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Why] SNS서 92년 ‘루프 코리안’ 재조명이 씁쓸한 까닭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인 지난달 29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루프 코리안'이라는 밈과 사진이 등장해 논란을 빚고 있다. 로이터

미국 전역 곳곳에서 인종차별 사건에 항의하는 과격 시위가 점점 격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였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데 따른 후폭풍인데요.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미국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면서 상점을 약탈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는 폭동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위대의 이 같은 행태는 1992년 로드니 킹 사건과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상기시키고 있는데요. 특히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한인들의 ‘루프 코리안(Roof Korean)’ 사진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루프 코리안이란 직역하면 ‘지붕 위의 한국인’이지만, 정확히는 총기 등으로 무장한 채 지붕 위에 몸을 숨기며 방어 태세를 갖춘 한국인을 일컫습니다. 28년이 지난 오늘날 이들이 왜 갑자기 소환이 된 걸까요?

◇ 지금 미니애폴리스에 필요한 건 루프 코리안?

미니애폴리스 등 미국 내 일부 지역에서 방화와 약탈 등으로 일반 무고한 시민들이 시위대의 희생양이 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SNS에는 “지금 미니애폴리스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건 루프 코리안이다”(da*****), “미네소타에 한인 타운이 있었다면 최신 루프 코리안을 볼 수 있었을 것”(Su*****) 등의 트윗글이 지난달 29일 무렵부터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인 지난달 29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루프 코리안'이라는 밈과 사진이 등장해 논란을 빚고 있다. 트위터 캡처

지붕 위에 무장한 모습으로 진지를 구축한 한국 예비역 남성들, 이들이 바로 루프 코리안인데요. 사진 속 한인 교민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시내를 내려다보며 잔뜩 긴장한 모습이지요. 이 사진은 1992년 LA 폭동 당시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인들이 자신과 가족, 삶의 터전인 일터를 지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방어에 나섰던 모습을 기록하고 있어요.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인 지난달 29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루프 코리안'이라는 밈과 사진이 등장해 논란을 빚고 있다. 트위터 캡처

LA 폭동은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구타를 당했지만, 경찰이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시위가 발화점이 됐는데요. 폭동이 유혈 사태로 번져가면서 사건과 무관한 한국 교민들이 큰 피해를 봤지요. 마트와 세탁소 등으로 생계를 잇던 교민들의 삶의 터전이 약탈과 방화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거였어요. 당시 교민들이 “LA 경찰들은 한국 교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망가느라 바빴다”며 미국 언론과 인터뷰한 영상은 지금도 유튜브 등에 남아 있습니다.

◇ 루프 코리안은 인종 차별을 위한 ‘밈’이다?
1992년 LA 흑인 폭동 당시 흥분한 흑인시위대가 로스앤젤레스 중남부 시가지에서 챠량에 방화하며 난동을 부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루프 코리안은 한국인과 흑인의 갈등 구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죠. 백인과 흑인의 갈등 속에 튄 불똥으로부터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택한 방법이었다는 점이 중요한데요. 교민 등이 자랑스러워하는 부분도 바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장이 아닌, 방어를 위한 체계적인 무장’이었다는 점이었어요.

문제는 SNS에서 백인들은 이들을 ‘루프 코리안’으로 명명하며 마치 한국인들을 ‘폭력 시위대에 맞서는 용병’쯤으로 여긴다는 거죠. “미니애폴리스에 루프 코리안이 필요하다”는 말에 한 한국 트위터 사용자는 “백인과 흑인 갈등에 한국인을 끼워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LA 폭동 때도 백인 경찰이 한인 타운은 무방비 상태로 뒀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킨 것을 밈(Memeㆍ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지며 유행하는 새로운 문화 현상)으로 쓰고 있다”(80*****)라고 지적했고요.

또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하려고 ‘루프 코리안’이라는 밈을 소비하고 있다”(Sh******), “루프 코리안이라는 밈으로 소수 인종에게 총 한 번 더 쏠 기회를 바라는 게 아니냐”(ma*******), “교묘하게 유색인종 간 갈등으로 비틀어버리려는 태도다. 궁극적으로 백인은 뒤에서 팝콘이나 먹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Re*****)라고 꼬집는 트윗도 속속 올라왔습니다.

루프 코리안이라는 밈 자체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들은 “루프 코리안을 이런 식으로 인용한다는 건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켜봤자 루프 코리안 총 앞에선 꼼짝 못 한다’는 의미 아닌가. 저열한 인종차별이다”(Ch*****), “루프 코리안을 밈으로 쓸 수 있는 건 한국인과 아시아계다. 백인과 흑인들이 그러는 건 화내야 한다. 아직도 관련 글에는 ‘멋져! 한국인을 전쟁터로!’ 이따위 말이나 나오고 있다”(cr*****)고 꼬집었습니다.

◇ 조지 플로이드 사건 후 다시 공포에 떠는 한인 사회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규탄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30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불타고 있는 경찰차 위에 올라 경찰 방패를 든 채 분노하고 있다. 애틀랜타=AFP 연합뉴스

정작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와 조지아주 애틀랜타 지역 내 한인 사회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 양상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데요. 실제 피해를 본 한인 상점도 있다고 해요. 1일 외교부에 따르면 시위로 인해 발생한 한인 상점 피해는 미네소타주에서 10건, 조지아주 6건, 노스·사우스캐롤라이나주 6건, 캘리포니아주 3건, 플로리다주 1건 등 모두 26건 가량 되고요.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한인 점주가 운영하는 주류점도 물건이 파손되는 등 피해를 봤다고 합니다.

백인 경찰 손에 희생당한 흑인 남성과 이에 분노한 흑인들의 과격 시위. 1992년 로드니 킹 사건과 오늘날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공통점이지요. 로드니 킹 사건 당시 엉뚱한 희생양이 됐던 한인들의 과거는 트라우마로 남아 오늘날 다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도 미 경찰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교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외교부 등 정부도 현지 대책반을 꾸렸고요.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은 한인타운의 치안 유지와 시위대의 한인 상점 약탈 등을 막기 위해 군 병력을 전격 투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요.

LA 총영사관과 한인회에 따르면 LA 경찰은 1일 온라인 간담회를 열고 1992년 LA 폭동을 언급하며 “그때와는 다르다. 우리가 이제는 한인들을 보호할 것”이라며 “한인들은 약탈과 방화를 막기 위해 자체 무장을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는데요. 아무쪼록 시위 과정에서 교민들은 물론 무고하게 피해를 보는 시민들이 더 이상 없길 바랄 뿐입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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