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에 실립니다. 

<6>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것

지난달 29일 경기 고양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2020 서울 캣쇼’에서 방문객들이 반려동물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언젠가 엄마에게 말했다.

“우리 강아지라도 기를까?”

엄마는 대답하셨다.

“나는 소도 기르고 싶다!”

엄마의 의도는 유머가 아니었다. “나도 바쁘고 너도 종일 밖에 돌아다니는데 어떻게 돌볼 거야?” 엄마의 논리는 옳지만 반려 동물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흡반처럼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실은 4년 전, 성수동에서 남산으로 이사 오면서 엄마가 삼총사 친구들과 멀어지게 한 죄책감이 컸다. 나이든 사람에게 친구를 대신할 가치가 있을까? 어차피 없는 돈? 늘 화나게 하는 가족? 어둠이 드리우는 엄마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내 손으로 박탈한 일은 커다란 윤리적 딜레마를 안겼다. 집 주변의 돈 주고 살 수 없는 풍광도 엄마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반려 동물이 엄마 인생에 고요한 힘이 되지 않을까?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정직하게 말하면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절대 불가라는 엄마의 함무라비 법전 앞에서 반려동물 없는 내 미래는 정해져 있었다.

열 살 때 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렀던 개가 죽었을 때 나는 알았다. 무엇을 너무 사랑하면 마음의 병이 된다는 것을.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 헤어진다는 것을. 그러나 나의 연민이 많은 성격으로도 선인장 하나 오래 돌보지 못했다. 식물 가게를 하는 친구가 제라늄을 선물하면서 어떤 세심함으로 돌봐야 하는지 촘촘히 일러주었을 때도 번번이 물 주는 것을 잊었다. 동물은 나와 함께 하기 위해 토끼를 좇다가도 포기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같이 산책하는 건 정신적 고비를 넘는 소풍이지만 나는 매일 너무 바쁘니까. 이런 태도라면 서로가 수명이 긴 길잡이 동물이 되는 유대란 처음부터 불가능할 것이다.

동물과의 우정과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감명 깊은 서론으로 시작되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커피믹스 색 길고양이가 우리 집과 공원을 나눈 담 위에 흥청대며 앉아 있곤 했다. 내가 쳐다보면 조르륵, 평균대 위의 코마네치 뺨치는 평형 감각으로 도망을 갔다. 어떤 날은 마당 창고에 들어와 있다가 내가 문을 열면 높은 창으로 뛰어 올라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교만하게 내려다 보았다. “우리 집에 오지 마! 먹을 거 없어!” 엄마는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지만 고양이가 창고에 있는지 살피는 일은 나의 일과가 되었다. 오늘은 안 왔네? 화가 났나? 엄마는 나에게 충고하셨다. “자꾸 그렇게 관심 보이면 나중에 고양이가 친구들 다 데리고 올 거야.”

반려동물을 기르는 국내 반려인구는 1,000만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유기 동물 수도 연간 8만마리에 달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그 얼굴에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는 순간의 푸른 서슬이 덮였다.

“너, 산모 됐다.”

새벽빛에 그을린 목소리는 연기처럼 매캐했다.

창고 문을 열자 그때 그 길고양이가 새끼들을 품은 채 야생적이고 호전적이며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저렇게까지 누구를 증오해 본 적이 없었다. 남의 집에 잠입해 놓고 선인장처럼 건드리면 찌를 태세라니.

새끼는 모두 네 마리였다. 나는 급한 대로 종이 박스에 담요를 깔아 창고 안에 두었다. 몽롱한 아침에도 그 사이 주문한 사료와 염분 없이 끓인 닭 스프와 물을 넣어주었다. 고양이는 부르주아 양식으로 매수하려는 내 마음을 읽고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댐이라도 쌓은 것처럼. 어떤 의미로 그 고양이는 인간적인 개체였다. 고양이의 불복종과 나의 굴종. 관계의 전복. 엄마는, 고양이가 좋은 친구 만나 호강한다고, 내가 저렇게 아부하는 건 처음 본다고 야유하셨다.

“부지런히 먹어. 그래야 젖이 잘 나와”, 엄마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운 척 친근하기만 했다. 우리는 다음 순서로 나아갔다. “고양이 이름은 뭘로 지을까?” 몇 가지 생각해 둔 이름이 있었다. “네코!” 엄마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일본 말로 고양이라는 뜻이야.” 세상에,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부르게 되다니.

