 강조한다. ‘뒷문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스위스의 생태배당처럼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서서히 도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 액수가 GDP의 20%를 넘어가는 건 좀 곤란하다고 본다.”

_단도직입적으로 기본소득 도입은 필요한가 아닌가, 필요하다면 이 시점에 우리나라에 필요한가.

강=“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불평등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다. 불평등은 장기적인 경제 성과도 나빠지게 하고 경제도 쇠퇴하게 한다. 부유한 사람도 늘어나지만 불안정 노동자와 최저소득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의 가장 악질적인 원인은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그건 마땅히 전체의 몫이다. 보편적인 토지 보유세 부과가 이를 바로 잡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광범위한 저항 때문에 시도하지 못한다. 이 저항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토지 보유세를 거둬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전체 87%는 받는 것이 더 많다. 탄소세도 시급하다. 이것 없이 지구온난화는 막을 수는 없는데 이를 부과하면 정치인들은 정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게 문제다. 탄소세를 거둬 이를 n분의 1로 기본소득으로 돌려주면 전체 70% 정도가 받는게 더 많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세금 부과를 통한 기본소득 도입은 매우 시급하다.”

양=“불평등도 해소하고 양극화도 막고 소비도 증대시켜야 한다는 말씀은 동의한다. 그러나 기본소득 방식이 효과적이고 유효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평등 완화에는 지금의 사회보장급여가 더 효과적이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라든지 근로장려금(EITC)이라든지 저소득층을 타깃으로 한 여러 가지 복지급여가 만들어져 있다.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는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같은 제도가 있다. 이는 은퇴나 실직했을 때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우리나라 실업급여와 모성보호급여의 소득대체율이 각각 60%, 40%인데 이를 조금 더 높이고 소득이 낮은 계층에게 돌아가도록 하면 소득분배 효과가 클 것이다. 기본소득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 가리지 않고 똑같은 액수를 주니 급여가 낮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크지 않을 수밖에 없다. 소비진작 관점에서도 소득이 격감한 사람은 들어오는 만큼 쓰려는 소비성향이 높지만, 중산층 이상은 한계소비성향 때문에 추가로 들어오는 돈이 상당 부분 저축으로 퇴장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위험에 놓였거나 저소득층에게 몰아주는 기존 소득보장 방식이 정책 효과가 클 것이다.”

_기본소득이 권리라는 측면에서 도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양=“탄소세나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자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수단으로 부동산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다. 그게 유효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서 토지보유세나 탄소세로 공동의 재원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재원에 대해 모두 n분의 1씩 꼭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하는건지는 모르겠다. 세금의 원리도 그렇지 않은가. 이왕 걷은 공동의 자산을 사회적으로 우선순위가 높은데 쓰는게 어떨까. 사회보장이 더 필요하면 그쪽에 쓴다든지, 북핵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다면 국방에 쓴다든지 해야 한다.”

강=“권리라는 측면에서 동의가 안되면, 조세저항을 극복하는 측면으로 생각해 보자. 투기가 이렇게 심하고 지구가 이렇게 망해가는데 토지보유세나 탄소세를 부과하지 못하는건 저항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위한 목적세로 걷자고 하면 저항을 줄일 수 있고 부동산 불평등을 줄이고 기후재난을 막을 수 있다.”

_기존 복지제도처럼 선별해서 나눠주면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강=“2017년 국세청의 통합소득(연말정산을 하는 1,700만명과 종합소득 신고를 하는 500만명의 소득을 사람별로 합친 것)자료를 받아 분포도를 살펴보니 중위소득이라고 볼 수 있는 상위 49%의 1인당 소득이 2,358만원이다. 상위 73%의 소득은 1,184만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4조원의 예산을 5,000만명에게 나눠주면 월 5만원, 실업자 200만명에게 나눠주면 월 1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다’고 했는데 이게 가능할까. 만약 100만원씩 받게되면 일하는 소득하위 23%(600만명)보다 많은 돈을 받게 된다. 이 통계에서 빠진 일용직 노동자 500만명의 소득이 연 1,200만원 이하라면 대략 1,100만명은 이런 방식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것이다. 가난한 사람만 선별해서 주려고 하면 소득 순위 역전으로 인한 정치적 저항 때문에 많은 급여를 줄 수 없는 것이다. 선별할수록 급여가 작아지는 ‘재분배의 역설’이 나타날 것이다.”

양=“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실업자들이 받을 수 있는 급여를 생각해 보자. 지금 실업급여를 최저 160만원, 최대 198만원 받는다. 그리고 고용보험을 못받는 사람들이 6개월 동안 월 50만원씩 받을 수 있는 한국형 실업부조가 생겼다(내년부터 중위소득 50% 이하 지급). 지난해 실업급여로 9조원이 쓰였다.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한 사람에게 1만5,000원 줄 수 있는데 그걸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까. 만약 50만원짜리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보면 연 300조원이 든다. 실현불가능하다. 실현가능한 기본소득을 시작하려면 고작 몇만원짜리 밖에 할 수 없는데 그게 실업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까.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직활동을 하고 직업훈련을 받았을 때 충분한 수당을 주는 실업부조 방식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_자연스럽게 전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이 대립이냐 보완적이냐 묻게 된다.

