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지독한 내집단 편향성의 데자뷔
적폐청산 외치며 새 폐해 쌓아가는 역설
‘평등 정의 공정’ 촛불정신 앞에 겸허해야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된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4일 국회 의원회관으로 출근하면서 기자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80년대 후반 얘기다. 5공이 끝나고 다소 온건해진 노태우 정권이 들어섰어도 대학가나 거리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화염병 시위와 폭력 진압으로 날이 새고 지긴 마찬가지였다. 시위 현장에서 학생들과 유인물을 뿌리던 당시 유명 재야운동가와 마주쳤다. 그들은 “구로구청 지하에서 수십 명 학생이 경찰 진압으로 사망하고 은폐됐다”고 외쳐댔다.

“그날 제가 거기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기자입니다. 쫓기다 추락하고 많이 맞아 다쳤어도 죽은 학생은 없습니다.” 답답했다. “여러분마저 거짓말하면 국민은 누구한테 기대야 합니까?” 학생들이 둘러쌌고 그가 화를 냈다. “당신 누구 편이야!”

진실과 상식이 적과 동지, 운동의 유불리 구분보다 가치 없다는 사실에 아득해졌다. 정의는 다만 대의에 복무하는 도구였다. 그와의 친분은 그걸로 끝났고, ‘사소한’ 이 일은 오래도록 묵직한 흉통으로 남았다.

비슷한 경험은 꽤 잦았다. 초년 기자 때, 학생들도 똑같이 애매한 사람을 구타ᆞ고문한 사실에 경악한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첫 상처였던 것 같다. 비장한 투쟁대오 뒤편에선 믿기 어려운 추문들도 자주 흘러나왔다. 그래도 그들은 늘 정당했다. 어쨌든 불의한 거악에 맞서는 전사들이었으므로. (이후 어디에나 섣불리 권위나 신뢰를 부여하지 않게 된 것도 경험 때문이다)

꼰대처럼 ‘라떼’를 들추고, 일반화 위험에도 개인 경험을 소환한 이유는 짐작하는 대로다. 30년을 뛰어넘는 기시감 때문이다, 조국과 윤미향 논란은 틀이 같다. 1980~90년대 운동권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망스러웠던 부정적 행태를 빼다박았다. 정의와 공정, 도덕을 독점하고 담장 너머로는 배타와 적대로 일관하는. 송철호ᆞ유재수 사건 처리 과정은 과거 보수 기득권 연대와 꼭 닮았고, 금태섭 징계 논란은 진보 아닌 수구적 행태에 다름 아니다.

사실 오랫동안 이런 측면은 대체로 덮여졌다. 국민 사이에 민주화 과정의 부채의식이 상당했던 데다, 그들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는 소수 비주류였으므로. 그러나 이젠 그들이 국정 책임을 맡았고, 스스로도 주류임을 선언할 만큼 환경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한 정의와 집단이기 사이의 인식 전도는 초라하고 시대착오적이다.

혹 잊었을까 상기시키자면, 촛불 정국 때 탄핵 요구는 80%를 넘었다. 보수 성향의 50~60대도 대열에 가담했다. 박근혜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4%까지 추락했다. 극소수 극우나 지독한 지역주의자들을 빼고는 거의 모든 국민이 동의했다는 뜻이다. 촛불은 이념 정파 세대 계층을 뛰어넘는 민심의 대폭발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퇴진’으로 시작됐지만 민심을 응축한 한마디는 “이게 나라냐!”였다. 거기엔 불의하고 불공정한 기득권에 대한 염증과 분노, 불평등하고 불법이 횡행하는 현실에 대한 박탈감과 절망이 다 담겼다. 그러므로 촛불의 진짜 요구는 집권세력 교체보다 훨씬 더 큰, 평등 공정 정의 같은 보편가치의 회복이었다. 그래서 현 정권은 함부로 촛불혁명의 적자(嫡子)를 운위해선 안 된다. 아직까진 그냥 촛불집회의 수혜자다.

현대사의 큰 흐름상 지금은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기다. 산업화시대는 오랜 진통을 거쳐 극복됐다. 성과가 무의미해진 게 아니라 과정에 수반한 폐해가 민주화 가치에 밀려 정당성을 상실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민주화시대의 극복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 역시 성과가 아닌, 부정적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업화 과정의 적폐뿐 아니라 민주화 과정의 이런 폐해도 당연한 청산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혁명은 미완일뿐더러 채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 엄중한 역사적 사명을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리 절대권력을 보유했어도 애당초 시대를 맡을 자격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촛불정신으로 선언한 ‘평등 정의 공정’의 가치 회복 없이 20, 50년 집권론은 턱도 없는 얘기다. 집권 초부터 내내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집권여당이 정작 스스로 새 폐해를 쌓아가고 있음을 제발 두려운 마음으로 깨닫기 바란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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