며칠 뒤 창고엔 새끼 한 마리만 남아 있었다. 아무리 우아한 공작도 수틀리면 원래 있던 사유지에서 야생으로 달아나는 걸까. 길고양이가 문턱에 행위의 이유를 적은 설명서를 놓아둘 리 없으니 엄마와 나는 각자의 경험과 지혜로 추리하기 시작했다. “어미가 거처를 옮기는 중이라 저 새끼 고양이는 마지막에 데리러 올 거야”, “워낙 미묘(美猫)인데다 새끼들도 다 예쁘니 사람들이 다 데리고 간 것 같아.” “길고양이는 원래 가장 약한 새끼를 버린대. 그래야 다른 새끼들을 건사할 수 있대. 다 데리고 간다 해도 어차피 절반은 죽겠지만.” “어쩜 교통사고는 아닐까?” 모든 가설에도 불구하고 새끼 가까이 갈 순 없었다. 사람 손을 타면 혹시 어미가 왔을 때 안 데리고 갈까 봐. 손바닥보다 작은 고양이는 엄마와 내 앞에 펼쳐진 오르막길과 전환점 위에서 너무 강렬한 숙제를 주었다. 엄마와 나는 밤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수의 책임으로 가득한 인간의 의무는 윤리적 목록에 우선 순위를 짜는 것으로 이동할 때 진짜 난관에 빠진다. 나는 모든 낙오된 고양이를 도울 수 없다. 예수는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라고 했다. 그렇게 순환하는 도덕은 매우 본질적이겠지만, 이럴 때 사용할 가이드는 왜 주지 않은 걸까. 작은 표본을 거두기 위해 날개를 펴는 나의 행위는 ‘동물을 기른 적 없는 나와 버려진 새끼 고양이’라는 특별한 사례의 일반적 경우를 만들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고뇌의 시험장으로 빠뜨릴 것이다.

오후가 되었다. 추웠다. 어떤 생각은 어미가 오기 전에 얼른 집안으로 납치하라고 재촉했다. 이런 엉뚱한 기회가 아니라면 다시는 고양이를 기르지 못할 거야. 나는 우리가 정한 시한이 되기 전에 창고 문을 열었다. 나는 단숨에 세상에서 가장 서툰 사육자가 되어 새끼 고양이를 두 손에 담았다. 따뜻하고 유순한 몸은 힘 주지 않아도 으스러질 것 같았다. 누군가 내 마음의 전기 화로에 스위치를 켠 듯 주위가 귤빛으로 타들어갔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의 자비 위에 던져진 작은 고양이가 지금 내 것이라는 것만이 진실이었다.

집 근처 동물 가게 주인은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기르셔야겠네요.” 수 차례 길고양이를 거두었던 박애주의자 후배는 먹을 것의 온도, 횟수, 거처의 보온, 소음, 조도, 배변, 세척에 관해 한참 일러주었으나 온통 난해한 수학 공식 같았다. 그러나 용법 용량을 지켜 고양이에게 먹일 때마다 나는 처음 겪는 부성(父性)으로 발열했다. 동물과 사람의 감정이 비슷한 특징을 가졌다는 생각은 다윈의 진화적 연속성을 받아들인 견해가 확장된 탓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기 고양이의 건강과 감정을 살피는 일은 내 본성에 대한 질문과 같았다. 나는 꿈틀대는 고양이를 어루만지다 오줌을 확인한 뒤 캐리어에 넣었다가도 기척이 없으면 그게 또 궁금해서 이불을 들춰 수시로 염탐했다. 동물이 귀찮다던 엄마는 새끼를 두고 간 네코를 탓하면서도 뜻밖의 노련함으로 이 부숭부숭한 침입자를 다루었다. 엄마를 다 안다 싶다가도 늘 보는 새로운 광경은 당신에 대한 개정판을 쓰게 만들었지. “딸깍 딸깍 소리 내면서 먹는 것 좀 봐.” 결국 누구를 먹이는 행위만 한 사랑이 없을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이어나가는 일이며,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먹는 것을 뺏을 테니.

그러나 새끼 고양이는 슬로우 모션 만화 영화처럼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처진 머리로 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있다가 슬픈 표정으로 갓난 아기처럼 울기도 했다. 잘 받아 먹는 것 같은데도 몸집은 이상하게 더 앙상했다. 먹이기만 했지 제대로 씻기지 못해 입가와 목덜미엔 분유가 엉겨 붙었다. 동물이 애정과 고통, 스트레스에 대해 심리적으로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은 확실히 과소평가되었을 것이다.

고양이를 갖고 싶다는 소원은 반유토피아적인 상태로 변했다. 집에 와 고양이의 상태를 본 후배는 비난하려는 마음을 누르며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있는 집에 입양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제안은 제때 찾아온 구조 신호였다. 텅 빈 기분으로 제주도에 간 날 아침, 후배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어떡해요…?” 내 얼굴은 흡혈 당한 이의 데드마스크처럼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고양이는 바로 다음날 새벽에 죽었다고 했다. 나는 방향 잃은 패배자가 된 것 같았다. 미안함을 전하는 말은 뒤따를 자격이 없었다. 나는 고통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동물을 장식으로서의 쾌락, 필수불가결한 액세서리로 여긴 대가를. 나는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고양이를 찾아주고 싶었지만, 후배는 그 가족의 상처가 너무 커서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후배는 다시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작은 생명 하나 돌보지 못한 고양이 살해범이기 때문에.

가끔 내 잘못 때문에 삶의 옆길로 한 걸음 물러난 고양이가 생각났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난 이야기. 나에겐 냉정한 훈계만 남았다. 돌볼 수 없다면 들이지 말라는. (어느 날, 휴대폰 사진을 뒤적이다가 아기 고양이를 보았다. 가장 큰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저 눈은 나중에도 유일하게 붙잡고 싶은 기억 속의 눈이 될까? 이 우스꽝스러운 감정의 깊이를 존중해야 할까?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눈물이 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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