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세종 대통령기록관 ‘기록의전당’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상화(맨 오른쪽)이 처음 공개되고 있다. 청와대 내 초상화와는 달리 일반에게 공개되는 초상화다. 세종=연합뉴스

국무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 1층 세종실 입구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1973년 1월 1일 처음 걸린 박정희 초상화부터, 매번 각 대통령의 초상화가 임기가 끝나기 직전 완성돼 걸린다.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대통령’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상화 역시 이곳에 걸려있다.

휴대폰 카메라 화소가 ‘1억 800만’에 달하고 ‘100배 줌’으로 수십㎞ 너머에 있는 물체까지 확인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초상화는 여전히 그려지고 있다. 괜한 돈 들여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건 아닐까. 21세기에도 초상화가 계속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 의뢰인의 권위, 괜한 허영심, 수공예품에 대한 낭만 때문일까.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제작 중인 정중원 작가. 민음사 제공

그래서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화가 정중원이 ‘왜 초상화인가’라고 묻는다는 것은 무척 적절해 보인다. 정중원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리얼리즘을 넘어, 수천만 화소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 상대의 옅은 상처와 땀구멍까지도 있는 그대로 복원해내듯 그리는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유명한 화가라서다. 할리우드 유명배우나 미켈란젤로의 걸작 ‘천지창조’ 속 아담과 신을 재현해내는 작업 등을 통해 이름을 떨쳤을 뿐 아니라, 19대 국회의장 강창희와 5대 헌법재판소장 박한철의 공식 초상화를 실제 그려보기도 했다.

얼굴을 그리다
정중원 지음
민음사 발행ㆍ436쪽ㆍ1만9,000원

정중원은 ‘이 시대, 초상화가 대관절 무슨 소용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뒤러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에서 시작해, 연인을 그린 피카소와 프란시스 베이컨을 거쳐, 최첨단 초상화라 할 수 있는 CG기술과 딥페이크까지 탐구해나간다.

그것은 일종의 갈망이다. 내 눈으로는 절대 직접 볼 수 없는 나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상의 찰나를 영원히 남기고픈 마음. 그 마음들이 거울을, 초상화를, 카메라를 만들어냈다. 초상화는 그래서 ’피사체를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린다’를 넘어서서, 그리는 이가 생각한 인물의 내면과 정신을 담아내는 그림이다.

그레이엄 서덜랜드가 1954년에 그린 '윈스턴 처칠 초상 습작'(왼쪽 그림)과 '윈스턴 처칠의 초상'. 완성된 초상화는 1년도 안 돼 불에 태워졌다. 런던국립초상갤러리 소장ㆍ개인 소장

그렇기에 대상과의 거리감은 피할 수 없다. 가령 그레이엄 서덜랜드는 윈스턴 처칠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처칠을 노쇠하고 음울한 인물로 묘사했다. 사라져가는 영광의 대영제국 끝자락에 있는 인물로 그린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에 맞서 세계를 구해낸, 영민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각인되길 원했던 처칠은 이 그림을 싫어했다. 대상의 흠결을 있는 그대로 잡아냈다는 죄로 서덜랜드의 그림은 처음 딱 한번 공개된 뒤 처칠의 자택에 처박혔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잿더미가 됐다. 초상화를 볼 때마다 너무나 괴로워하는 처칠을 보다 못한 아내의 지시로 불태워졌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주인공 엘로이즈의 초상화는 화가 마리안느와의 관계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르게 그려진다. 엘로이즈는 자신을 전형적인 아름다운 귀족 아가씨로 그린 첫 번째 초상화(왼쪽 그림)를 보고는 "나랑 이 초상화는 비슷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림은 엘렌 델마르 작품

반대로, 화가와 대상 사이의 특별한 감정이 들어가는 경우도 생긴다. 페르메이르 그림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화가 페르메이르가 모델인 소녀를 흠모했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림 속 하녀의 기묘한 아름다움에서 화가의 연정을 추출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찰나의 사랑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피카소는 생전 두 명의 부인을 비롯, 수많은 여성들을 모델로 삼아 숱한 명작을 남겼지만 실제 사귀는 여성들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것으로 유명했다.

초상화는 권력자를 향한 절대 복종을 강요하고 체제 강화에 유용하다는 점에서 그 어떤 그림보다도 사회적이다. 사진은 지난해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는 김일성 광장. 연합뉴스

개인의 얼굴을 영구히 기록한다는 점에서 초상화는 정치권력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북한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설치된 풍경이 단적인 예다. 이 경우 초상화는 너무나 강력한 사회적 상징성을 지니게 되면서, 정치적 상황변화에 따라 가장 먼저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소련 붕괴 뒤 레닌의 동상이 대대적으로 파괴됐고, 지금 미국와 유럽 전역에서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동상이 훼손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다.

1977년 영화 '스타워즈'에서 '타킨'을 연기한 배우 피터 쿠싱(왼쪽 사진)은 1994년 사망했음에도 2016년 '스타워즈 로그원'에 출연한다. 디지털 기술로 되살린 것인데, 이를 두고 이미 죽은 배우의 이미지를 임의로 다시 만들어 상업영화에 쓰는 것은 비윤리적이란 비판이 일었다.

초상화는 최첨단 기술과 만나면서 정치적 논란을 넘어 윤리적, 도덕적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이미 사망한 배우를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 되살려내고, 포르노 영상에 유명 배우의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콘텐츠가 단적인 예다. 개인의 얼굴을 임의로 재현하고 소유하는 것은 어느 선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실재와 가상의 변화하는 경계, 개인의 권리 그리고 재현의 윤리에 관해 어떠한 성찰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의 모습도 결정되리라.”

왜 초상인가. 하이퍼리얼리스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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