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26> 포스트 코로나 선봉 원격의료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인도네시아인이 원격의료 앱을 이용해 원격진료를 받고 있다. 니케이아시안리뷰 캡처

 

“연초부터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우기인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병원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종종 관련 광고도 보고 친구들 평도 좋았던 기억이 나 원격의료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다. 각 분야별로 수많은 의사들의 이름, 사진, 학력 및 경력, 이용자 만족도 등이 소개됐다. 진료비는 2만5,000루피아(2,000원) 정도로 병원 진찰료(7만5,000루피아)의 3분의 1이었다.

학력과 경력을 참고해 의사를 고르고 잠시 뒤 진료가 시작됐다. 기침을 시작한 시기, 복용한 약 등을 설명하자 의사는 친절하게 몇 가지를 더 물었고 인후염이라고 진단했다. 처방된 약은 전자지갑으로 결제하자 오토바이택시(고젝) 기사가 배달해줬다.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의료보험까지 적용돼 총 비용은 약값, 배달비까지 포함해 일반 병원의 5분의 1밖에 들지 않았다. 간편하고 저렴해 계속 이용할 생각이다.”

인도네시아 한 원격의료업체 앱에 소개된 의사의 학력과 경력 및 만족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회사원 치트라(24)씨가 최근 한국일보에 알린 원격의료 체험기다. 인도네시아는 원격의료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12년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관련 행정명령을 발효한 2016년부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참 먼저인 2006년, 뒤이어 2014년 시범사업에 돌입했으나 최근에서야 ‘한국판 뉴딜 과제’라고 운을 떼며 여전히 논의만 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뒤쳐진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도네시아 원격의료의 성장세를 부추기고 있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코로나19 이후 시대)’를 대비하는 모양새다. 인도네시아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의 총책임자인 도니 모나르도 국가재난방지청장은 최근 화상 기자회견에서 “보건부 등 관련 부처의 지원 덕에 30만명 이상이 코로나19 원격의료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일반 원격진료까지 포함하면 200만건 이상이다. 도니 청장은 이어 “대면 접촉이 없는 원격의료는 코로나19 시대에 적합한 의료 방식이고 앞으로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격의료와 연계된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도 약속했다. 현지 대형 병원들도 앞다퉈 원격의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원격의료를 키워야 할 절박하고 특수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의료진과 시설이 부족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인도네시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세계 평균(1.5명)에 한참 못 미치는 0.27명이다. 그런데도 코로나19로 인한 의료진 사망이 전체 사망자의 4%를 넘을 정도로 의료진의 희생이 유독 많다. 같은 기간 1,000명당 병상 수는 1.2개로 한국(11.5개)의 10분의 1 수준이다. 수도 자카르타는 그나마 2.2개로 나은 편이지만 발리 동쪽 서(西)누사텡가라주(州)는 0.65개에 그치는 등 지역 간 격차가 심하다.

더구나 인도네시아는 1만7,000여개의 섬을 거느린 군도 국가다. 매년 졸업하는 의대생 1만2,000여명을 6,000여 유인도에 배치해도 섬당 두 명꼴이다. 국토 최동단 파푸아는 전 세계 의료봉사에 기댈 만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도서 지역 등은 대면 진료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얘기다. ‘민영 의료’ 중심에서 ‘공영 의료’를 접목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선 ‘의료 민영화’ 논란보다 ‘보편적 의료서비스 확대’라는 대의가 앞선다.

인도네시아 대표 원격의료업체인 할로독의 원격의료 앱. 콘탄 캡처

현재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원격의료 업체는 5곳이다. 2억1,000만명이 가입한 인도네시아 건강보험공단과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할로독(HaloDoc)이 선도 업체다. 2016년 설립한 할로독은 2만2,000명이 넘는 의사, 85개 도시 1,800개 약국과 협력하고 있다. 승차공유업체 고젝의 오토바이택시 기사들이 약을 보통 1시간 내에 집으로 배달해 준다.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도 의사가 찍어 올린 수기 처방전을 제시하면 살 수 있다. 당뇨 심장병 뇌졸중 등 자주 찾는 항목은 따로 관리하고 있다. 할로독은 1,000만건이던 월 평균 접속 건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 늘고 있고, 매출은 두 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알로독테르(Alodokter)는 800여개 병ㆍ의원 2만명의 의사와 협력하고 있다. 할로독과 기본 서비스는 같지만 회원제로 운영돼 할인 혜택이 보다 다양하다는 게 특징이다. 클릭독테르(Klikdokter)는 치아 건강 쪽에 특화돼 있고, 독테르(Dokter)는 마치 여행사이트에서 호텔을 고르는 것처럼 병원 외관, 전화번호, 서비스 수준, 청결도 등의 병원 리뷰를 제공하고 있다. 독테르세핫(Dokter Sehat)은 체질량지수, 칼로리, 배란일 주기 등 건강 계산기가 눈에 띈다. 이들 모두 인도네시아의사협회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원격의료업체 할로독의 홍보 화면. ‘사킷(sakit)?’은 ‘아픈가요?’라는 뜻이다. 할로독 홈페이지 캡처

인도네시아의 원격의료가 포스트 코로나로 나아가기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낙후 지역과 오지에 온라인 기반을 확충해야 하고 행정명령을 손질해 정식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다만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의료의 실효성을 입증한 만큼 추가 대책이 나오고 관련 법 정비도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인터넷 기반은 약하지만 젊은층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보급이 급증하고 있어 원격의료 앱 이용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창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카르타 무역관 부관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의료 선진국 이미지가 강한 우리나라가 도서 산간 오지 등에서 원격의료를 우선 확대 추진한 뒤 그 실적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다면 신(新)남방 정책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장은석 바텍인도네시아 지사장은 “원격의료는 도서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지형적 특성, 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조코 위도도 정부의 정책 목표와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의 e-헬스(인터넷 및 정보통신기술과 결합된 의료 형태) 시장 규모는 2010년 200억달러(24조5,000억원)에서 2025년 18배 이상(3,630억달러)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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