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경기도 화성시의 한 재활용 업체에서 관계자들이 가득 쌓인 페트 재활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꿈의 물질’로 찬사를 받았다. 강하지만 가벼웠던 데다, 원하는 형태의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으로 변신이 가능했다. 특히 자본주의 속성인 대량생산이나 소비와는 찰떡궁합에 가까웠다. 이전까지 수공업에 의존했던 천연제품의 대체재 자리도 금세 꿰찼다. 152년전, 지구촌을 떠들썩하게 만들면서 출몰한 플라스틱 애기다.

플라스틱의 태동은 186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당구공 재료였던 고가의 코끼리 상아를 대신하기 위해 미국 발명가인 존 웨슬리 하이엇이 만든 셀룰로이드가 세계 최초의 천연수지 플라스틱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진화를 거듭한 플라스틱은 일상생활엔 없어선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했다.

그렇게 인류의 동반자로 남게 될 것만 같았던 플라스틱은 부작용도 가져왔다.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지난 2015년 코에 빨대 박힌 거북이가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모습으로 공개된 유튜브 동영상은 3,00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8년엔 스페인 해변에 10m 길이의 폐사된 향유고래 시체에서 29㎏ 무게의 각종 플라스틱이 쏟아지면서 충격을 던졌다. 하와이와 미국 캘리포니아 사이의 태평양엔 한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 섬까지 생겨났다. 플라스틱 남용이 몰고 온 부메랑인 셈이다.

잇따른 적신호에 세계 각국은 플라스틱 사용 억제 정책을 쏟아냈다. 영국에선 2025년까지 플라스틱 근절을 선언했고 유럽연합은 비닐 봉투 사용량 감축 범위를 2019년 50%에서 2035년엔 80%까지 확대키로 했다. 케냐는 비닐봉투 사용에 대한 전면 금지법(2017년8월)을 도입, 위반시엔 최대 4,200만원의 벌금이나 징역형(4년)에 처하도록 했다. 2018년 9월, ‘플라스틱프리도시’를 선언한 서울 등 한국 또한 1회용품 줄이기 운동에 합류했다.

하지만 올해 초 불어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에 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물을 만난 모양새다. 당장 코로나19에 외식 보단 집에서 주문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플라스틱에 중무장된 온라인 배송이 급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올해 2~3월 시내 25개 자치구에서 발생한 재활용쓰레기는 지난해 동기 대비 15% 늘었다. 배달 서비스 이용 증가와 감염에 대한 염려로 1회용품이 소환된 탓이다. 실제 국내 배달 응용 소프트웨어(앱) 1위인 배달의민족의 올해 1~4월 주문 건수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월평균 60%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감염과 확산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커피 전문점 등의 1회용품 사용 또한 플라스틱에겐 호재다.

반면, 플라스틱 재활용시장은 빙하기다. 우선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각국의 봉쇄 조치가 강화되면서 폐플라스틱의 수출 길이 막혔다. 여기에 최근 국제유가 하락에 따라 국내 플라스틱 재활용 자원 판매 단가가 폭락한 가운데 전국에선 폐기물 대란 조짐마저 엿보이고 있다. 플라스틱 배출은 많은 데, 재활용이 막히는 악순환의 연속인 꼴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국이란 점이다. 유럽 플라스틱 및 고무산업제조자 협의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사용량(2015년 기준)은 132.7㎏으로 세계 3위다.

국제연합 산하의 유엔환경계획은 전세계에서 버려진 폐플라스틱 가운데 매년 해양에 흘러나오는 규모를 800만톤으로 보고 있다. 이런 폐플라스틱은 자외선이나 파도에 의해 5㎜이하까지 미세하게 분해된 이후, 물고기 등 해양생물을 거쳐 밥상까지 침투해 인체까지 파고든다.

생산에 5초, 사용은 5분, 분해는 500년 걸리는 게 플라스틱이다. 코로나19를 핑계로 플라스틱 오남용에 따른 후폭풍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플라스틱이 코로나19 보다 더 큰 재앙을 가져오지 말란 법은 없다.

허재경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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