강=“전국민 고용보험을 해도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실업부조는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실업자(15세 이상 중 구직활동을 하는 인구)라면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비경제활동인구(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 속하는 주부가 구직활동을 한다면 어떨까. 원리상 실업부조를 줘야 한다. 우리나라 비경제활동인구가 1,600만명인데 그 중 일할 나이에 있는 사람 1,000만명 중 4분의 1만 실업부조를 신청해도 어마어마한 예산이 든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6개월간 주도록 돼있는데 이 기간이 지난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전국민 고용보험을 먼저 시작하자는데는 찬성한다. 그렇게 하면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깨닫고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여론이 커질 것이다.”

양=“기본소득은 전국민 고용보험의 보완이 될 수 없다. 개인이 받는 급여는 푼돈 수준으로 낮아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예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점에서 전국민 고용보험과 기본소득은 대립관계라고 생각한다.”

_전국민 고용보험이건 기본소득이건 핵심은 재원이다. 우리나라에 증세 여력이 있을까.

양=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은 1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ㆍ2016년)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고령화 때문에 연금과 건강보험 등 기존 사회보장제도에서 자동으로 올라가야 하는 부분이 7~8% 정도 된다. 복지국가 강화론자 입장에서 OECD 평균을 목표로 한다면 GDP 3%정도인 60조원 정도가 실제 복지강화에 쓸 수 있는 여력이다. 복지는 위험에 대한 보편적 보장이다. 기본소득처럼 소득자도 실업자와 똑같이, 부자도 가난한 사람과 똑같이 받으면 급여는 낮아지고 위험에 대한 보장효과가 없다. 3% 정도를 효과가 떨어지는 기본소득에 낭비하지 말고 사회보장에 잘 썼으면 좋겠다.”

강= 한국의 국민담세율을 북유럽 수준으로 올리면, 그 중 10%포인트 정도를 기본소득으로 나누어도 교육 및 사회복지 증가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충분히 남는다. (한국 국민담세율 26.9%, 프랑스 46%, 스웨덴 44%ㆍ2017년 기준). 이와 같이 북유럽 수준으로 담세율을 높이고 그 중 일부를 기본소득으로 배당하는 것이 우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목표다. 기본소득과 교육 및 복지확대는 함께 갈 수 있다. 이번에 재난소득을 받고 나니 사람들은 내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고 느꼈다고 한다. 기본소득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증가시켜 증세 합의를 용이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복지국가가 강화되는 것 아닌가.”

​양=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다가 위험에 빠지니 이에 대비하는 사회보장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것 아닌가. 이처럼 복지국가라는 건 위험을 보장하는 국가다. 그러나 기본소득에는 위험에 대한 보장이 없다.”

_최근 정치인들은 아동수당, 청년수당 같은 사회수당을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한다. ‘이름 선점 경쟁’을 하는 것 아닌가.

강= “저는 기본소득 정책이 처음부터 원형대로 관철되리라는 법은 없다고 본다. 1인 1투표도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특정 연령집단부터 주는 방법도 있고 아주 낮은 금액에서 시작해 확대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경로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도 완전한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미래를 보고 이름을 지은 것으로 이해한다. 누군가를 속이려는게 아니라 현실정치를 하는 사람이 목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지향한다면 이름 선점 경쟁이라고 해도 그건 좋은 경쟁이다.”

양= “일단 ‘기본소득’이라고 하면 새 상품처럼 보여 생색을 낼 수 있다. 저는 사회수당에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함부로 붙여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회수당은 사회적 위험에 처하거나 복지욕구(필요)가 발생한 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가령 아동수당을 보자.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가계지출이 많고 또 아동은 사회적 자산이기도 하다. 복지욕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회수당에 기본소득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욕구와 관계 없이 준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런 점에서 청년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은 무분별하다. 청년은 아동과 달리 생산가능인구다. 그리고 청년도 처지가 다 다르다. 사회적 위험도를 따지지 않고 n분의 1로 전부에게 나눠주다 보면, 진짜 지원이 필요한 청년에게 충분하게 못준다.”

_최근 기본소득 논쟁이 시사하는 점은 없을까.

양= “기본소득을 정당화하는 이들은 플랫폼 노동의 등장처럼 급격히 변화하는 노동세계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건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기본소득보다는 북유럽 복지국가 방식으로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이 정치적으로 반향이 있는 건 정치가들이 표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재난지원금 지원 대상이 당초 정부 원안은 50%였는데 당정이 논의하면서 70%가 되고 또 선거를 앞두고 100%가 됐다. 요즘의 기본소득 논쟁은 다수에게 어필한다는 정치적 효과밖에 없다.”

강= “기존의 수단을 고집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부동산 불평등, 기후 위기는 토지보유세, 탄소세로 해결해야 하는데 기본소득이 아니면 이를 도입할 수 없다. 복지강화론자들이 시각차가 있다 해도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이야기하듯, 우리 모두의 것(공유부를 의미)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부동산 불평등, 기후위기와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큰 틀에서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이왕구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소득은 조세저항을 뚫고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류효진 기자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존의 소득보장제도가 불평등 개선의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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