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사퇴… 北 1차 핵실험으로 사퇴한 이종석 연상케 
 학자 출신, 관료 장악 못해… “국가안보실 개편 이어질 듯”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 표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계를 대표하는 대북 대화ㆍ협상론자였던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튿날인 17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남북관계 악화 책임을 지고 떠나는 불명예 퇴진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미스터 포용정책’으로 불리던 이종석 당시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한 데 유감을 표하며 물러난 것과 같은 모양새다. 또 한 번의 대화론자 잔혹사인 셈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책임론도 한층 거세지는 모양새다.

김 장관은 지난해 4월 장관직에 올랐다. 같은 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직후다. 당시 여권에서는 김 장관이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할 ‘창의적 해법’을 찾을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등으로 활약하며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정책 수단 활용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2개월이 흐른 지금 기대는 ‘통일부 실기론’으로 바뀌었다. 결국 김 장관이 사표를 던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여권 한 관계자는 “학자 출신인 김 장관이 끝내 통일부라는 관료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끌려갔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김 장관의 사의 표명이 국가안보실 개편으로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김 장관이 통일부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국가안보실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2차장 체제로는 북한을 설득하기도, 미국을 움직이게 하기도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부쩍 커지고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 장관의 사퇴는 특히 이종석 전 장관 사퇴 당시와 여러모로 오버랩 되는 측면도 있다. 이 전 장관은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자 사의를 표했다. 두 장관은 성균관대 정외과 대학원을 함께 다녀 인연이 깊다. 참여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이 전 장관)과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김 장관)으로 함께 손발을 맞추기도 했다.

장관으로서의 불운도 닮았다. 대외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는 최악의 시기를 버텨내야 했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작년 말부터 대북개별관광 등 제재를 우회해 북한과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 추진했다. 하지만 대북제재의 벽을 뚫지 못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란 불운도 겹쳤다. 코로나19를 연결고리로 한 남북 보건ㆍ의료협력을 추진해보려 했지만 이 역시 북한의 무응답으로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이 전 장관은 앞서 2004년부터 악화일로이던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기류와 외교부 등 정부 내 이견에 번번히 가로막혔다. 북한도 이 전 장관의 잇단 제의에 일체 반응하지 않으면서 그를 무력화 시켰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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